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위한 ‘다품종 교육’
  • 허운나 객원편집위원(한양대 교수. 교육공학) ()
  • 승인 1995.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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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대학교를 비롯해서 여러 대학들이 나름대로 의미 있는 개혁 방안을 내놓고 있다. 교육부도 고교 평준화 등 개혁안을 이것저것 내놓았다(일부는 다시 철회하는 촌극도 있었지만). 한편에서는 거국적 차원에서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그 일환으로 교육의 세계화를 내걸고, 세계화위원회도 구성하였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어쩐지 제각각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을 준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역대 대통령들이 교육 대통령이라고 자처하면서 너나없이 교육 개혁에 힘을 쏟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남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 벨라 바나시 같은 교육공학자는 ‘비전 문제’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즉 교육 개혁을 전체적인 안목에서 다루기보다는 교육의 여러 변인들을 독립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큰 그림’을 그리는 대신, 대학입시제도와 같은 단편적 변인에 매달려 유사한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 결과 대학에 떨어진 수많은 고등학교 졸업생들은 물론 붙은 사람들마저도 진정 승자 의식을 가질 수 없는 교육이 되어 고객 만족 측면에서도 제로 학점이 되고 말았다.

 

‘고객 만족’ ‘질 관리’ 개념 도입해야

 이제는 교육을 총체적인 눈으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각도로 보아야 할 때이다. 교육도 국제 경쟁력에서 앞서기 위해서는 산업체들이 앞다투어 도입하고 있는 ‘고객 만족’ ‘질 관리’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고객의 특성을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교육에서의 고객은 유치원에서 초·중등·대학에 다니는 학생과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을 모두 포함한다.

 이들 모두를 승자로 만드는 교육을 지향하려면, 기업의 ‘다품종 소량생산’과 같은 원리로 나가야 할 것이다. 즉 대학 입시라는 한 개의 통로만을 향하던 획일적 메뉴를 버리고, 각각의 환경·능력·소질에 따라 가르칠 수 있는 대안적 교육 패러다임이 나와야 한다. 융통성 있는 인간, 창의적 인간을 만들기 위해 교육 시스템이 먼저 융통성 있고 창의적인 모습으로 변신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멀티 미디어를 이용해 교육공학적으로 접근함으로써 현장·경험·문제 중심적인 융통성 있는 대안적 교육 시스템이 초·중등·대학·평생 교육의 각 분야에서 시도되고 있다.

 21세기는 ‘지식 시대’이다. 지식 시대에 한 나라의 국력은 ‘교육받은 인재’가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좌우된다. 그러나 이 때의 교육받은 인재라는 뜻은, 간판 위주의 학벌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정보 시대의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앞장설 능력을 보유한 사람들을 말한다.

 

모두 승자가 되는 ‘교육’ 이루어져야

 21세기에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사람들은 컴퓨터나 멀티 미디어 네트워크 같은 정보공학 도구를 활용해서 세계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정보원으로부터 적합한 자료를 탐색하여 창의적으로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 융통성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미래에는 학벌의 의미가 점점 퇴색하고 능력 중심 사회로 변해 갈 것이다. 지식이 5년마다 두 배로 늘며 삶의 형태가 급격히 변하는 미래 사회에서는, 아무도 학교에서 배운 지식 하나로 평생을 버틸 수 없다. 입사해서 퇴직할 때까지 한 직장에 머무르는 일이 힘들어지게 된다. 본인이 직장을 바꾸고자 하는 경우도 있지만, 회사가 합병 또는 인수되는 경우, 기존 업종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경우, 같은 업종에서도 하이테크를 도입해 전혀 다른 작업 과정을 요구하는 것처럼 상황이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기존 학교의 울타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제도 교육 의존도는 극히 빈약해진다. 일생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능력을 습득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미 60년대에 교육학자 허친스는 모든 국민이 전생애에 걸쳐서 학습해야 하는 ‘학습 사회’를 역설하였다.

 경쟁력이 높은 산업 인력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학벌 위주인 제도 교육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생애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메뉴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필요한 생애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제도와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어학·정보공학·팀워크 기술 교육 등과 같은 다양한 교육 메뉴를 제공하자. 컴퓨터 회의, 비디오 텔레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등과 같이 발달된 첨단 정보공학을 활용한 ‘가상대학(virtual university)’을 통해 재택 교육·직장 교육·원격 교육을 함으로써 누구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가장 적합한 교육 메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 그래서 현재의 교육에서 소외된 다수를 21세기에 필요한 능력으로 당당히 무장시키자. 모두가 승자가 되고 모두가 만족한 고객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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