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손해는 회계사 과실”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2.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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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기업 부도에 법정투쟁 확산…“적자 회사를 흑자하고 報告”

 작년부터 계속돼온 상장회사의 연쇄부도 사태가 수그러들 줄 모르고 있다. 최근 삼양광학이 법정관리를 신청함으로써 작년 이래 부도를 내거나 법정관리를 신청한 상장기업은 무려 18개에 이르고 있다. 상장기업이 잇따라 부도를 내자 많은 투자자나 채권자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언제 자신이 가진 주식이나 차용증서가 휴지로 변해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투자자나 채권자 못지 않게 불안해 하는 직종이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자부하는 공인회계사들이다. 시중의 경기와 상관 없이 고수익이 보장되어 인기 전문직으로 인식된 회계사들이 왜 덩달아 두려워하는가.

 회계사들은 일반적으로 기업이 작성한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와 같은 재무제표와 회계장부를 검토하면서 회계원칙에 제대로 따랐는지를 살펴 의견을 제시한다. 이들의 의견이 첨부된 감사보고서는 해당 회사의 주식에 투자하려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지침이 된다. 최근 들어 회계사의 의견이 첨부된 감사보고서를 보고 주식을 샀다가 그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손해를 본 투자자들이 회계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심지어 형사 고발하는 등 법정투쟁을 불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증권감독원도 “회계감사 부실” 지적
 회계감사 업계는 그동안 좋은 일감 얻기 경쟁에나 신경을 쓰면 되는 무풍지대였다. 지난해 12월16일 흥양의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이 회계감사를 담당했던 경원합동회계사무소를 상대로 서울민사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88년 1월20일에 상장된 흥양의 주가는 90년 한때 3만2천원에 육박할 정도였으며 부도가 나기 전까지만 해도 1만5천원선을 웃돌았다. 91년 7월에 갑자기 부도를 내자 이 회사의 주가는 폭락했다. 2월19일 현재 주가는 2천3백원에 불과하다. 이 회사에 투자한 2천8백여명의 소액투자자(1% 미만의 지분을 가진 주주)들이 가진 주식은 액면가인 5천원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휴지로 변해버린 것이다.

 흥양이 3년 동안 발표한 회계자료에 대한 공인회계사의 감사의견은 ‘적정’이었다. 물론 공인회계사가 회계자료에 대해서 적정하다고 의견을 표시하는 것이 그 회사에 투자해도 좋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정의견은 적어도 그 회사가 공시한 회계자료가 유용한 투자지표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공인회계사로부터 적정의견을 받은 재무제표에는 상장된 첫해 당기순이익이 4억2천만원이었고, 89년에는 4억5천만원, 90년에는 5억4천만원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인회계사의 회계감사를 감독하는 증권감독원 감리국의 감리결과도 투자자들의 법정투쟁에 기대를 걸게 해주었다. 작년 10월 감리국은 흥양 등 부도난 5개 기업을 비롯한 9개 상장사에 대한 회계감사가 부실하다고 보고, 이 회사들에 대해 회계감사를 실시했던 회계법인과 회계사사무소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했다. 감리결과에 따르면, 흥양의 재고자산은 1백91억원 가량 높게 잡혀 있었으며 1백31억원 정도의 부채가 회계자료에 누락돼 있었다. 이를 감안하면 5억원 가량의 이익을 낸 것으로 되어 있는 손익계산서는 약 87억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87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회사라는 것이 재무제표에 바르게 표시되었다면 투자자들은 이 회사의 주식을 외면했을 것이다. 따라서 주가도 달라졌을 것이다.

 흥양과 관련된 소송은 현재 서울민사지법합의3부에 계류중이다. 투자자들로부터 소송을 의뢰받은 高承德 변호사(德裕국제법률사무소)는 “공인회계사의 과실책임이 보다 엄격하게 규정된 미국의 사례에 비추어 한국에서도 비슷한 판례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소송에서 승소했을 경우 일정액의 승소금을 받는다는 약정을 했지만 수임료 없이 무료변론을 할 작정이라고 한다.

 손해배상을 청구했던 투자자들은 따로 서울지검 서부지청에 담당 공인회계사들을 사기죄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위반혐의로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자칫 공인회계사가 투자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쇠고랑을 차는 유례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부도를 내는 회사가 늘면서 손해를 입은 소액 투자자의 수도 덩달아 늘고 있다. 작년 말까지 이들은 7만명 정도였으나 최근에는 10만명에 육박한다.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잇따를 게 분명하다. 흥양과 비슷한 시기에 부도를 낸 기온물산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이 회사가 상장한 지 6개월도 안되어 부도를 냈기 때문에 공인회계사보다는 이 회사의 공개주간사인 대우증권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아남정밀을 비롯한 부도난 상장기업의 회계감사인에 대한 소송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 소송은 상장회사의 부실감사와 관련된 첫 법정심판이란 점에서 그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게다가 양쪽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로 재학시절부터 주목받았던 인물임이 법조계에 알려져 이들의 법정싸움이 과연 어떻게 진행될까 하여 흥미를 더하고 있다.

