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界 왕회장’ 꿈꾸는 국민당 鄭周永
  • 조용준 기자·24시간 동행취재 ()
  • 승인 1992.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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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평동에 자리잡은 10층짜리 국민당사의 창문은 새벽 5시30분경부터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9층 대표최고위원실과 그 부속실, 8층 최고위원실에 불이 켜지는 시각은 대략 6시경. 여기서 일하는 사무처 요원들은 늦어도 6시20분까지 출근을 마쳐야 한다. 鄭周永 대표최고위원을 비록, 고위 당직자들이 참석하는 조직강화특위가 바로 6시30분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정대표의 아침 기상시간은 새벽 3시쯤. 종로구 청운동의 정대표 자택은 이미 이 시간이면 대낮같이 불을 밝히고 있다. 집을 맨처음 나서는 청지기는 그의 임무 중 하나가 모든 조간신문을 구해 정대표 기상시간 이전까지 서재에 갖다놓는 일이다.

 지난 2월27일 새벽 5시40분 정대표의 집. 정대표는 “오늘 신문들 사설 제목 잘 뽑았어요. 사실 거창 사건(민자당 거창 지구당 금품 사건)이야 빙산의 일각이지”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옛날에는 경제면만 봤는데 요즘은 정치면만 본다”며 웃었다.

 이날 그의 아침 식사는 평소보다 조금 늦은 5시50분쯤에 시작됐다. 오늘은 귀찮은 기자까지 따라붙어 식사시간도 늦었고 출근시간도 약간 지체될 참이다.

 정대표의 며느리들은 늦어도 5시까지 나와 식사준비를 마친다. 5시30분쯤 되면 6명의 아들(장남 夢弼씨와 4남 夢禹씨는 작고)에다 조카들이 허겁지겁 모여들기 시작한다. 차남 夢九(53·현대정공 현대자동차써비스 등 6개 계열사 회장) 3남 夢根(금강개발회장) 5남 夢憲(현대전자회장) 6남 夢準(현직 의원·현대중고업 고문) 7남 夢允(현대해상화재사장) 막내 夢一(국제종합금융전무)씨 등은 외국에 나가 있지 않은 한 이 자리에 빠짐없이 참석해야 한다. 정대표의 한 측근은 “인기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보다 더한 권위로 아들들을 엄격하게 다스린다”고 귀띔한다.

 정대표의 아침 식사시간은 무척 짧다. 드는가 싶게 숟가락을 놓아버리기 때문에(대략 2~3분 정도) 아들 조카들이 식탁에 앉기가 무섭게 체면불구, 먹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는다. 정대표가 일어서면 이들도 차례차례 숟가락을 놓는다. 벙거지(털모자)를 머리에 쓴 그를 따라 하루도 빠짐없는 정대표 가족의 일과, 즉 아침 도보출근이 시작된다. 그는 계동 현대사옥까지의 코스를 요즘은 평동 국민당사로 바꿨다.

 사위는 깜깜하기만 한데 침묵에 묻힌 골목길에서 사진기자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정대표는 “이주일 올 때 그랬어요. 앞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워낙 요란하게 터지니까 뭐가 보여야지. 그 바람에 이주일이 손 잡은 것 놓쳤잖아”라고 운을 떼기 시작했다.

“현금으로 4백억원 정도 가지고 있다”
 굉장히 건강하게 보입니다.
 “11살 때 한번 앓고 65년간 개근했어요.”

 정치 하는 게 재미 있습니까?
 “재미 있어요. 정말로 재미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경제보다 정치는 목표가 훨씬 더 깨끗하고 넓지 않습니까.”

 국민당이 이번 선거에서 돈을 많이 쓸 거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선관위 결정대로 법정경비 테두리 안에서만 지원할 겁니다. 지구당 대회 할 때마다 위원장에게 다짐 받습니다. 이미 창당대회 하라고 3천만원 줬고, 차 2대(엘란트라 승용차 1대, 그레이스 봉고차 1대)가 나갔으니 앞으로 각 지구당에 지원할 돈은 좀더 줄어들겠지요.”

 중앙당 지원에 대한 지구당들의 기대가 큰 것 같습니다.
 “모자라는 돈은 다 자기들이 보태야지 뭐.”

 공천은 몇 명이나 할 계획입니까?
 “전국적으로 약 2백명 정도 될 겁니다.”

 2백여개 지구당이면 지구당 지원비만 해도 대략 2백60억원이고, 중앙당 경비까지 합하면 약 4백억원 정도는 들어갈텐데 그만한 돈을 가지고 계십니까?
 “현금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1년 전부터 준비한 돈입니다.”

 그 돈은 어디서 나온 돈입니까?
 “증권 수익 배당받은 것을 모은 겁니다.”

 이번 선거에 자신 있습니까?
 “지난번 올림픽 유치할 때(당시 그는 올림픽유치추진위원장이었다) 정부도 우리가 올림픽 개최를 따낼 것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습니까. 우리가 52대 27표로 압승을 거두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최종 발표 며칠 전부터 치밀하게 표를 점검했습니다. 그 결과 승리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국민당은 선거 3일 전에 우리가 몇석이나 차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미리 공언할 겁니다. (여기서 그의 목소리는 강하게 올라갔다) 다만 우려되는 게 정부의 공안정치·공안선거입니다. 우리 후보하려다가 행방불명된 사람이 한명 있어요.”

