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입시 학원비 한달 천만원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5.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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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화판 과외 성업중 … 치맛바람 극성, 사교육비 지출 연간 18조원



 작년 11월15알 도쿄 미타에 자리잡고 있는 게이오(慶應) 대학 유치사(국민학교)앞은 고급 승용차 행렬로 큰 혼잡을 빚었다. 정치가·기업인·의사·변호사·연예인 등 일본의 내노라 하는 유명 인사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야코(부모와 자식) 면접’에 참석하기 위해 학교에 왔다. 이 국민학교는 수험생의 개인 능력뿐 아니라 가정 환경과 부평의 인품까지 평가해 합격자를 고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 중 대부분은 면접에 대비해 예행 연습까지 하고 왔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이 날의 경쟁률은 약 13대1이었다. 1백30명을 모집하는데 1천7백여 명이 몰렸다는 얘기다.

 이같이 경쟁이 치열한 것은, 이 국민학교에 한번 입학하면 부속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무시험으로 진학하는 특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즈키 젠코(鈴木水善)나 나카소네 야스리로(中會根康弘)전 총리의 아들들이 이런 에스컬레이터 방식으로 게이오 대학을 졸업하고 금배지를 달았다.

 

국민학교 입학하려고 과외 공부

 그뿐 아니다. 대부분의 꼬마 수험생들은 이 학교의 치열한 입시 경쟁을 돌파하기 위해 연간 수업료가 1백20만엔(약 천만원)이나 하는 ‘쥬쿠(熱)’ 즉 과외 학원을 다닌다. 현재 도쿄에는 이런 고급 과외 학원이 30여 군데나 있는데, 그 중에는 여름방학 때 휴양지 호텔을 빌려 특별 과외 수업을 하는 학원까지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일본의 치맛바람도 한국 못지 않게 극성스럽다. 일본에서는 이런 극성파 엄마들을 ‘교육 마마’라고 부르는데, 이들 때문에 일본의 사교육비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야노경제연구소의 추산에 의하면, 일본 과외 시장의 규모는 약 2조3천억엔(약 18조4천억원)에 달한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이 추산한 한국 초·중·고생들의 과외비 총액이 5조8천억원이므로, 일본의 교육 마마들은 한국의 약 세 배에 달하는 돈을 과외비로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야노경제연구소는 총 과외비의 절반 이상인 약 1조2천억엔은 이른바 ‘가쿠슈 쥬쿠’로 부르는 과외 학원으로 흘러 들어가는 돈이라고 밝혔다. 그밖에 피아노·무용 등을 배우는 데 드는 돈도 5천6백억엔에 이른다.

 일본의 연간 방위비 총액에 버금가는 돈이 과외비로 낭비되는 이유는, 한국 못지 않게 치열한 입시 경쟁 때문이다. 일류 대학을 나와야만 일류 관청이나 유명 기업에 입사할 수 있는 학력 사회가 존재하는 한 이런 과외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을 것이라고 교육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일본의 <교육백서>에 따르면, 과외 열기는 날로 과열되고 있다. 문부성이 재작년에 조사한 ‘가쿠슈 쥬쿠에 관한 실태 조사’를 인용해 보자. 조사 결과 국민학생의 23.6%, 중학생의 59.5%가 어떤 형태로든지 과외 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70년대에 실시한 똑같은 조사에서 이 비율은 각각 12,0%와 38.0%였다. 20년 사이에 과외 열기가 거의 두배로 팽창한 셈이다.

 그러나 민간 조사 기관이 조사한 결과는 문부성 조사보다 훨씬 심각하다. 예를 들어 도카이은행은 국민학교 5학년생의 61%, 6학년생의 74%가 과외 학원에 다니거나 가정교사를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도카이은행은 또 일본의 초·중·고교 학생 전체로 보면 가쿠슈 쥬쿠에 다니는 빈도가 1주일에 세 차례에 이른다고 지적한다. 이들이 내는 월평균 과외 수업료도 적지 않다. 국민학생은 1만5천엔, 중학생은 1만9천엔, 고등학생은 2만5천엔에 이른다. 자녀를 2명 두고 있는 교육 마마는 평균 월수입의 10% 이상을 과외비로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이런 과외 열기의 팽창과 함께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바로 ‘쥬쿠 산업’이다. 도쿄 근교의 가와고에(川越) 시는 인구 40만명의 전형적인 교외 도시다. 최근 이 도시 역 주변에 빌딩 신축 붐이 일고 있는데, 건축주의 상당수는 ‘주큐 사장’ 이다. 작년 말 완공된 10층짜리 건물에 들어선 ‘에이코(榮光) 제미날’이란 쥬쿠는 사이타마 현을 본거지로 일본 전국에 3만명의 수강생을 갖고 있는 일본 최대의 가쿠슈 쥬쿠다. 이 쥬큐는 일본 전국에 64개의 자매교를 갖고 있다. 작년 말 매출액은 91억엔이었다.

