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새롭게 본다” 외국기자 집필 잇달아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2.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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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뉴스위크》 등 기자 “오랜 취재 경험 바탕”


 


지난해 12월 《뉴스위크》지에 한국의 과소비 행태를 특집보도해 관심을 모았던 브래들리 마틴(50) 도쿄 지국장. 그는 지난해 이 잡지를 끝으로 20년이 넘는 기자생활을 마감하고 폴브라이트 연구원이 되어 두달 전 내한했다. 그는 현재 한국에 관한 책을 준비중이다. 1년 동안 머물 예정으로 하루 4시간씩 한국어 강좌를 들을만큼 열의가 대단한 그는 “지금부턴 철새 외국인이 아닌 정규 외국인으로서 한국을 제대로 알고 책을 쓰고 싶어 한국어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외교문제에 관한 분석기사로 정평이 있는 노기자 돈 오버도퍼도 내년 봄 24년간 몸담았던 <워싱턴 포스트>지에서 은퇴하는 대로 70년대 이후의 남북한 정부 통일 노력을 분석한 책을 쓸 예정이다. 61세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지금도 정력적인 취재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기자와의 국제통화에서 “한국이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데 비하면 한국에 관한 책들이 너무 없다”고 꼬집었다.

 

“위상 걸맞는 한국 소개서가 없다”

오버도퍼나 마틴말고도 <유에스에이 투데이>지 도쿄특파원을 지낸 도널드 커크,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의 서울 특파원을 지낸 마크 클리포드, 《타임》지 특파원을 지낸 프랭크 기브니 등이 한국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주로 70년대 이후 한국의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발전사를 다룬 것이다.

이들이 밝히는 집필 동기는 한결같다. 한국의 위상이 날로 높아가는데도 한국을 제대로 소개한 책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보문고 외국책 전시장 한쪽 편에 마련된 한국 관련 서가의 책들은 대부분 한국어 교습본이나 민담, 요리 등을 소개하는 것들로 해방 후 50~80년대 격동기 시절의 한국 정치상황이나 경제문제를 다룬 책은 거의 없다. 전 주한미국외교관인 그레고리 헨더슨이 한국정치를 독특한 시각으로 분석한 60년대의 저작 《소용돌이의 정치》(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가 고작이다. 2년전에는 미국의 여류학자 앨리스 엠스덴이 한국경제를 분석한 《아시아의 위대한 거인》(Asia's Great Giant)을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에서 펴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을 정치·경제·사회 등 여러 측면에서 소개한 영문 연구서적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서방인이 우리나라에 관한 책을 낸 지는 1백년이 넘는다. 1876년 문호를 개방한 이래 이 땅을 다녀간 서방인들이 쓴 책들은 주로 한국의 풍물에 관한 것이다. 캐나다 선교사였던 제임스 게일의 《한국 스케치》(Korea Sketches)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영국이 앨라인 아일랜드가 친일적 시각에서 쓴 《새로운 한국》(The New Korea)이나 컬럼비아대 아시아 경제전문가인 앤드루 그라이단제브의 《현대 한국》(Modern Korea)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해방 이후엔 거의 없다시피하다. 따라서 요즘 일부 서방기자들의 한국 책 출판 붐은 헨더슨의 노작이 나온 이후 30여년 만에 나타난 하나의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은 6·25동란 때 세계 뉴스의 초점이 됐지만, 정치·경제적 후진성을 벗지 못했던 70년대 말까지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한국이 어느 정도 세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민주와 시위로 홍역을 앓던 80년대부터로, 특히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비로소 본격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서방기자들의 한국 책 출판 붐은 이제 때를 만났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쓰는 책은 미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마틴씨는 “외국기자들이 쓰는 책은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놀랄 만한 새로운 사실을 담고 있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인이 알고 있는 그 사실을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들 서방기자 가운데 원고 집필을 마쳤거나 막바지 보완작업에 들어간 사람은 클리포드씨와 커크씨, 《타임》지 특파원을 지낸 프랭크 기브니씨이다. 기브니씨는 연락이 닿지 않아 직접 논평을 얻지 못했으나 《뉴스위크》지 북경 특파원으로 있는 그의 아들 기브니 2세는 “한국전 종군기자 출신인 아버님이 오랜 한국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집필해 곧 출간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제전문 기자인 클리포드씨(35)는 서울올림픽이 끝난 후부터 집필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는 책 내용도 “한국 민주화의 분수령이 된 지난 87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의 한국경제발전사에 비중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6공 출범 이후의 경제문제까지 취급하느라 출간이 늦어지고 있다며 “기자적 관찰과 학구적 자료를 겸비한 책을 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근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에 기업가에서 정치가로 변신한 정주영씨의 편력을 소개한 커크씨(54)는 현대그룹에 관한 책을 탈고했다. 지난 72년 <시카고 트리뷴>지 도쿄특파원으로 부임한 후 줄곧 한국을 관찰해 왔다는 그는 “현대그룹을 통해 70년대 이후 한국 경제의 맥을 짚어보려 했다”고 말했다. 최근 내한한 그는 “저술을 위해 정주영씨를 비롯해 많은 현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지만 정작 정씨 일가의 사람들은 입을 다물어 취재에 애를 먹었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모두 26장으로 이뤄진 그의 책 《한국왕조 : 현대》는 내년 중 출간될 예정이다.

