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망치는 ‘재개발 재건축’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1995.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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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훼손 · 도시 재생력 상실 초래…고층 아파트보다 다세대 주택 건설 바람직

재개발 재건축을 두꺼비 게임이라고 한다. 헌집을 받고 새집을 주되 원래 집보다 훨씬 큰 집을 주니 보통 두꺼비가 아니다. 그러나 이 두꺼비 게임에서 얻는 개발 이익이 두꺼비(시공업체·전문 브로커·조합)와 집주인에게 양분되는 동안 도시 자체가 어떤 변화를 겪는지를 들여다본 사람은 거의 없다.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건미준)이 지난 2월16일 ‘재개발 재건축 1995. 어떻게 전개해야 할 것인가’를 주제로 흥사단 강당에서 연 토론회는, 이 두꺼비 게임을 자금 운용이라는 시각이 아니라 도시 재생력의 문제로 보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 주택정책=정건 유착”

 발제를 맡은 김진애씨(도시건축 프로듀서)는 “주택 문제를 풀자고 도시 문제를 가속화하는 것이 지금의 재개발 재건축 정책이다”라고 전제하고, 주민의 이해와 시민의 권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재개발 재건축이 주민과 업자를 투기꾼으로 만드는 동안 산과 강이 훼손되고 도시 전체가 재생 능력을 잃어 간다는 것이다. 국토개발연구원과 대한주택공사 관계자들, 주택업자들은 개발이 아니라 정비 관점에서 도시를 봐야 한다는 김씨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강병기 교수(한양대·건축학)는 한국 주택정책이 ‘정건 유착’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누구를 위한 주택정책이냐”고 반문했다. 이같은 지적은 한국의 주택정책이 중동붐 이후 건설업 살리기를 전제로 출발했다는 시각과 관련이 있다. 이는 주택정책과 도시공간계획이 따로 놀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는데, 실제로 정부가 주택공급률을 공개하지 않거나 실제보다 줄여서 발표하는 것이 이같은 비판을 초래하고 있다. 전문가에 따르면 서울의 주택 보급률은 약 77%, 정부 통계에 의하면 약 67%이고, 경제기획원은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저층 아파트 재개발 재건축=고층 아파트’라는 등식은 이 날 심포지엄에서 가장 매서운 비판을 받았다. 건축가들은 고층 아파트 대신 다세대 다가구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했는데, 고층 아파트보다 ‘스펀지 효과’가 크다는 점과 고층 아파트 위주의 재개발이 빚는 각종 환경 문제의 부담이 적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강교수는 “그동안 헐어 없앤 산동네 달동네 판자촌의 인구 수용 능력과 고층 아파트의 인구 수용 능력을 비교할 때 다가구 다세대 주택의 효용은 무시할 수 없다. 쫓겨난 사람들을 도와준 것은, 고층 아파트가 아니라 다세대 다가구 주택이다”라고 강조했다. 강교수에 따르면, 80년 30%이던 서울의 과밀 거주 지역이 95년 현재는 11%로 줄었는데, 이 ‘서러운 사람’들을 받아들인 것은 주택공사도 대기업도 아닌 다가구 다세대 주택이라는 것이다.

 김진애씨는 고밀 개발을 통해 누가 어떤 이익을 얻으며, 그 사회적 부담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에 주목한다. 즉 주민들이 이주비와 시세 차익 등 단기 이익을 얻는 대신 조합은 상가 운영권 등을 확보하고, 시공자는 일반 분양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그러나 교통·상하수도·쓰레기·통신의 증가와 일조권 침해 등 환경 오염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 비용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김씨는 “현재는 이러한 사회 비용을 개발자측에 부담시킬 장치가 없으므로 고스란히 시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시공자와 조합이 단기적으로 ‘치고 빠진’ 자리에는 과밀과 과부하의 후유증만 남는다는 것이다.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반대하는 소수의 목소리가 묵살될 수밖에 없는 제도적 허점도 지적되었다. 저층 아파트 입주자 중에는 재건축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으나, 주민 80%가 동의하면 소수 의견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김씨에 따르면, 서울 반포나 잠실 지구 저층 아파트 주민 중 대다수는 세입자들로서 집주인들과 달리 재개발을 원치 않는다.

 주택 보급률을 다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 되었다. 많이 짓는다고 보급률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규모의 주택을 어느 위치에 지어야 하느냐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19평 이하의 소형 주택이 급격히 줄고 중·대형 주택 비율이 계속 늘어날 경우 주택 공급률은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재개발 재건축을 지금과 같은 추세로 진행할 경우 주택 공급률은 오히려 떨어진다는 통계가 나와 흥미롭다.

 김씨는 강남 지역 저층 아파트 재건축이 현재 추이대로 계속될 경우 강남의 총 주택 수는 줄어들 수도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강남 4개 구의 저층 아파트 33만7천여 호를 고층으로 재건축할 경우 오히려 3천여 호가 줄어 약 33만3천호가 된다는 것이다.

 현재 인가된 암사 시영 아파트 재건축의 경우, 5층을 28층짜리 고층 아파트로 재건축하면 세대수는 겨우 7백호(2천2백60호에서 2천9백60호) 늘어나는 데 비해 밀도는 3배나 높아진다.

 재개발 재건축의 가장 큰 문제는 도시 재생력의 문제이다. 아파트 단지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담을 둘러치는 것은 다반사이고, 도로를 내지 않아 인근 지역간 생활 동선이 끊길 뿐 아니라, 공공 시설을 짓지 않으려고 분할 개발하는 편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주로 산등성이 비탈에 들어서는 재개발 아파트와 강변에 세워지는 재건축 아파트가 산과 강의 경관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이다. 김영섭씨(건미준 대변인)는 “재개발 재건축에 대한 경관 심의가 있으나 수도권 경관 심사에서 통과되지 못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비판하면서, 무엇보다 경관 심의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날 건미준은 재개발 재건축 지구에 대한 주변 환경 보상 제도를 도입하고 세대 수 증가 의무조항을 폐지하라고 제안했다. 즉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환경 영향 평가를 통해 공원·주차장·도로 등 주변 지역에 대한 공공 용지와 시설을 제공하게 하고, 재건축 때 세대 수를 30% 늘리도록 의무화한 서울시 지침을 폐지하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올해는 어느 때보다 재건축과 재개발이 많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민선 시장선거를 거치면서 건축 허가는 ‘허가가 아니라 통고’로 대체되는 단계가 된다는 것이다.

 김영섭씨가 “무엇보다 자치단체 행정부가 민원을 꿋꿋하게 처리하고 주민의 인기에 영합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결론짓는 것은, 시민 의식에 호소하기에는 두꺼비 게임의 단맛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金賢淑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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