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공약, 실천성 검증한다
  • 김상익 경제부 차장대우 ()
  • 승인 1992.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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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 · 민주 선심성 정책 남발…유권자 진실성부터 따져봐야

 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이 내놓은 정책을 차분히 비교 · 검토하고 이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때이다. 선심성 개발공약이나 현실성 없는 경제정책이 남발돼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경제가 더욱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현실이다. 그러나 정치판은 여전히 정책대결을 뒷전으로 밀어놓은 듯하다. 단적인 예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3월5일 각 당의 정책담당자들을 초청, 경제공약을 중심으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언론의 보도태도 역시 정책대결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정당이 내놓은 정책을 하나하나 분석해 유권자의 판단을 돕기보다는 이를 싸잡아 비난하기 때문에 정책제시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민자당은 1백80개의 공약을, 민주당을 1백52개 항목의 정책대안을 제시했다. 국민당과 신정당 민주당도 나름대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59~60쪽 참조). 이처럼 쏟아져나온 공약홍수 속에서 유권자들은 그것이 실현 가능성 있는 정책대안인지 선심성 공약인지 가려내기 힘든 형편이다.

 경제정책의 경우, 민자 · 민주 양당은 물가안정 · 주거안정을 이뤄 민생문제를 해결하겠노라고 장담한다. 토지공개념을 강화하고 재벌의 경제력집중을 완화하는 한편 중소기업을 육성, 경제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다. 양당 모두 농어촌 경제 활성화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민자 · 민주 양당이 내놓은 경제공양 중 10개 공통 부문(왼쪽 표)을 간추려 그것이 과연 실현가능한 약속인지 따져본다.

물가대책 : 민자당을 소비자물가를 5%, 도매물가는 2~3% 수준으로 묶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민주당은 구체적 수치를 거론하지 않고 있다. 양당이 물가안정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대동소이하다.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고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며 통화관리를 합리화하는 한편 농수축산물 유통구조를 개선, 생필품가격을 안정시킨다는 것이다. 공공요금 인상 억제와 관련, 민자당은 필요할 경우 재정지원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공기업 운영을 합리화해 공공요금 인상요인을 제거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물가안정은 재정 · 금융 · 부동산정책과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각 부문별 정책의 성패여부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소지가 크다. 그런 만큼 각 당의 물가대책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부동산투기 근절 : 민자당의 방안은 근본적으로 토지공개념 관련 3개 법안, 즉 택지소유상한제 · 개발이익환수제 · 토지초과이득세를 보완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민자당측은 그동안 “토지공개념 정착을 위해 많이 노력했으며 미흡한 수준에 머물렀던 과표의 현실화를 앞당기겠다”는 입장이다. 토지공개념 제도와 관련, 민주당은 민자당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 부산 등 6대도시만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택지소유상한제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한편 토지를 많이 보유한 사람에게 세금을 많이 물리기 위해 과세표준을 공시지가로 전환하고 비과세 및 면제조항을 대폭 축소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실련이나 토지학교(교장 金容駿 고려대 교수)측은 “민주당 안이 이론적으로 더 잘 정리돼 있는 것 같으나 토지공개념 3개법을 보완하겠다는 점에서 민자당 안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전국토지의 극히 일부분만을 대상으로 하는 택지소유상한제나 토초세와 같은 ‘편법’에 매달리지 말고 종합토지세와 양도소득세를 정상화하여 ‘정공법’으로 토지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거안정 : 민자당과 민주당 모두 1가구 다주택소유를 막고 주택금융을 확대하여 영구임대주택을 많이 짓겠다는 입장이다. 도시재개발과 관련하여 ‘선대책 후철거’가 공통된 공약사항이다. 특히 앞으로 5년간 매년 50만호씩 주택을 공급한다는 민자당 안에 대해 대부분의 주택전문가들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다만 한꺼번에 50만호 이상을 무리하게 공급할 경우 91년의 레미콘 파동과 같은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수도권 집중억제 : 민자당은 공장 대학교 공공기관 연구소 등 인구유발시설의 수도권내 신증설을 억제하는 한편 지방으로 이전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세제 및 금융지원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공장용지의 대부분을 지방에 배치하며, 각 지방 금융기관을 신설하되 금융자금의 일정비율은 타지역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정책을 세워놓고 있다. 지방산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민자당은 주요공단 배후도시에 과학기술대학을 신설하는 등 우수한 인력을 현지에서 양성한다는 방안을 세워놓고 있다. 민주당도 공공기관의 지방이전과 지방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 및 금융지원을 약속하고 있으나 국토의 균형개발에 관해서는 ‘합리적인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입안과 시행’ ‘낙후지역 개발’ 등 피상적인 구호에 그치고 있다. 반면 민자당은 서해안개발사업 (총예산22조3천억원)을 적극 추진하고, 제주도를 국제관광지로 육성하며(제주도개발특별법), 강원 충북 경북지역에 국민관광 휴양지를 조성한다는 등 방만한 개발공약을 내놓고 있다.