 도쿄 중심부를 순환하는 야마노테센(山手綠)이란 전차를 타보면 역 주변 광고는 온통 쥬쿠선전 간판으로 메워져 있다. 시신(市進), 야마타기쥬쿠(山田義), 와세다(早稻田)아카데미….

 그뿐 아니다. 소수 정예를 내세워 고액의 수업료를 징수하는 초호화판 쥬쿠도 상당수 있다. 도쿄에서 부잣집 동네로 유명한 세타가야구에 자리잡고 있는 ‘산켄차야(三幹茶屋)개별 지도 교실’은 의과 대학을 지망하는 학생을 위한 과외학원이다. 이 학원의 연간 수업료는 물경 천만엔. 입학금·기숙사비·교재비 등을 합치면 연간 과외비 총액이 1천5백만엔으로 늘어난다.

 

과외 열기 잠재울 묘책 없어

 1천5백만엔이라면 한국 돈으로 약 1억2천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과외학원의 오이타 겐이치(大井田建一) 이사장은 “의과 대학에 합격만 할 수 있다면 현재 의사들의 수입으로 봐서 1천5백만엔은 그리 비싼 투자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 이 학원의 정원 40명이 모두 의사 자제들이라고 말하고, 아들이 의과대학에 합격해야 자기 병원을 대물림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부형들이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사실 1억엔이나 2억엔을 기부금으로 내고 의과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도 상당수 있는  일본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1천5백만엔은 큰돈이 아닐 수도 있다. 합격한다는 보장만 있다면.

 일본의 각급 학교는 올 4월부터 매월 두차례씩 토요일 수업을 폐지한다. 일반 사회의 ‘주 이틀 휴무제’ 보급에 따른 조처다. 휴일을 늘려줌으로써 자유로운 인간 형성을 꾀한다는 거창한 목표도 있다. 하지만 토요일 휴교에 따른 불안도 적지 않다. 토요일에 어린이를 돌볼 수 없는 가정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가정의 어린이들은 자연히 불량 어린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토요일 휴교가 확대되면 과외 열기가 더 불붙을 수도 있다는 것이 교육 전문가들의 걱정이다. 토요일에 어린이들을 학교에 맡길 수 없어 대신 과외 학원에 보내게 된다는 추측이다.

 사실 앞서의 가와고에 시 ‘에이코 제미날’ 관계자는 휴교일 확대에 따른 ‘과외 특수’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이다. 그에 따르면 일본의 쥬쿠 산업은 최근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는 상태다. 출생률 저하로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5년째 계속되는 불황이 경영 수지를 압박하고 있다. 한 민간 조사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수입이 줄어드는 가정에서는 제일 먼저 자녀들의 과외비를 줄이는 현상이 일고 있다고 한다.

 아직 주위 시선 때문에 ‘토요 과외’를 시작하겠다는 가쿠슈 쥬쿠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경영 상태가 악화하고 있는 일본의 쥬쿠 산업이 이런 호재를 외면할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교육 마마들도 부담이 또 늘어난다는 점에서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일본의 과외 열기는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 평등주의 교육을 도입하고, 이를 관철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라는 지적이 많다. 더욱이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시대에 획일적 인간을 대량 생산하는 평등주의 교육은 시대착오적 교육이라는 비난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과외 열기를 잠재울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일본은 아직 고학력과 학벌이 판을 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교육 전문가들은 입사 원서에 학력 기재난을 폐지한 소니와 같은 의식 개혁, 수험 능력에 관계없이 개인의 특기를 평가해 주는 아세아 대학의 ‘1인 1기 입시제도’와 같은 입시 개혁을 확대하지 않는 한 일본의 과외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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