 몇석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까?
 “목표야 전 의석의 과반수 정도지요. 적어도 60석 정도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강원도와 울산을 국민당 우세 지역이라고 봅니까?
 “강원도와 울산이라고 하지 말고, 서울 경기 인천인 강세라고 하는 게 옳을 겁니다. 호남에서도 최소한 3석은 자신 있습니다.”

 부산 지역은 어떻습니까?
 “부산에 YS 바람은 없어요. 지금 국민의 센스가 어느 정도인데…. 이번 총선이 끝나고 나면 대지각 변동이 일어날 겁니다. 정계가 완전 개편됩니다. 지각변동 때문에 그 사이에 빠져서 죽는 사람도 나올 거고. 야대여소(그는 여소야대라고 하지 않고 야대여소임을 강조했다)는 결정적입니다. 그래서 정치적 지각변동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요즘 민자당에서 여당이 의석수가 많아야 정국이 안정된다고 말하는 모양인데 아무리 의석이 많아도 계파싸움 때문에 안정되지 않아요. YS가 말하는 여당 안정 운운은 거짓말입니다. 그 양반 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요. 대권을 노대통령 개인이 주는 겁니까. 국민이 주는 거지. 노대통령은 ‘믿어보쇼, 믿어보쇼’ 하는데 그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또 노대통령만 쳐다보고 기대하는 사람도 그렇고….”

 이주일씨는 이제 완전히 출마를 포기한 겁니까?
 “최근에 이주일을 다시 만났습니다. 나를 보자마자 제발 아무 말도 묻지 말라는 말부터 꺼내더군요. 굉장히 압력에 시달리는 듯했어요. 요즘 술로 날을 지새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호용씨 입당문제는 어떻게 돼갑니까?
 “지난번에 만나서 많은 얘기 했습니다. 본인이 많이 심사숙고하고 있습니다.”

“정호용씨는 우리와 같이 하기로 합의”
 그러나 국민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이와 관련, 좀더 분명하게 말했다. 그는 “정호용씨는 이미 우리와 같이 하기로 합의했다. 정씨는 무소속이든 나중 입당이든 방법은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정대표에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정씨뿐만 아니라 정씨와 관계 있는 사람들도 다 연결되어 있다”면서 “지금도 정씨와 긴밀한 연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구로 나설 생각입니까? 최근에는 지역에서 출마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전국구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지역구에서 나와야지요. 나오면 서울에서 나옵니다.”

 서울 중구 조직책이 비어 있는데 중구에서 출마할 계획입니까?
 “그에 대한 답변은 나중에 하겠습니다. 이유가 있긴 한데 곧 밝혀질 겁니다.”
 정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 “나중에 소주 먹으며 할 얘기”라고 한사코 밝히길 거부했다. 정대표의 지역구 출마는 최근 들어 당에서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奉斗玩 서울시지부위원장(서울 용산)은 “정대표 자신도 국민에게 심판받기를 원한다”면서 “서울에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또 서울지역 한 지구당위원장은 “최근에 미국 대사관의 정보담당참사관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국 국민당이 ‘태풍의 눈’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서울에서 승부수가 생길 것 같다”고 정대표의 서울 출마와 함께 모종의 조처가 강구되고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여당 측에서 정대표를 ‘움직이는 시한폭탄’이라고 하는데, 정치자금 말고도 폭로할 내용이 많이 있습니까?
 “노정권을 비판하고 밝힐 내용이야 많죠. 우리는 노정권이 어떻게 정치자금 모았고, 얼마나 있는지 손금 들여다보듯 알고 있습니다. 나쁜 걸 지적해서 국민에게 알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봐가면서 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 당에 대한 압력의 강도가 높아지면 구체적으로 얘기할 겁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에서 어느 사인엔가 정주영씨는 야당 정치인으로, 6공 최대의 반체제 인사로 바뀌어 있었다.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통일국민당 정대표의 이러한 자리잡음은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6공에 들어와 드디어 한국 경제계 최고 원로의 자리를 차지한 그가 오늘날 6공정권과 정권 담당자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노리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올해로 77세인 정대표의 꿈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 영국의 유력한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월11일자에서 다음처럼 보도하고 있다.

