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넘치는 멀티미디어 세계
  • 탁연상(컴퓨터 칼럼니스트·마이크로북 대표) ()
  • 승인 1995.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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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 주자 CD롬 전성시대 맞아…전자출판 등 활용 분야 무궁무진



 최근 멀티 미디어라는 말이 여러 매체에서 자주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멀티미디어는 상당히 포괄적이며 모호한 개념이다. 이를 간결하게 정의한다면 컴퓨터 프로그램이 글자·그림·소리·동화상 정보를 조정하여 기존 매체의 구실을 대체하거나, 사람과 대화하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더하여 전혀 새로운 매체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멀티 미디어는 기존 매체인 책이나 영화와 상당히 비슷한 기능과 모습을 하고 있으나, 이는 초창기 현상일 뿐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여 독특한 영역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지난 1년간 CD롬 드라이브 40만대 보급

 아무튼 멀티 미디어가 무엇인지 간단하고 확실하게 정의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멀티 미디어의 선두 주자가 CD롬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에는 거의 모든 개인용 컴퓨터에 CD롬 드라이브가 기본 장착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도 지난 1년 동안 CD롬 드라이브가 약 40만대 보급된 것으로 평가된다. 세계의 CD롬 타이틀 시장 규모는 93년의 3억2천5백만달러에서 96년 말에는 10억달러 정도로 확대되리라 예상된다.

 CD롬의 어떤 특성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전성 시대를 구가하게 만들었을까. 사실 CD롬은 일종의 매체일 뿐이다. 그동안 컴퓨터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기계 정도로 알려졌지, 또 다른 용도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문화와 작업에 직접 참여하는 형태인데, 여기에는 몇 가지 기술적인 장애가 있었다. 그 장애물이란 그림·사진·비디오·음성 같은 비문자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과 이를 담을 매체였는데, 이 장애물들은 CD롬에 의해 상당한 수준까지 제거되었다. 앞으로 초고속 정보통신망 체계가 구축되면 CD롬보다 훨씬 강력한 통신망이 이용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CD롬의 가장 큰 장점은 멀티 미디어가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한 제어 기능과 사용자와 대화할 수 있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CD롬 백과사전은 독자가 찾으려는 내용이 어디에 있는지 검색해 준다. 이러한 기능은 관련 정보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거나 독자의 반응에 따라 이야기의 줄거리를 바꾸어주는 하이퍼텍스트(hypertext) 기능으로 발전하여 전자 책만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기에 이르렀다. 단순히 정보를 쉽게 찾아주는 정도가 아니라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정보 검색 혹은 정보 활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엔카르타(Encarta)> 같은 대화형 멀티 미디어 백과서전에서 색인어 ‘Korea’를 찾아 읽으면서 서울의 사진을 볼 수 있고, 왜 한국전쟁이 일어났는지 찾아보고 다시 읽던 곳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지피어스(Xiphias)가 개발한 <소프트 킬>은 멀티 미디어 테크노 스릴러로서 등장 인물을 골라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다.

 CD롬은 내용·형식·질에서 매우 다양하다. 참고 서적과 어린이 도서 분야는 CD롬의 장점을 십분 발휘할 수 있어서 짧은 기간에 급성장하고 있으며, 대화형 소설 분야는 현재 만족할 만한 활용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예술 · 역사 · 과학 등 전문 타이틀 인기

 참고 서적류의 CD롬 타이틀로는 백과사전·사전·지도·전화번호부·책 목록·요리책을 들 수 있다. 이들은 CD롬의 방대한 용량, 멀티 미디어적 특성, 복잡한 찾기 기능 등으로 종이책 형태의 참고 서적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이밖에도 의학 건강 영화 스포츠 역사 예술 과학 등 전문 분야의 CD롬 타이틀도 인기를 끈다. 특히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전자 책으로 구현하거나 학습과 오락을 적당히 섞은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CD롬 타이틀의 성공은 현재의 CD롬 기술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정보와 오락을 얼마나 적절히 섞는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자연·역사·가정을 위한 정보를 다루는 제품이 많이 쏟아지는 것은 그와 관련이 깊다. 머지 않아 가수들의 앨범도 CD가 아닌 CD롬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CD처럼 사운드 트랙을 가지고 있어서 일반 CD플레이어로 들을 수 있고, 컴퓨터를 이용하면 가수의 사진이나 글까지도 볼 수 있다. 여기에 약간의 프로그래밍 기능을 더하면 가수의 글에 사진이나 사인이 포함된 편지를 컬러 잉크젯 프린터로 인쇄해 가질 수 있으니 열성 팬이라면 열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멀티 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전자 책은 지금껏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며 새로운 활용 분야를 개척하게 될 것이다.

 

기업 홍보 자료도 CD롬으로

 종이 책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집필할 수 있었으나, CD롬 타이틀은 저자·편집자·프로그래머·애니메이터·그래픽 디자이너가 협동하여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CD롬 타이틀을 개발하는 비용은 매우 비싸며, 더구나 아직은 시장이 작기 때문에 종이 책에 비해 더 비쌀 수밖에 없다.

 CD롬 타이틀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이를 쉽게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발전해야 한다. 이것을 저작 도구(authoring tool)라고 하는데, 국내에서는 최근에야 몇 개가 개발되고 있는 형편이다. 영어 문화권에서는 하이퍼텍스트 기능을 지원하는 저작 도구들이 공개 소프트웨어 형식으로 보급되고 있으며, 이런 도구로 만든 전자 책이 통신망을 통해 무료 배포되는 경우가 많다.

 일차적으로 기업들이 이런 CD롬 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내 매뉴얼이나 기술 정보,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매뉴얼이나 홍보 자료 등을 디지털 형태로 출판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종이보다 제조와 유통 비용이 훨씬 적게 드는 CD롬을 이용해 정보를 보급하는 것인데, 앞으로 통신 기반이 충분히 확보되면 인터네트와 같은 통신 서비스를 매체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상업용 CD롬 타이틀 업체들도 CD롬 출판의 상업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종이 책으로 출판된 여러 책들을 모아서 하나의 CD롬에 담는 형태이다. 현재로서는 상업성이 불투명 하지만 가능성은 엿보인다. 그리고 그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디지털 출판 도구의 발전이다.

 국내 사정에서는 어려운 점이 많다. 무엇보다 화면 출판을 위해 필요한 기초적인 연구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디지털 출판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출판을 위한 도구 개발이 문제

 우선 한글 글자는 알파벳보다 복잡하기 때문에 예쁘게 표현하기가 어렵다. 최근 몇 년 사이 다양한 한글 글꼴을 얻는 데 성공한 편이지만, 그것들은 화면용이 아니라 고해상도 출력용이다. 또 한글에 적합한 디지털 출판 도구에 대한 연구 개발도 전무한 형편이다. 일단은 아쉬운 대로 외국에서 개발된 도구를 이용하여 디지털 출판을 시작해야 하겠지만 이에 대한 학계와 업계의 관심이 필요하다.

 과연 앞으로 어떤 종류의 CD롬 타이틀이 개발될 것인가. CD롬 기술은 얼마나 응용될 것인가. 컴퓨터 분야의 기술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이런 예측을 하기란 쉽지 않다. 머지 않아 우수한 품질의 동화상 비디오를 CD롬에 담고, 그것을 볼 수 있는 기술이 널리 보급될 것이므로 CD롬 타이틀도 동화상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어쨌든 CD롬 타이틀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면서 새로운 활용 분야를 열어갈 것이다.

탁연상(컴퓨터 칼럼니스트·마이크로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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