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대사관의 ‘한국 경영’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2.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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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외교관 45명 정보수집 뛰어나…남북관계 동향파악 분주

 예상했던 대로 주한일본대사관에 대한 취재의 벽은 두터웠다. 서울주재 다른 대사관에 비해 특히 보안에 신경을 쓰는 일본대사관측은 기자의 취재 목적과 그 ‘저의’에 대해 몇차례나 캐물었다. 핵심부서인 정치부에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은 “정치부 분위기가 어떠냐” 하는 기초적인 질문에도 “말할 입장이 안돼서…” 하고 대답을 피했다. 정치부장인 오노 마사키(小野正昭) 참사와 경제부장인 시모고치 슈지(下荒地 修二) 경제참사는 2월24일로 미리부터 잡혀있던 기자와의 면담을 당일 갑자기 취소했다. 대사관측은 “내부조정상 취소가 불가피했다”고 답변했다.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는 다른 일본 외교관들에 비해 비교적 한국말이 서툰 시모고치 참사는 최근 경제부 업무의 변화를 묻자 영어로 “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며 “그런 무례한 질문이 어디 있느냐?”고 가시돋힌 말을 던졌다.

 일본대사관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그같은 이유는 “아마도 그간 한국 언론에 일본이 부정적으로 비쳤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확인하듯 대변인인 오가와 곤타로(小川 鄕太郎) 공사는 기자에게 “사실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된 배경에는 한국 내 교육계와 언론의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

주한 외국대사관 중 인맥·활동 발군
 2월21일 오후 5시. 종로구 계동 현대빌딩 맞은편에 있는 일본광보문화원 2층 자신의 집무실로 기자를 안내한 오가와 원장 (공보담당 공사)은 “최근 2~3년 사이 정상회담이 세번이나 열릴 정도로 한일관계가 바쁘게 돌아갔다”며 “야나기 대사만 해도 이미 4월 중순까지 일정이 다 잡혀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특히 요즘은 남북관계가 급히 돌아가다 보니 대사도 자연 그쪽 분야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고 밝혔다.

 오가와 공사의 말은 대사관 움직임에 정통한 한 일본소식통에 의해 그대로 확인됐다. 그는 “일본과 북한 간의 수교교섭이 진행되면서 주한일본대사관측도 남북관계와 대북한 동향에 촉각에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하고 “특히 야나기 대사가 최근 이 분야에 대한 정보수집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야나기 대사는 별도 인터뷰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전면 부정했다). 또다른 소식통도 “상황이 변하면 자연 관심사도 변하는 법”이라며 “요즘 일본대사관이 급변하는 남북한 관계를 분석하느라 정신없다”고 말했다. 대사관 정치부는 남북대화가 열리는 날이면 밤늦게까지 근무하는 게 보통이며 최근 평양에서 열린 남북총리 회담기간중에도 그랬다는 얘기이다.

 지난 65년 국교정상화 이후 한일경협문제, 金大中 납치사건, 교과서 왜곡사건, 정신대 문제 등 험난한 장애물을 넘어온 한일관계는 이제 양국의 인적교류가 2백만을 웃돌고 교역량이 3백억 달러에 이를 만큼 질적·양적인 변화를 했다. 특히 탈냉전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난 한일관계의 질적인 변화는 주요 현안을 두고 협조적 차원보다는 경쟁적 차원으로 나가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외교 접촉과정에서도 협의보다는 통고, 신뢰보다는 경계의 눈초리가 빈번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단적인 예가 90년 6월의 한·소 수교와 그해 9월 일본의 전 부총리 가네마루 신(金丸 信)의 방북사건이다. 과거처럼 사전에 협의를 하고 정보를 교환하던 외교적 관례에서 벗어나 일이 터지기 직전까지 양국 정부가 쉬쉬한 것이다. 요즘 일본정부의 초미 관심사가 되고 있는 북한과의 수교교섭만 해도 지금껏 회담이 다섯차례나 열렸지만 그 결과가 한국정부에 있는 그대로 전달됐는지에 대해서 우리 정부는 회의적이다.

 5공 초기까지만 해도 양측의 실력자들 통해 막후외교로 현안을 풀던 밀실외교가 자취를 감추고 공식채널을 통한 공개외교가 빠르게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한 외무부 당국자는 “한국은 일본에 비해 경제력에선 15분의1 수준이나 외교차원에서는 4분의1의 힘을 갖고 있을 만큼 경쟁관계로 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즘 한일관계에 생긴 변화의 내용이다.

 이같은 변화 속에서 가장 부산하게 움직이는 곳은 역시 종로구 중학동에 자리잡은 주한일본대사관이다. 세종로 미국대사관 건물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로 작아보이는 일본대사관이지만 인맥의 우수성이나 활동면에서는 서울에 있는 어느 외국대사관도 앞지를 수 없을 만큼 막강하다.

