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없는 ‘산울림’ 10년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1995.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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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 산울림소극장의 ‘품위 있는 무대’ 외면

데생이 없는 추상화처럼 모호한 연극이 실험이나 전위라는 이름으로 판치는 가운데 사실주의 극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 서교동의 산울림 소극장이다.

 산울림극단은 지난 10년 동안 40여 편의 연극을 무대로 올렸다. 이 10년간 산울림소극장은 <위기의 여자> 공연 때처럼 예약 관객이 줄을 설 정도로 신바람나는 날도 있었으나 그보다 더 많은 날을 쓸쓸히 보냈다. 관객이 한 사람도 없어 공연을 하루 쉰 적도 있다. 그러나 그 40편의 작품이 모두 일정한 수준을 지켜 왔다는 점, 그것이야말로 산울림의 존재 증명이다.

 한국에서 연극하는 이가 자체 극장을 지어 연극 행위를 한다는 것은 만용이요, 10년을 유지하는 것은 기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못 하나 지원 하지 않는 나라에서 사재를 털어 극장을 짓고 관객이 포르노 무대로 몰리는 상황에서 ‘품위 있는’ 연극을 고집하는 만용과 기적의 인물이 바로 연출가 林英雄씨(62) 부부이다.

 

여성 연극의 발상지

 10년 전 임영웅 · 오증자 부부가 서교동에 3층짜리 극장을 짓기 시작했을 때 그들이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은 부인 오증자씨(서울여대 불문학 교수)의 번역 인세와 여기저기서 끌어들인 사채 그리고 산울림이라는 브랜드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임씨가 라디오 드라마 연출 등으로 버는 돈은 극단을 유지하는 데 녹아 없어지기 마련이다. 오씨는 “재직하던 대학에서 직원 상조회비까지 대출받아 보탰다”고 회고한다.

 겨우 건물을 올려 놓고도 정작 개관은 1년 뒤로 미루어야 했다. 조명 시설과 의자 백석을 충당할 비용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친구들이 조명기를 달아주고 의자를 들여놓아 주어 문을 연 것이 85년 3월. 개관 후 약 3년간 산울림의 무대는 화려했다. 이 나라의 내로라 하는 무대 예술가들은 거의 모두 이 무대를 거쳐 갔다. 연극인들은 물론 김복희·김화숙 등 현대무용가들의 공연과 김남윤·박은희 등의 실내악 페스티벌이 3년이나 이어졌다. 인간문화재 성금련씨는 이 무대에서 마지막 가야금 공연을 하기도 했다.

 특히 개관 1주년을 기념하여 기획한 <위기의 여자>는 산울림소극장에 활력을 심어 주었다. 대학로처럼 연극의 거리도 아니요, 명동처럼 중심지도 아닌 변두리 동네까지 여성 관객들이 남편을 동반하고 찾아왔다.

 <위기의 여자>로 시작된 여성 연극이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보았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으로 이어지면서 주부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강남의 주부들까지 셔틀 버스로 실어 날랐으니 당시 <위기의 여자>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래서 지금도 산울림소극장은 여성 연극의 발상지로 불리며 늘 관객이 차는 극장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임영웅씨 부부는 이런 선입견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여성 연극은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한 많은 작품 중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때 그 관객들이야말로 이들 부부에게는 위안과 실망을 동시에 안겨준 관객이다. “<위기의 여자>를 봤으면 <빈센트 반 고호> 같은 연극도 보러 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 모습에는 ‘그때 그 관객’이 모두 고정 관객으로 남지 않은 데 대한 깊은 실망이 담겨 있다.

 소리 없이 사라져간 산울림의 좋은 연극들, 그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그만큼 큰 것이다. 실존적 존재로서의 여성을 남편의 외도에 고민하는 여자로만 보려 했던 경향도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

 

“연극계, 새로운 것에 관심 가져야”

 오씨가 <위기의 여자>를 기획한 것은 그 해가 한국에서 여성 교육이 시작된 지 꼭 백년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여대생 관객으로서 잠깐 연극계에 출입하다 만 여성들을 모두 객석으로 끌어낼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오씨가 꺼내든 것이 보부아르의 작품이었다. 주위에서는 모두 반대했다. 실존주의 사상을 담은 작품이라 너무 어렵고 나이 오십이 넘은 여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관객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오씨는 “새로운 것, 익숙지 않은 것에 대한 관심이 한국 연극계에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산울림은 지금 위기의 극장이다. 10년을 끌어 왔다는 사실을 대견해 할 겨를도 없으리만큼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임영웅씨가 요즘 들어 부쩍 동랑(東朗) 유치진을 떠올리는 것도 이 불안과 무관하지 않다. ‘동랑이 오죽했으면 애지중지하던 드라마센터를 예식장이나 역도 대회장으로 대관했을까’. 산울림극장에 속셈학원이나 태권도 도장이 들어서는 날 동랑 선생은 이들 부부의 꿈에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날까.
金賢淑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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