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제한이 ‘억대 거지’만 量産”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2.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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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가로막는 ‘남단 녹지’ 개발묘책 절실…성남시 면적 8.6%에 인구 밀집돼

 여의도보다 무려 9배나 넓은 땅, 그러나 전혀 손을 댈 수 없는 땅 때문에 성남시가 정부 눈치를 살피고 있다. 성남시 전체 면적의 절반을 차지했던 ‘南端녹지’는 지금 한창 건설중인 분당신도시 부지로 허리를 내주고 둘로 잘려 있다. 이곳은 정부의 건축허가 제한 때문에 처녀지로 남아 있지만, 수도권 일대에서는 마지막 남은 노른자위 땅이기도 하다.

 인구 1백만의 대도시를 꿈꾸는 성남시는 도시재정비계획안을 추진하면서 은근히 남단 녹지를 활용했으면 하는 눈치이다. 분당 신도시에 입주가 완료되는 94년말 쯤이면 성남시에는 빈부격차의 선이 남북으로 뚜렷하게 그어질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성남시는 남단녹지인 여수동 일대 20만평에 대규모 행정타운과 휴식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여수동은 구시가지와 분당시가지 중간인 남단녹지에 자리잡고 있다. 성남시는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기존 시가지와 분당 신시가지 간에 균형있는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는 남단녹지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남단녹지에 대한 건축허가제한 조치는 성남의 미래만 제약하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도 시민들이 실생활에서 큰 불편을 겪어왔다. 과거 성남이 실패한 도시로 알려지는 데 남단녹지가 한몫 단단히 거든 것이다.

 농촌동과 도시동. 성남 시민들에겐 이 낯선 말이 전혀 낯설게 들리지 않는다. 행정구역상 둘 다 성남시에 포함되어 있지만, 도시동은 현 성남 시가지이고 농촌동은 남단 녹지내 마을을 가리킨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단녹지에 포함된 마을치고 농촌동으로 상징되는 서러움을 겪지 않은 데는 없다. 그래서 시민들은 “성남시 발전의 걸림돌은 바로 남단녹지”라고 입을 모은다.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조선시대에는 과거보러 한양가는 선비들이 이곳에서 하룻밤을 묶어서 한때는 숙박촌으로 번성했던 마을이었다. 23대째 판교에서만 살아온 나철제씨(성남시의원·52)는 “고개들면 바로 저만치서 기세좋게 아파트가 들어서는데, 우리 주민들은 건축허가제한 때문에 축사 하나 제대로 짓지 못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들의 불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건축허가 제한 때문에 일체의 편의시설이 들어설 수 없어서, 판교동 주민 5천8백여명은 목욕탕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야 할 형편이다. “땅값은 터무니 없이 올랐지만 그렇다고 땅을 사려는 사람은 없어요. 내가 바로 ‘억대 거지’입니다.” 판교동 주민 김춘백씨의 항변이다.

 남단녹지의 유래는 1976년 5월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성남시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주민들의 열악한 주거환경과 도시과밀화 현상에 대해 보고받는 자리에서, 남단녹지 일대를 ‘그린벨트 준용지역’으로 지정하라고 지시했다. 이른바 ‘5.4조치’였다. 도시과밀화를 막기 위해 시행된 이 조치로 인해 남단녹지내 마을은 어디를 가도 증 · 개축을 하지 못해 옛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허름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러나 도시과밀화를 억제하기 위한 5.4조치는 이제 효력을 상실했다. 이미 56만명으로 불어난 성남시는 전체 면적의 8.6%에 불과한 3백69만평에 주거 상업 공업 시설이 밀집한 기형 도시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남단녹지를 묶어야 할 명분이 살아진 셈이다. 그러나 해당부처인 건설부 관계자는 “부동산 투기가 우려돼 우리도 매우 조심스런 상태”라며 난색을 표명한다. 이미 남단녹지 대부분이 대기업 등 외지인 소유로 넘어간 상태이다.

 정부당국, 성남시, 주민들 모두 성남시 발전의 걸림돌인 남단녹지를 발전을 위한 디딤돌로 바꾸기 위해 묘책을 찾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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