 빨간 벽돌건물 5층으로 된 일본대사관 안에는 현재 야나기 겐이찌(柳 健一) 대사와 가와시마 준(川島 純) 특명전권공사를 중심으로 45명의 외교관이 뛰고 있다. 이들 중 약 3분의 1은 보통 일본에서 ‘出向者’로 통하는 다른 부처 출신 주재관들이다. 특히 경제부는 대장성 노동성 통산성 운수성 등 여러 부처에서 파견나온 주재관들로 구성돼 있다.

 핵심 포스트인 정치부에는 한국에 관한 정보수집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무관 2명이 배속된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일본대사관의 특징은 업무가 철저히 각부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해당 참사가 사실상 전권을 가진다는 점이다. 우리처럼 대사가 실무를 주무르는 스타일과는 다르다.

북·일 수교 앞두고 남북관계 촉각세워
 한 일본특파원은 “요즘 대사관 정치부는 韓日 수교교섭을 진행시키면서 어떻게 하면 한일관계를 손상시키지 않을까 궁리하느라 골몰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 정치부장은 외무성 내 경제통을 많이 배출한 릿교대(一橋大) 출신 오노 참사관이 맡고 있다. 국내 정치인들과 활발히 접촉하고 있으나 “정보수집 전문가라기보다는 학자풍”이란게 한 소식통의 얘기다. 정치부에는 대사관내 1급 한국통인 이케다 참사와 88년 7월에 부임한 동경대 법대 출신의 소마(29) 2등서기관이 있다.

 금년 52세인 이케다 도쿠지(池田 德次) 참사과은 제주연락사무소장인 마치다 미쓰구(町田 貢)씨와 함께 대사관 내에선 쌍벽을 이루는 한국통이다. 88년 3월 한국에 부임하기 전 이미 두차례에 걸친 한국근무를 포함해 10년 넘게 한국정치문제를 다루었는데 그의 주상대역은 정치인 언론인 및 외무부 관리이다. 한달에 한두번 그와 정치토론을 벌인다는 민자당의 한 관계자는 “한국에 대한 그의 판단력은 그날의 정치 머리기사 제목을 결정하는 한국의 일간지 정치부장 수준”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정치부 소속으로 대사관 업무상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리가 바로 정보수집을 담당하는 무관직이다. 대사관측의 한국정보수집력은 친일인맥이 극성을 부리던 3공시절에 최고조에 달했고 5공 이후 이들이 밀려나면서 한때 공백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원상회복됐다고 한다. 일본대사관이 수집한 정보는 고급이면서 양질로 이름나 있으며 특히 한국의 군과 정치에 대한 정세분석은 정평이 나있다.
 육상 자위대 막료 출신으로 우리 육군과 주한미군을 상대로 정보수집을 맡고 있는 48세의 후쿠야마 다카시(福山 隆)는 주한미군 정보에 관한 한 이미 본국에서 1급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공군을 맡은 하시모토 세이치(橋本 誠一) 무관은 방위청 출신으로 작년 7월에 부임했으며 장차 후쿠야마의 후임으로 올라 잇다는 후문이다.

 이들과 달리 일본경찰청 총경 출신인 아시카리(勝治) 참사는 금년 43세로 자타가 공인하는 대사관대 1급 정보통이다. 그를 잘아는 한 원로 인사는 “아시카리 참사는 주로 안기부와 검찰, 군의 보안관계자들을 상대하며 그의 정보는 대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본국의 경찰청을 거쳐 내각조사실로 올라간다”고 귀띔했다. 요즘 이들 정보통들 간의 가장 큰 화제는 차기 대통령에 관한 것으로 내심으론 여권의 지일파와 실력자인 ㅂ씨가 되길 바라는 눈치라는 게 한 소식통의 얘기다.

‘한국군’ ‘정치 정세’ 분석에 정평
 이같은 일련의 정보수집업무는 가와시마(58) 특명전권공사의 조정 아래 이뤄지고 있다. 동경대 법대 출신인 그는 “인간성이 좋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줄 정도로 대인관계가 원만하다”는 평을 듣는다.

 정치부 못지 않은 핵심 포스트인 경제부는 동경대 법대 출신 시모고치(46) 참사가 책임자로 있다. 89년 3월 한국에 오기 전 북경주재 일본대사관에서 근무한 그는 활동 폭이 넓고 자기 주장도 적극적이란 평이다. 요즘 화제인 경부고속전철 수주에 대해 정작 경제부소속 외교관들 사이엔 “한일무역 역조가 심하고 게다가 정신대 문제로 반일감정이 악화돼 있는데 일본측에 낙찰될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의견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는 게 한 일본특파원의 전언이다.