 올해 상황은 훨씬 복잡해질 수도 있다. 올해부터는 증권시장이 개방되어 외국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단순한 감각에 의존하기보다 공표된 회계자료를 중시하는 그들은 전례에 따라 주저없이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과에 따라 국제적인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부도 사태에 손해본 소액투자자 10만
 공인회계사에 대한 주식 투자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잇따를 기미가 보이자 한국 공인회계사회(회장 김두황)는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투자자들의 회계사에 대한 소송제기와 형사고발은 공인회계사라는 직종과 변호사 간의 싸움으로 비화할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만일 변호사 업계가 이런 구설수에 휘말렸다면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스스로 사임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인회계사 업계는 반성의 기미나 자성노력을 보이지 않고 피해의식만 앞세우고 있다”고 고변호사는 공인회계사회의 움직임을 비난한다. 이에 대해 공인회계사의 입장을 들으려고 했으나 공인회계사회측은 한사코 면담을 회피하며 그들의 견해를 밝히기를 거부했다.

 많은 회계사들은 전문직종인 변호사나 의사와는 다른 공인회계사 특유의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한다. 한 합동회계사무소의 대표는 “변호사나 의사는 고객의 요구에 충실하면 되지만 공인회계사는 고객의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호소에서 드러나듯, 변호사나 의사를 골라 찾는 것처럼 고객이 회계사를 선택하게 하는 자유수임제에 문제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자유수임제는 82년부터 시행된 외감법에 따른 것이다. 그 이전에는 국가가 일정한 요건을 갖춘 주식회사에 대해서 회계감사인을 배정해주었다. 회계사 업계에 경쟁을 유발하기 위하여 자유수임제를 도입한 것이다. 자유수임제 아래서는 회계감사를 받는 회사의 경영주가 회계사를 선정하고 감사가 끝나면 용역료를 지불하기 때문에 좋은 일거리를 많이 구해야 하는 공인회계사들로서는 회계감사를 당당하게 할 수 없는 어려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연 학연 혈연에 따라 회계사를 선임하는 우리 현실에서 공인회계사가 독립성을 보장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유수임제는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선진국의 수임제는 우리와 약간 다르다. 한국에서는 회계사의 선임을 주주총회(종전에는 이사회)에서 의결하도록 되어 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우리 풍토에서는 실질적으로 소유주가 회계감사인을 골라잡는 셈이다. 이와는 달리 선진국에서는 투자자와 채권자들이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회계사 선임을 의결한다. 따라서 공인회계사들은 소유주(주주)를 의식하면서 전문경영인이 작성한 회계자료를 감사하기만 하면 된다.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회계감사 과정에서는 세대간의 갈등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대부분 나이 든 회계법인이나 합동회계사무소의 대표들은 고객의 비위를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장삿속과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계자료를 직접 감사하는 젊은 회계사들은 기업의 회계자료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나를 알아낼 수 있어 감사의견 표명에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 보일러업체 재무제표를 감사하던 한 회계법인 소속의 공인회계사들은 회계자료의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의견거절’이라는 감사의견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름난 이 회계법인의 상급자들은 예외적인 일부조항을 제외하면 이 회사의 회계처리가 적정하다는 ‘한정의견’을 표시했다. 작년말 이 회사는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젊은 회계사들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회계사들 “기업이 회계자료 조작”
 공인회계사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강하게 펴는 젊은 회계사들도 “우리가 받아야 하는 비난의 상당몫은 해당 기업이 져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기업들이 공인회계사와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회계자료를 조작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많은 기업들은 경영상태와 상관 없이 세금을 공제한 후의 당기순이익이 얼마가 나와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회계처리를 한다. 그 목표를 위해 일반적으로 인정된 기업 회계기준의 테두리 안에서 회계처리를 하기도 하지만 탈법을 저지르는 수도 많다. 기업에 고용되어 그 사실을 적발해내야 하는 회계사들로서는 감사에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증권감독원 洪賢善 감리국장은 “기업이 투자자를 속이려 드는 것이 더 근원적인 문제”라고 밝힌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들에게 속아넘어가 준 공인회계사의 책임문제가 남긴 하지만 그런 엉터리 회계정보 자료를 이용한 사람들이 입은 손해는 본질적으로 기업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주식 투자자들이 회계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고발하는 것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공인회계사의 자질과 독립성을 높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화위복론’도 나온다. 공인회계사라는 한 직업의 사회적 지위는 그 직업에 대한 공신력에서 나온다. 업무에 대한 시비가 계속될수록 회계사의 회계감사에 대한 공신력도 높아진다. 이는 소비자운동이 기업의 경쟁력과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연세대 金地鴻 교수(경영학)는 “주식투자자를 비롯한 재무제표 이용자들의 ‘소비자운동’은 이런 점에서 더 확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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