중소기업 육성 :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것이 민자 · 민주 양당의 공통된 생각이다. 먼저 민자당은 중소기업 구조조정기금을 현재의 1조원에서 96년에는 2조원으로 확대하고 창업절차를 간소화해 ‘승인창구 일원화’를 꾀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창업 승인절차 일원화 공약과 관련, 지난 7일 경실련 주최 ‘정책공약 평가 세미나’에서는 “부처간 영역다툼이 심한데 이를 효과적으로 사전조정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96년까지 1천억원의 소기업공제기금을 신설한다는 민자당의 방안도 기금규모가 미약하고 어떻게 지원하겠다는 구체적 방안도 제시되지 않아 선심용으로 제시된 것 아니냐 하는 의심을 샀다.

 민주당은 기술집약형 중소기업의 창업을 적극 지원하는 한편 중소기업 고유업종에 대한 대기업의 침식을 방지하고, 하도급 대금지급지연 등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를 엄격히 규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정책방향만 제시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정책방안과 집행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제력 집중 완화 : 민자당은 경제력집중 완화 방안으로 소유분산과 기업경영 전문화를 내놓고 있다. 먼저 소유집중을 분산화하기 위해 비공개 계열사를 공개하도록 하여 내부 주식지분율 축소를 유도하고 상속 · 증여세를 강화해 부의 세습화를 방지한다는 것이다. 기업경영의 전문화를 위해서는 계열기업별 주력업종을 전문화하고, 주력업체에 대한 대출금 관리를 강화하며, 상호지급보증 및 순환적 상호출자 등 기업관행을 단계적으로 고쳐나간다는 계획이다. 민주당도 기업공개 유도, 주력업종에 대한 여신 사후관리 강화를 경제력집중 해소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건국대 崔廷杓 교수(경제학)는 “경제력집중 문제의 핵심사항은 바로 재벌문제인데 총수와 그 가족에 의한 전근대적 소유 및 경영구조가 유지되는 한 이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계열기업 공개는 총수와 그 가족의 지분율을 낮출 뿐 재벌에 의한 경제력집중을 완화하는 효과는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기업경영 전문화 방안도 가문 중심의 기업경영체제가 존속하는 한 확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룹 중심의 통괄운영방식에서 탈피, 개별기업별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그 구체적 방법은 제시되지 않았다.