 對韓홍보의 공식창구인 광보문화원 원장이자 대사관 대변인역을 맡고 있는 오가와(48) 공사도 빼놓을 수 없는 한국정보통. 외교관 생활만 24년째인 그는 90년말 한국에 오기 전 모스크바에서 근무했다. 활달한 성격이며 특히 교수들과의 교류를 통해 고급정보를 수집하다고 알려져 있다. 오가와 공사 자신은 최근 “국내에 많은 인사들과 사귀고 있고 내가 아는 ‘지일인사’도 70명에 이른다”고 기자에게 밝힌 바 있어 그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 주목된다.

 현재 광보문화원은 문부성 출신 주재관인 가마타 도루(鎌田 淸) 1등서기관을 포함해 5명이 오가와씨를 보좌하고 있다. 주요 일간지와 잡지는 전부 구독하고 있으며 그밖에 정기간행물은 일본관계 기사가 나올 때마다 사서 본다는 게 오가와 공사의 설명이다.

 조용하고 치밀한 성격인 야나기 대사의 활동은 가장 알려지지 않고 있는 편이다. 90년 4월 부임해 올해로 3년째인 그는 동경대 법대 출신으로 일처리와 부하 다루기가 매우 엄격하기로 소문나 있다. 그이 일정은 주로 호리무라 다카히코(堀村 隆彦) 서무 참사가 맡고 있어 구체적인 내용은 일체 비밀에 붙여지고 있다. 흥미를 끄는 것은 그의 성북동 대사관저에서는 요즘도 심심찮게 국내의 유력정치인들을 상대로 ‘식사초대회’가 열리며, 대사는 이를 통해 국내정치 사정을 훤히 들여다볼 기회를 갖는다는 점이다. 이 자리에는 “여권의 실력자 ㅂ씨, ㅇ씨, ㄱ씨 등이 흔히 참석한다”는 게 한 소식통의 전언이다.

 서울에 오는 일본 외교관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오가와 공사는 그 이유를 “한국이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주요국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한국주재 대사로 발령받은 인사들이 대부분 한두 곳의 대사를 역임한 백전노장의외교관들로 한국근무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자부심들은 있지만 한일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소신과 배짱이 없다는 지적을 받는다.

 주한 일본외교관들은 거의 예외없이 한국어에 능통하다. 지난 88년 7월에 부임한 마루야마 3등서기관은 훤칠한 키에 지적인 용모인데다 한국말을 완벽히 구사한다. 동경외국어대 이탈리아어과 출신으로 한국전문가가 되길 자원했다는 그는 본국에서 1년 연수를 마친 뒤 지난 88년 7월 서울에 왔다. 도착후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연세대 외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고 이어 서울대 인류학과에 편입해 3학기 동안 공부했다. 동기인 정치부의 소마 2등서기관과 함께 신촌에서 하숙생활을 한 그는 수업이 끝나면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고 빈대떡에 막걸리도 마시며 되도록이면 한국동료들과 어울릴 기회를 많이 가졌다.

 일처리가 꼼꼼하기로 이름난 것도 주한일본의 교관의 특징이다. 이들과 실무적으로 자주 접촉하는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특히 정통 외무관료인 경우 토씨 하나까지도 챙길 정도로 철저하다”고 말했다. 한 고위당국자도 “솔직히 말해서 일일이 챙기고 끈질기게 파고드는 점에 있어 우리가 뒤진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실토했다.

한국어 능통, 국내 인사 인맥관리 철저
 주한 이본외교관들의 또다른 면은 예나 지금이나 개인별로 한국인사 목록을 관리하면서 끈끈한 인맥을 구축해 늘 ‘관리’를 철저히 한다는 점이다. 실례로 3공시절 모 장관은 자신이 은퇴했을 때 주한외국공관 어느 한군데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유독 일본대사관측에서 정성스런 선물을 보내줘 “역시 다르구나”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외무부 동북아1과 (일본담당)의 한 실무자는 “종종 식사 초대에 가보면 그 목적이 현안 논의보다는 친분관계에 있어 놀라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주목할 것은 일본외교관들은 ‘소스’에 대해선 깍듯이 예의를 다하며 철저한 비밀유지를 보장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대사 이하 전 주재원이 유기적으로 ‘일본주식회사’(Japan Inc.)를 위해 철저히 일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구한말 ‘조선총독부’를 연상시킬 정도이다. 오랫동안 일본을 관찰해온 한 언론인이 “어느 나라건 외무부의 일차 업무가 국익을 보호하고 이를 신장시키는 것이라면 아마도 이같은 임무를 가장 잘 수행하는 나라는 일본일 것”리하고 한 말은 결코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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