 “정주영씨의 정치적 목표는 아직은 ‘킹 메이커’인 것처럼 보인다. 만약 그의 당이 20명 또는 그 이상의 국회 의석을 차지한다면 그에게 강력한 힘을 주게 될 것이다. 특히 파벌에 얽힌 집권당이 대통령후보 지면 전당대회 이후 분열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선거에 출마함으로써 직접 집권당에 도전할 가능성도 있다. 민자당이 내부에서 싸우는 것을 보고 유권자들은 아주 실망하고 있다. 김영삼씨는 집권당내에서 유리한 입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12.5%의 지지밖에 얻지 못했다. 아마도 더욱 중요한 것은 응답자의 72%가 국회의원선거에서 무소속출마자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대답했고, 거의 60% 정도의 응답자가 새 정당의 출현을 아닌 정직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면 대단히 바쁜 만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의 보도는 정대표가 대통령선거에 나설 가능성을 상당히 시사하고 있다. 정대표는 이와 관련해 확정적인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정대표는 이와 관련해 확정적인 답을 주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정주영씨를 국민당 대표라기보다 대통령후보로 보고 있다. “그렇지 않은 바에야 무엇하러 그 많은 돈을 들여 정당을 만들었겠느냐”는 한 민자당 중진의원의 말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金泳三 金大中 두 김씨에 대한 소감은 그의 심중이 어디에 가 있는지 잘 보여준다. “YS는 아직 떠오르는 라이벌이라 할 수 없다. 항상 라이벌은 한 사람이다.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DJ도 어렵다. 이번에도 호남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다면 DJ는 영원히 대통령 자리에서 멀어지고 만다.”

“경호용 방탄 승용차 구입할 계획”
 아버지의 집무실 한층 위에서 일하고 있는(정책실은 10층이다) 鄭夢準 정책위원장은 “우리가 40석 정도만 얻으면 대통령선거전에서 민자나 민주당보다도 훨씬 더 유리한 위치가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당 대통령후보를 어떤 방식으로 결정할 것이냐 하는 질문에는 대답을 흐렸지만, 대통령 서거 전략의 일단을 내보임으로써 당 차원에서 벌써 이 문제에 대한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국민당과 정대표의 대권가도는 상당히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국민당이 이번 총선에서 의석수를 얼마나 차지하느냐가 관건이다. 예상 수치의 편차가 크지만 국민당 핵심 당직자들은 대략 35석에서 65석까지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27일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임명된 趙尹衡 국회부의장은 “대부분 지역에서 민자·국민이 2파전이 예상된다”면서 “35석 이상은 자신있다”고 말했다. 봉두완 전당대회의장은 “정대표는 63석, 나는 43석 정도를 당선 의석수로 잡고 있다”고 밝히고 “투표율이 70% 정도만 되면 압승을 거둘 계기가 마련된다”고 말했다. 봉의장은 또 “민주당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입당 교섭이 들어왔었고, 지난 1월초에는 노대통령이 직접 사람을 보내 ‘모의원을 교체할테니 민자당에 들어오라’는 교섭을 해왔었다”면서 “서울 싸움도 해볼 만하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국민당의 이러한 ‘기대 의석 수’는 정치권 내의 일반적인 관측이나 언론계의 전망치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 사실이다. 민자·민주 양당은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원내교섭단체를 만들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민당 출마자들과 현대그룹에 대한 ‘보이지 않는 손’의 외압도 국민당이 뛰어넘어야 할 벽이다.

 ‘재벌당’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그러나 봉두완 위원장은 “처음 태어난 정당으로서 제3의 선택을 준 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강조한다. 학자 출신 兪煐 위원장(서울 강서 갑)은 “국민당이 어째서 재벌당이냐. 50대 재벌 중 49개 재벌을 수하에 거느린 민자당이 재벌당이지. 우리가 재벌당이라면 민자당은 더 큰 재벌당이다”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총선 결과는 정치구너에 종잡을 수 없는 태풍을 몰고 올 것이 확실하다. 김영삼 대표의 막후 핵심참모 한 인사는 “지금 YS계는 총선 결과에 따라 국민당이 청와대와 손잡고 개헌에 나서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대표가 울산 지역에서의 국민당 바람 차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정대표는 14대 국회에서의 내각제 개헌 가능성을 일축했다. “정치문화가 성국되면 의회 중심의 제도가 바람직하나, 여당의 내각제 추진은 노대통령이 다시 집권하려는 딴 욕심이 있기 때문에 안된다”는 주장이다. 정대표는 개헌보다는 여당 세력의 흡수에 더 마음을 쏟고 있는 것 같다. 국민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만약 YS가 대통령후보가 된다면 민자당에서 나온다는 사람이 많다”면서 “그 사람들을 우리가 다 받아들이기로 이미 정대표와 합의돼있다”고 밝혔다.

 통일국민당의 출산과정은 한마디로 말해 ‘파격’의 연속이었다. 그는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파격을 통해 기업인으로서의 이미지를 정치인으로 재빨리 바꿀 수 있었다. 그는 1월28일 서울 종로지구당 창당대회에 처음 참석한 이래 2월말까지의 한달 동안 항공기 이용 12회, 헬기 이용 24회를 기록하며 전국을 누비고 있다. 지난달 28일 하루만 해도 비행기 2번, 헬기 3번을 갈아탔다. 그의 나이로 보아 믿기지 않을 만큼의 강행군이다. 그는 또 “상황이 악화되면 경호용 방탄 승용차를 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대표는 9시 뉴스를 보고는 곧장 잠자리에 든다. 그는 《노인과 바다》에서의 노인처럼 매일밤 ‘사자의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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