“용의 승천에 추락은 없다”
  • 정리 남유철 기자 ()
  • 승인 1995.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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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루그만 교수의 주장은 아시아 국가들이 달성한 고도 성장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통찰로부터 그가 이끌어낸 결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수긍할 수 없는 점이 있다. 크루그만 교수가 주장한대로 아시아의 고도 성장이 성장을 향해 국가가 자원을 동원할 결과일 뿐이라고 인정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아시아의 고도 성장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성장을 위해 자원을 성공적으로 동원했고, 또 이용할 수 있었다는 점은, 그 자체가 대단히 어려운 경제적 성취이기 때문이다  생산 증가를 위한 투자 증대는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국가적으로 그러한 과제를 달성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아시아 한계론'입증할 근거 없어

 중남미나 아프리카 혹은 중동 지역의 개도국들이 아시아 국가들이 달성한 고도 성장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산량 증대를 위한 투자 증대, 즉 교육 수준이나 저축률을 높여 미래를 위한 투자 재원을 확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시아 국가들은 성장을 위한 이러한 기본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냈다. 특히 내국 자본이 없는 상황에서 투자나 자본을 빌려 이를 달성한 것은 기적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경제적 성과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해 고도 성장을 달성했다면, 앞으로 생산성 향상에서도 그와 유사한 성취를 이루어내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크루그만 교수의 논지에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실증적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

 아시아 신흥공업국 정부들이 서방 선진국에 비해 시장 개입이 지나친 것은 사실이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자원을 동원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기는 하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아시아 신흥공업국에서 이루어지는 정부 개입은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계획 경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과거 소련과 달리 아시아 국가들은 무역과 시장 개방을 통해 국제 경쟁에 노출되어 있다. 국제 경쟁이 격화하면서 아시아 국가들은 생산성도 점차 향상될 수밖에 없었다. 폐쇄된 소련 경제 체제에서는 시장에서의 경쟁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소련이 고도 성장기를 지난 뒤에도 서방 선진국과 같은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 수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시장에서의 경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은 소련의 고도 성장과는 판이한 배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기술 혁신이 생산성 향상의 요체임은 당연하다.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은 선진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기술을 이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보아도 무리가 없다. 무역이 활성화하고 국제적으로 국경이 의미를 상실해 가는 시대에는 기술 이전 역시 시장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 선진국들이 개도국에 투자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기술 이전은 선진국들의 경제 논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어떤 시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이전받은 기술을 효율적으로 개발해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다른 어느 지역에 비해서도 아시아의 노동 인구는 교육 수준이 높다. 기술 이전을 경제발전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면에서,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이 생산성 향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리라고 전망하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다.

 최고의 생산성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에 근접한 일본의 생산성 향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크루그만 교수는 '일본과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은 다르다'는 주장을 편다. 아시아 신흥공업국들과 일본의 성장 배경은 당연히 다르다. 그러나 그 차이를 강조하는 크루그만 교수도 그 차이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하다.

믿을 수 없는 크루그만의 '통계'

 일본은 아시아 신흥공업국에 비해 훨씬 긴 산업화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일본의 산업화는 1868년 메이지유신 때부터 시작되었다. 반면 동아시아 국가들은 2차대전 이후에야 사실상 처음으로 본격적인 산업화 과정에 돌입했다. 2차대전 직전까지는 일본도 자원을 국가가 동원해, 즉 단순히 투자량 증대를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일본은 5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생산성 향상을 시도할 수 있는 경제 발전 수준에 도달했다.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은 아직 그런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성장과 함께 생산성 향상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크루그만 교수의 논문에서 보이는 통계상의 허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93년 미국 달러에 대한 일본 엔화의 평균 가치는 1달러 대 1백11엔이었다. 이 환율로 계산해서 그 해 일본의 국내총생산은 4조2천75억달러이다. 이는 같은 해 미국의 국내총생산 6조2천8백82억달러의 67%에 해당하는 규모로, 일본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이미 미국의 1백34%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스위스를 앞지른 것이다. 단순히 명목 환율에 의거해 계산하지 않고 실질 구매력을 감안하더라도, 일본의 국내총생산은 3조2백27억달러로 나타나 1인당 국내총생산이 미국과 거의 비슷하다. 어떤 계산 방식을 동원하든 크루그만 교수의 계산은 통계의 잘못으로 보인다. '92년 일본의 총생산은 미국의42% 수준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83%에 불과했다'는 크루그만 교수의 계산은 신뢰하기 어려운 수치이다.

 93년 8월 이후 일본 총리는 세 번이나 교체되었다. 그러나 집권 정당이 달라도 일본 정부의 목표는 하나로 집약된다. 그것은 규제 완화를 통해 경제 효율화를 극대화하는 작업이다. 일본 국민은 외형적인 경제 성장에 걸맞지 않는 열악한 생활 수준을 견뎌왔다. 최근 일본 정부는 경제 개혁의 가장 큰 과제를 국민의 실질적인 생활 수준 향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주택과 부동산 값을 하락시켜 일본 국민의 실질 소득을 올리고, 소비재 수입 확대를 통해 서방 선진국에 못지 않는 생활 수준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또한 산업 구조를 첨단 분야로 이동시키고, 기술 혁신을 통해 효율적인 경제 체제를 구축하려 한다.

 현재의 경기 회복 추세로 볼 때 일본 경제는 곧 회복기를 거쳐 본격 성장길 다시 진입할 것이다. 불황기의 조정을 거친 일본은 더욱 생산성이 높고 효율적인 경제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지속적인 성장 추세와 엔화의 가치 상승(평가절상)을 고려할 때, 일본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다른 선진국에 견주어 빠르게 높아질 것이다. 일본이 서방 선진국을 따라잡았고, 앞으로도 계속 서방 선진국을 앞서간다고 가정한다면, 일본의 궤적을 좇는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이 서방 선진국을 따라잡지 못할 이유는 없다.

세계 석학들의 논쟁/크루그만 교수 '비관론'스즈키 박사'반론'제기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소장 경제학자로 평가받는 스탠퍼드 대학 폴 크루그만 교수는 '국가 경쟁력이란 없다'는 주장으로 세계 지식인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시사저널> 제267호 크루그만 교수 인터뷰 참조). 크루그만 교수는 최근 '아시아 신흥공업국의 고도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해 또다시 세계 지식인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 탄탄한 학문적 명성과 감각적 필치로 세계적 논쟁을 주도하고 있는 크루그만 교수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세계에 명성이 높은 학자들로부터 반론이 제기되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로 손꼽히는 스즈키 요시오(鈴木淑夫) 박사(노무라연구소 이사장)는 크루그만 교수의 '아시아 한계론'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비판론을 최근<시사저널>에 보내왔다.

 <시사저널>은 국내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미국의 격월간지<포린 어페어스> 11·12월호에 실린 크루그만 교수의 논문<아시아 기적의 신화>를 요약해 게재하고 스즈키 박사의 비판론을 싣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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