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은 결코 성공 못한다”
  • 모스크바·김창진 통신원 ()
  • 승인 1992.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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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소련 ‘검은 대령’ 빅토르 알크스니스

 ‘검은대령’ 빅토르 알크스니스(42·공군대령)는 강력한 권력을 기초로 한 구 소연방과 같은 단일국가 건설을 주장하며 옐친 타도에 앞장서고 있는 보수파세력의 리더이다. 고르바초프 시절부터 ‘소유즈’라 불리는 군부 보수강경파를 대표하던 그는 지난 2월9일과 23일의 반정부 시위때 앞장서서 ‘즉각적이고도 전면적인 정치파업’을 선동하는 등 제3세력 규합에 나서고 있다. 라트비아 출신인 그는 미그 29기 개발계획 등을 주도하며 20년간 공군에 몸담아왔다.

 모스크바 시내 북서쪽 지하철역 바부쉬긴스카야에서 다시 버스로 두 정거장. 지은 지 수십년은 됐을 법한 허름한 아파트로 물어물어 찾아가는 깃이 그리 수월치는 않았다. 초라하다싶을 정도의 단칸방에 스탠드를 켜고 마주앉기 전, 슬쩍 들여다본 부엌엔 큼지막한 예의 러시아흑빵이 썰렁하게 놓여 있었다. 전형적인 군인, 바로 그것이 첫인상이었다.

 이 인터뷰를 통해 알크스니스 대령은 샤포슈니코프 러시아 국방장관의 압력 때문에 앞으로 군복을 벗고 정치에 뛰어들겠다는 의사를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밝혔다.

가족이 보이지 않는군요. 여기에 혼자 사십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휴가중인데 정치활동상 모스크바에 혼자 머물고 있습니다. 가족은 라트비아공화국의 수도 리가시에 살고 있습니다. 아내는 중학교 역사선생이며, 17살된 딸과 15살된 아들이 있습니다.

최근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대령의 정치활동 목표는 무엇입니까?
 제3세력을 조직중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미 실패했고 민주파들도 곧 실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사상투쟁은 2차적이며, 전국가적 과제가 1차적으로 중요합니다. 분열된 소연방을 다시 단일한 국가로 회복시키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과연 누가 당신들을 지지하며 그 비중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지요?
 우리를 지지하는 세력은 많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기본문제는 특정한 사상이나 주의가 아닙니다. 검은 고양이건 흰 고양이건 쥐를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소연방이라는 국가를 회생시킬 수 있는 실용주의 세력이면 좌익·우익을 불문하고 손을 잡고 있습니다.

소연방시절의 소유즈그룹은 여전히 존재합니까?
 소련 최고회의가 해체되었지만 과거 소유즈그룹의 주요 멤버들이 지금도 지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지지하는 세력으로는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대의원 악슈치스가 이끄는 기독교민주당, 역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대의원인 아스타괴예프의 입헌민주당, 바부린의 러시아전인민연맹 등의 정파와 왕정주의자들, 기병들이 있고 로이메드 배제프의 노동자사회당 등 신공산주의자들과도 협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70여년간 유지되어온 구 소련의 모든 지역에서 하나의 상품이 동일한 가격으로 묶여 있는 국가가격제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또한 거의 없지 않습니까. 대령도 시장경제를 반대하지 않는 한 같은 의견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나 역시 시장경제로의 이행가정에서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가격자유화는 필연적입니다. 그러나 특정상품의 생산량을 자의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독점제도가 엄연히 존재하는 지금 상황에서 가격자유화 실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그것은 보다시피 생산량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줄어든 채 가격만을 인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먼저 기업을 민영화하고 다음에 가격을 자유화해야 합니다. 상품 부족이 현재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먼저 민영화한다고 할 경우 그 기업들을 사들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음성적으로 자본을 축적해 놓은 전직당관료나 이른바 마피아 밖에 더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결국 국영기업을 사유화하는 방법이 대단히 중요하고 기본적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한 이집트 외교관의 얘기에 따르면, 그 나라에서는 나세르 사후 20년 동안 국유화된 재산의 고작 20%만을 사유화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사유화의 문제입니다.

그와 관련하여 대령은 이 나라에서 시장경제가 정착하려면 언 정도의 세월이 걸릴 것이라고 봅니까?
 글쎄… 50년 아니면 1백년. 우리는 군수산업 전력산업 기타 중공업을 포함한 국유부문 60%와 필수품생산부문을 위주로 한 사유부문 40% 정도의 혼합경제 유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가이다르 경제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들은 ‘시장경제’를 소리높여 예찬하지만 시장에 대해서도 자본주의경제에 대해서도 이해가 부족하다는 평가인데….
 당신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가이다르는 이전에 사회주의경제의 우월성을 주장하던 정치경제학자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자본주의 경제를 깊이 알겠습니까. 그러나 오늘의 이나라 경제는 가이다르가 아니라 노벨상을 받은 미국 경제학자라도 별 뽀족한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정치문제로 화제를 옮겨보지요. 옐친 대통령이 점차 궁지에 몰리고 있는데 반대파로서 그의 지도력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지난해 8월 발트3국의 독립문서에 서명할 때 옐친은 그곳에 항구가 있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러시아공화국에서 생산되는 석유나 공업제품들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항구가 필수적입니다. 지금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에서는 엄청난 항구사용료를 요구하고 있고, 우크라이나에서도 오뎃사항 사용료를, 그루지야에서는 포지항 사용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옐친은 각 공화국들의 독립허용 포고령을 내리기 이전에 먼저 협상을 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지나치게 양보했습니다. 그 대가가 이제 엄청난 재정부담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컨대 흑해와 발트해로의 출로를 상실한 러시아는 다른 지역에 배치된 군대의 유지비를 포함하여 과중한 재정부담 때문에 성공적으로 자본주의를 실현할 수 없습니다.