농어촌 활성화 : 농수산물 수입개방과 관련, 민자당은 쌀수입 반대 등 원론적 차원에 머물고 있으나 민주당은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민주당은 쌀 쇠고기 등 15개 품목의 기초식품의 개방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가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추진하고 있으나 서방 선진국 중심인 이 기구에 가입할 경우 수입개방이 가속화할 것이므로 이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또 우루과이라운드가 ‘농수산물 전면개방’으로 타결된다면 국회에서 비준동의를 거부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반면 민자당은 개방대응책 마련에 치중하고 있다. 농축수산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반을 확충하는 데 정책의 무게 중심을 놓고 있다. 예컨대 농업진흥지역을 지정, 농지소유상한을 3정보에서 20정보로 늘리는 한편 농업구조조정을 위해 앞으로 10년간 42조원을 투자한다는 것이다. 민자당과 민주당은 농어촌 후계인력 육성을 위해 농어촌후계자에 대한 병역특혜도 약속하고 있다. 단국대 長原碩 교수(농업경제학)는 “민자당의 공약에 농산물 가격 및 농가소득 정책이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농업구조 개선을 위한 자금 42조원 중 12조원은 빌려주는 돈이기 때문에 농민 입장에서는 부채인데 이를 마치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홍보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당의 농어촌 정책에 대해서는 여러 유관단체의 제안을 거의 모두 받아들여 이상적이기는 하나 우선순위가 불분명하고 구체성이 결여돼 이행 가능성에 대한 고려 없이 공약으로 늘어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고 꼬집었다.

사회간접자본 확충 : 민자당은 장기적으로 남북 7개축 동서 9개축의 격자형 도로망체계를 구축하여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는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재의 전국 도로연장 5만7천㎞를 앞으로 20년간 3배로 늘린다는 것이다. 부산 인천 광양 군산 아산 목포 등지에 항만시설을 확충, 하역능력을 확대하고 경부고속전철과 호남고속전철 건설을 추진한다는 구상도 하고 있다. 영종도 신공항건설, 다목적댐 건설, 하천개수 등의 공약도 있다.

 민주당 역시 상수도 보급률 확대, 제2경인고속도로 조기완공 영동고속도로 4차선 확장 등교통부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생각이다. 민자당과 민주당이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고속전철이다. 민주당은 6조원 이상의 재원이 필요한 경부고속전철 건설 대신 제2경부고속도로의 건설과 경부선 철도의 복복선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사회간접자본 확충에는 큰 돈이 들어가며 지역개발과도 맞물려 있어 곳곳에서 선심성 공약이라는 인상이 풍긴다.

세제개혁 : 민자당은 근로소득 공제한도를 높여 근로자의 세부담을 덜어주는 한편 특별소비세 과세 대상을 축소하고 세율을 낮춘다는 공약을 앞세우고 있다. 민주당도 근로소득세율 인하와 공제액 확대를 약속하고 있다. 또 직접세 중심으로 세제를 개혁하기 위하여 부가가치세 세율을 10%에서 5%로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금융실명제 : 민자당은 “비실명 금융자산에 대해 높은 세금을 부과하여 금융거래의 실명화를 유도하는 등 금융실명제의 단계적 실시에 필요한 여건을 조성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금융실명제 조기 실시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과거의 탈세 및 부당소득을 끝까지 추적하여 과세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숙명여대 尹源培 교수(경제학)는 “비실명 금융자산은 이자수입을 목적으로 예치되어 있는 자산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예치된 투기성 자금이거나 정체가 밝혀지기를 꺼리는 불법적 자산인데 어떻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인가”라며 민자당의 실천의지를 의심한다. 윤교수는 성급한 개혁은 단기적으로 큰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과거의 부당소득을 끝까지 가져올 수 있으므로 과거의 부당소득을 끝까지 추적, 과세하겠다는 민주당의 의욕도 “이상에 치우쳐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민자 · 민주 양당이 내놓은 경제공약은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해소할 방안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 약속대로라면 4년 뒤 한국은 ‘경제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약 중에는 구체적 실천방안이 제시되지 못한 것들도 많고 의욕이 앞선 나머지 현실성을 잃은 부분이 많다. 우리 유권자들이 정책의 진실성과 실천성을 국회의원 선출의 기준으로 삼아야만 고질화된 타락선거를 뿌리뽑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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