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쌓으며 돈 버는 ‘3차원 상술’
  • 유순하(소설가·경제 평론가) ()
  • 승인 1995.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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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KBS2 텔레비전의 <추적 60분>에서는 국내 자동차 회사들이 차를 팔고 난 다음 뻔뻔스레 나몰라라 하는 현실을 고발했다. 새로 산 차에 납득할 수 없는 고장이 생겨 쫓아다녀도 자동차 회사는 요모조모 핑계만 댄다. 고객들은 치를 떤다. 어떤 고객은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도 자동차 회사는 줄기차게 고개를 돌리고 있다.

 나도 얼마 전 프로그램에 나온 사람들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내가 새로 산 차의 안전 벨트가 말을 잘 듣지 않고 뒷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차를 판 영업사원을 찾아가 몇 차례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쪽에서는 “2천Km 정기 점검 때 이야기해 보라”고 대꾸했다. 자기 차를 사 달라고 하며 내 집을 찾아오던 때와는 딴판이었다. 나는 포기하고 부근 수리상에서 손질했다.

 나의 소견대로라면 한국 상인들은 불친절하고,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이 하고, 과포장을 일삼고, 약속이란 으레 어기는 것으로 알며, 인간 관계에 대한 배려도 없다. 이익을 올릴 대상이 다가오면 눈앞의 이익 극대화만 생각할 뿐 미래에 대한 배려에 소홀하다는 나의 단정은 지나치게 가혹한 것일까. 그러나 우리의 숙적일 수밖에 없는 일본의 상인들과 곧이곧대로 견주어 볼 경우, 나의 단정은 오히려 너무 느슨한 편이 될는지도 모른다.

 

잘못된 기업·시장 문화부터 바꾸어야

 우리가 시대의 위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의식을 바꾸지 않고는 정책이고 제도고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식으로, 의식 문제를 일쑤 들먹거린다. 문제 해결을 위한 궁리의 이런 착점(着点)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그러기에 같은 소리를 두고두고 되풀이해 오게 된 것이다. 의식이란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지배하는 문화의 소산이다. 의식이 문제라면 당연히 문화를 문제삼아야 한다. 앞에서 예로 든 자동차 회사의 한심한 작태에서 드러나는 한국 기업인의 의식도 마찬가지이다. 생존을 위해, 우리는 기업과 시장을 지배하는 문화부터 바꿔야만 한다. 내가 최근 펴낸 책 <三星, 신화는 없다>를 통해 세상에 내보낸 ‘제3차원의 상술’이라는 새로운 개념은 바로 우리 의식을 지배하는 문화를 개질(改質)하는 것을 겨냥한다. 그렇다면 제3차원의 상술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제3차원의 상술이란, 대개의 법칙이나 원리가 그러하듯, 알고 보면 빤한 이야기다. 나는 그 빤한 이야기를 불고기집 주인의 ‘신사고’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흔히 보게 되는 풍경이지만, 불고기집에 가 보라. 실로 미련스럽다싶게 고기를 배터지게 먹고 있는 손님과, 불판에 수북하게 남아 있는 시커멓게 탄 고기를 보게 된다. 주인은 매상 극대화를 위해 손님으로 하여금 어떻게든 불고기를 많이 먹게 해야만 했다. 나는 이윤 창출을 위하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온 이때까지의 이런 상술을, 자연적으로 발생한 수요에 산술적으로 대응하는 ‘제1차원의 상술’에 뒤이어 등장하여, 마침내는 천민자본주의의 중심 이념이 된 ‘제2차원의 상술’이라고 명명했다. 그렇다면 ‘제3차원의 상술’ 세계에서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불고기집 주인의 ‘신사고’

 제3차원의 상술 세계에서 불고기집 주인은 손님이 먹을 만큼 먹고도 더 달라고 하면, “손님 적당히 드시지요. 그래야만 맛도 더 좋고 건강에도 좋습니다”라고 권한다. 그 순간 손님은 매상에 연연하지 않은 채, 손님의 입맛이나 건강을 생각해 주는 주인을 새로운 눈길로 바라보게 된다. 주인은 단골 하나를 확보하면서 과소비라는 사회적 병폐 하나를 극복해 내는 사실적인 실천을 해낸 셈이 된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본격 가동하면 세계의 시장은 전면 자유경쟁 체제가 될 것이다. 이미 그런 추세로 나아가고 있지만, 그다지 머지 않아 한국 거리에는 같은 상품을 파는 여러 나라 가게가 들어서게 된다. 기업을 하는 사람은 그런 시장 환경에서 소비자가 과연 어떤 가게를 찾아 들어가게 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조건은 해외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전통 상술에 <廣德興業>이나<崇德廣業>이라는 것이 있다. 덕을 펴 사회에 기여도 하면서 사업은 더 번창하게 하는, 굳이 비유해 보자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큰 상인의 도리를 뜻한다. 앞으로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든가, 아니면 두 마리 모두를 놓치든가 선택할 수밖에 없다. 경험할 때마다 우리 자신이 넌덜머리를 내곤 하는 이때까지의 상술로는 이제부터 펼쳐지는 국제화 시장 환경에서는 살아 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시대의 거울이라고 한다. 나 자신이 제대로 된 거울인가는 자신 없지만, 나는 한국의 기업인들이 떳떳한 방법으로 큰 돈을 벌며, 정치가들이 애써 망치고 있는 이 세상을 되살려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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