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호남 뚫는다”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2.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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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당, 거물 내세워 필승작전…“무진장·군산 2곳 자신”

 ‘마늘 바람’이 ‘김대중 바람’을 누를 수 있을 것인가. 전라북도 일부 지역에서는 요즈음 때아닌 마늘 풍년이 화제거리다. 영세민에게 가가호호마다 5~10㎏씩 마늘이 무상분배되고 있는 것이다. ‘호남 여당’인 민주당은 민자당의 불법 선심공세라고 이를 갈고, 민자당은 선거와 상관없는 영세민에 대한 지원이라고 해명하기에 바쁘다.

 일부 예외 지역이 있긴 하지만 전북 전역에 걸쳐 행정관청이 진원지인 마늘바람이 부는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전북 지역을 1개 선거구로 묶어 공동 대처하는 민자당의 단일화 선거전략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최대 지지기반인 전남북에서 민자당이 이른바 정책·전략지구로 꼽는 곳은 6~7개 지역. 이 지역에 내세운 ‘투사’들의 면면만 봐도 민자당의 결의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전직 장·차관급 3명에다가 전직 군사령관, 4선 현역의원까지 동원해 견고하기 짝이 없는 민주당 철옹성에 ‘구멍뚫기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전북 거점인 전주만 하더라도 민자당은 덕진과 완산 2개 선거구에 林芳鉉 전의원과 李衍澤 전총무처장관 등 거물급을 배치해 전주 입성을 벼르고 있다.

 전주고등학교 출신이라는 학연에다가 30년 가까운 공직생활 경험을 내세우는 이연택씨는 완산구의 새 위원장이 되자마자 점퍼차림으로 얼굴알리기에 부산하다. 그는 전북의 다른 민자당 후보와 마찬가지로 지역 차별의 피해를 ‘인물’로 극복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청와대에서 열린 공천장 수여식 때 이씨는 공천확정자 대표 자격으로 노대통령으로부터 공천장을 받았을 만큼 ‘청와대에서 무척 신경쓰는 지역’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이씨의 상대는 민주당 부대변인을 지낸 재야 출신 張永達씨. 재야 출신 중 민주당이 자신있게 선택해 이번에 새로 투입한 인물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이 지역에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민자당의 정책지구인 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민주당 공천탈락자인 孫周恒 의원이 “우리의 상대는 장영달씨가 아닌 김대중”이라며 反김대중 깃발을 흔들면서 무소속으로 출마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손의원측에서는 “이연택씨는 청와대가, 장영달씨는 김대중 대표가 각각 정책적으로 밀어주기 때문에 우리는 샌드위치가 된 셈”이라고 푸념한다.

 민주당 주변에서는 “완산보다는 임방현씨와 吳坦 의원이 재대결하는 덕진쪽이 더 불안하다”는 평도 나온다. 오의원의 지역구 관리에 문제점이 없지 않고, 거물급인 임씨의 지난 4년에 걸친 착실한 조직관리가 신경쓰인다는 것이다. “총선은 지구당 관리의 연장”이라고 말하는 임씨는 지구당위원장실에 ‘사랑방’이라는 현판을 달고 기존 여권의 공조직 점검을 마친 상태다.

전략지구 7곳에 ‘호남 둑 구멍뚫기’
 민자당은 “전북에서 최소한 두 석은 탈환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군산. 전북 도지사와 동력자원부 차관·경제기획원 차관을 지낸 군산 출신 姜賢旭씨를 행정부에서 빼내 말을 태워 고향으로 내려보냈다. “나라살림을 꾸려본 소중한 경험을 이제는 내 고향 군산에서 살려보겠다”는 것이 강씨의 출사표이다. “군산이야말로 민자당의 제1공략지구다”라고 주장하면서 군산 탈환을 겨냥하고 있다.

 군산의 민주당 주자는 蔡映錫 현의원. 그는 “민주당은 공격이 아니라 수비인 탓에 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면서 “왜 군산이 TK 앞잡이의 땅이 되어야 하느냐. 유권자는 자존심도 없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서울에서 강씨의 연고 공무원이 무더기로 내려오는 등 민자당이 자금과 행정력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그래도 바람은 분다”면서 야당 바람에 은근히 기대를 건다.

 전라북도에서 민자·민주당을 막론하고 최대의 격전지로 손꼽히는 곳을 진안·무주·장수군을 한데 묶은 이른바 ‘무진장’ 지역이다. 민자당은 “호남에서 민자당 깃발을 날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구당”으로 평하는 반면 민주당은 “가장 불안한 지구당”으로 온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2월25일 진안에서 열린 민주당 지구당 개편대회에서 金元基 사무총장이 당원들의 결속을 유난히 강조한 것은 민주당의 속사정을 대변한다. 김총장은 “여권의 감언이설에 상당수가 현혹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 무진장이 이상하다는 말도 들린다.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하자”고 열변을 토하면서 ‘TK의 횡포’를 일일이 열거, 야당 소외감에 호소했다.