고려대학교 외국인기숙사에 숙소 겸 사무실을 얻어 집필에 열중하고 있는 마틴씨는 지는 74년부터 3년간 미국 <볼티모어 선>지의 도쿄특파원으로 있으면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주로 70년대 이후 한국의 정치사회상을 조명하되 3차례 북한취재를 바탕으로 남북한 통일문제도 깊이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6년 《뉴스위크》지로 옮긴 뒤부터 한국에 관한 책을 본격 구상했다는 그는 “가장 어려운 것은 자료수집이 아니라 하루에도 몇시간씩 컴퓨터와 씨름하며 원고를 쓰느라 목과 허리가 뻣뻣해 지는 것”이라며 웃었다.

 

수박 겉핥기 소개에 그칠 수도

<워싱턴 포스트>지 오버도퍼 기자는 지난 53년 미군 소위로 판문점에 부임해 8개월쯤 근무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특히 그는 지난 72년부터 3년간 <워싱턴 포스트>지의 도쿄특파원으로 있으면서 “3년 동안 최소한 25차례 한국을 왕래하며 취재했고 그 뒤로도 한국을 면밀히 관찰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은 계획단계에 불과하나 책의 주제는 남북관계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 지난 72년 이후 최근까지의 남북한 통일노력에 관한 것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봄 회사를 은퇴하는 대로 그는 우선 그간의 한국관계 자료를 수집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베트남의 구정 대공세를 그린 60년대의 저작 《테트!》(Tet!)(베트남어로 舊正이란 뜻)와 1980년대의 미·소관계를 심층적으로 조명한 《전환》(The Turn)(91년 출간)은 대학에서 참고서로 쓰일 만큼 학문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오버도퍼 기자는 한국에 관한 책을 쓰는 데 최소 2년을 잡고 있다. 그는 “70년대 당시 한국을 취재하면서 발표할 수 없었던 많은 미공개 기사도 내 책에 포함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서방기자들이 국제적인 일반독자를 겨냥해 책을 낸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무턱대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자칫 한국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의 서울지국장인 沈在薰씨는 “오랫동안 한국문제를 공부하며 깊이 연구해온 서방기자라면 몰라도 2년이다 3년 간의 취재경험을 바탕으로 수박 겉핥기 식의 책을 낸다면 오히려 한국의 진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오버도퍼 기자도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한국을 별로 알지 못하는 국제독자들에게 얼마나 제대로 설명하느냐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널리 알리는 것도 좋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정확히 알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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