대령은 기본적으로 강력한 권력을 기초로 한 단일국가건설론의 신봉자로 알고 있습니다. 그 신념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현재의 옐친 대통령이 보다 권력을 강화하여 독재자가 됨으로써 경제개혁을 성공시키는 지렛대를 마련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경제개혁의 성공을 보증하는 강력한 권력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의 상황은 다릅니다. 대통령과 의회·금융·세금 등 각 경제부문은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옐친은 경제에 대해 깊은 지식이 없습니다. 지난 7~8년간 계속 파괴 되어온 이 나라 경제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는 이 생존력이 놀라울 뿐이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공화국 할거주의가 지배하는 한 옐친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흑해함대의 관할권을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대립,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민족분쟁, 그루지야의 내전, 러시아공화국 내 자치주들의 독립움직임 등 독립국연합(CIS) 성립 전후의 여러 양상들을 놓고 서방에서는 내전의 재발 징후라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갈등없이 소련이 해체되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 세 가지 요소가 내전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첫째로 단일한 구조로 형성된 경제가 각 공화국으로 쪼개짐으로써 나타나는 경제적 모순입니다. 경제적 모순은 정치적 갈등을 초래하고 급기야는 군사적 해결책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다민족국가라는 복합적인 인민의 구성요소입니다. (구 소련주민) 전체로 볼 때 자기민족출신지가 아닌 타지역에 사는 주민이 70%에 이릅니다. 이들은 민족적·정치적·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전에도 민족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절박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셋째로 영토문제입니다. 1954년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귀속시킬 당시에는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는데 현재는 양국에 중대한 갈등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몽골까지 러시아에 영토문제를 제기하고 일본 또한 북방영토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배제하려면 우리는 중심을 가진 단일한 국가를 회복해야만 합니다. 당분간은 어렵겟지만 5년이나 10년 후 당신과 내가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단일국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웃음)

최근 여러 개의 새로운 좌익정당이 결성되었습니다. 대령은 이 여러 당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요?
 그들이 단일한 조직으로 통합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또 혹 통합된다 하더라도 집권당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공산주의 신념을 지지하는 층이 적기 때문입니다. 공산당은 정치무대를 떠났다고 봐야 합니다.

대령도 과거에는 공산주의자였습니다. 이제는 공산주의 신념을 완전히 버렸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도 단일 국가의 회복을 지지하기 때문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대령은 어떠한 신념을 갖고 있습니까?
 옛날 인도에서는 세계가 세 마리의 고래에 의존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제가 견지하는 세 가지 원칙은 첫째 단일한 국가 둘째 다당제 셋째 시장경제 및 민주화입니다.

세계 여러나라의 사례를 볼 때 강력한 단일국가와 민주화는 쉽게 조화되지 못한다는 것이 정설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내 신념은 강한 국가가 존재해야 경제개혁이나 미주화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무질서를 배제하면서 개혁을 실시하고 사회가 안정되면 민주화를 도입할 수 있습니다. 경제개혁과 민주화를 동시에 추진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네 나라 한국 그리고 일본 독일 등이 모두 이같은 방식으로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최근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독립국연합소속 군부 장교의 70%가 구 소연방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병사들의 동향은 어떻습니까? 만약의 경우 군부와 시민들의 충돌가능성은 없습니까?
 물론 병사들은 장교들과는 달리 자기고향에서 근무하고 싶어하는 비율이 더 높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장교들의 지시에 따라 행동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약의 경우라도 군인들에게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라는 명령이 하달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지금 군대에는 “참을성을 발휘하고 도발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져 있습니다. 군부와 관련해서 빈곤화와 기존 사회체제의 붕괴를 참지 못하고 인민이 봉기했을 때 2차적으로 군인들이 이에 동의할 수는 있다는 사실입니다.

개인적인 문제를 질문하겠습니다. 대령께서는 군인입니까. 정치인입니까?
 지금은 군인입니다. 그러나 몇주 후에는 군인이 아닐 것입니다. 샤포슈니코프 국방장관이 저를 제대시킬 근거를 찾도록 간부국에 요구했습니다(법적으로 대령의 정년은 50세까지이다). 이 사실을 알고 차제에 스스로 제대를 결심했습니다. 3월1일, 제대신청서를 내고 수속을 밟을 것입니다.

국방장관의 그같은 지시는 왜 나왔다고 보십니까?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는 자신이외에 군내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인물이 존재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대령은 왜 군인이 되었습니까?
 아버지가 군인이었고 할아버지 또한 유명한 공군원수였습니다. 어릴 때 집옆에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군사학교가 있었고 개인적으로 비행기에 흥미가 많았습니다. 군인이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배운 것이 많아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상 인물 중에서 누구를 가장 존경합니까?
 러시아제국의 수상을 지낸 스톨리핀을 위대한 인물로 생각합니다(스톨리핀의 전기를 내보이며). 그는 러시아를 위대한 국가로 만들기 위해 나라를 개혁하고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제국의회에서 반대파의원들을 향해 “당신들은 대단한 혼란을 원하고, 우리는 위대한 러시아를 원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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