 무진장 지역은 6백여 개의 자연부락이 산골 외딴 지역에 흩어져 있어 선거운동하기 힘든 곳으로 치자면 전남의 다도해 지역과 더불어 전국에서 손꼽히는 곳이다. 민주당은 “금품 살포를 주특기로 하는 여당이 선거운동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라고 불평을 털어놓고, 민자당은 “무진장에는 정승의 사위나 조카 하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낙후된 지역인 만큼 일꾼을 뽑아야 한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무주 출신으로 교통부장관과 농수산부장관을 지낸 黃寅性 전아시아나항공 회장이 민자당 옷을, 진안 출신으로 신민당 중앙상무위원을 지냈고 현재는 태광기연주식회사 회장인 安鐸씨가 민주당 옷을 입고 무진장의 산골을 누비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황씨 쪽에서는 “황위원장이 오랜 공직생활을 한 탓에 대중성을 확보, 40대 후반 이상 연령층의 호응도가 높다”고 자신감을 피력한다. “미워도 다시 한번”을 외치는 민주당 공천 탈락자 李相玉 의원측의 반발에 바짝 신경을 쓰고 있는 안씨 쪽에서는 자칫 방심하다가는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 “최선을 다한다”는 결의를 내비치고 있다.

 민자당 공천을 받기 직전까지도 민주당 영입설이 파다했던 高明昇 전3군사령관을 사령탑에 앉혀놓은 부안도 민자당이 전북에서 교두보 구축을 겨냥하는 곳 중의 하나다. 민주당에서는 초선의 李熙天 의원이 13대에 이어 문을 굳게 걸어잠근 채 재선 고지를 향한 수성 전략에 골몰하고 있다.

 전주 완산이나 군산 무진장 부안에 비해 민자당의 정책지구로 분류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민자당이 나름대로 기대를 거는 대표적인 곳은 익산과 남원. 익산에서는 2선의 趙南照 위원장이 10여년 동안 공·사조직을 통해 관리해온 지역구 사정을 바탕으로 세번째 여의도행 티켓을 노리고 있다. 13대 때는 1천5백표 차로 민주당 金得洙 의원에게 금배지를 넘겨주었는데 이번 14대 총선에서의 민주당 상대자는 김대중 대표 보좌관이었던 崔在昇씨.

 최씨측은 “민주당 지구당 개편대회 때 자유총연맹 모임과 영농교육을 실시하는 등 민자당이 관권과 행정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민자당에서는 지난번 익산에 아무도 공천신청을 하지 않아 이른바 무주공산이었지 않았느냐”고 지적하면서 “김대중 대표를 무조건 지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민자당의 선거전략이지만 유권자는 여당에 대한 견제세력을 원한다”면서 유권자에게 접근하고 있다. 민자당의 조씨는 지역구민에게 잘 알려진 인물인데 비해 김대중 대표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주로 중앙당에서 활동해온 최씨로서는 인물 알리기에 주력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민주, 공천탈락자 反旗에도 불안
 남원은 민주당의 趙贊衡 의원과 공천탈락자 李炯培 의원이 야권표를 분산시킬 경우 민자당이 한번쯤 눈독을 들일 만한 지역이다. 전북지역의 일부 민주당 지구당위원장들도 “민자당의 전략지구 못지 않게 안심할 수 없는 지역이 바로 남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전남에서는 동광양·광양과 담양·장성 두 곳이 민자·민주 양당의 신경전이 치열한 곳이다. 우선 동광양·광양의 민자당 주자는 4선의 李道先 의원(13대 전국구의원)이다. 장기간의 정치경력과 뛰어난 언변이 주특기이며 지역개발에 초점을 맞추어 “민자·민주당이 아니라 ‘광양당’이어야 한다”면서 지역 감정 타파를 호소하고 있다. 민주당은 인천 YMCA 이사장인 새인물 金明圭씨를 내세워 지역 고수를 다짐하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민자당의 총공세에 대응해 “빼앗겼다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되는” 정책지구인 셈이다. 이 지역은 민자당의 李相榮 전 교보 부사장의 일대 접전이 예상되는 담양·장성보다도 더 지켜볼 만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일면 ‘바람구멍 내기’라고도 불리는 민자당의 호남 공략은 전지역이 공통점을 지녔다. “당이 아닌 인물 본위 선택”이란 읍소전략에 바탕을 둔 것이다. 특히 전북의 민자당 주자들은 “전북은 영남과 전남에 대한 이중 소외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에도 거물급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지역적 손실을 감수해야만 한다”고 호소한다. 지역감정 바람에 휩싸여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민자당의 한 지구당위원장은 “넥타이 하나 고르는 데도 모양과 색깔을 따지는데 4년 동안 주권을 위임할 국회의원을 어찌 바람으로 뽑으려 하느냐”고 반문한다.

 민주당의 맞대응도 만만치 않다. “민자당이 내려보낸 호남 출신 장·차관급 후보들은 행정부 안에서 실제로 일개 면장급 대우밖에 못 받았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총알받이이다”라는 것이 민주당의 주장이다.

 민자·민주당의 주장이야 어떻든 한가지 분명한 것은 두 당 모두 지역감정을 철저하게 선거에 이용하는 동시에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호소에 의지한다는 점이다. 민자당과 민주당이 각각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대구·경북과 호남에서 의도적으로 2석 정도를 상대방에게 내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들리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역당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같은 고도의 정치전략을 구사할 만하다는 것이다.

 호남 지역에 대한 집권당의 ‘용병술’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도지사도 한 표요 두메산골 할머니도 한 표를 행사하게 되므로 결국은 유권자에게 달려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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