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보험 통합
  • 박준웅 편집위원 ()
  • 승인 1992.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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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계층·지역별로 나뉘어 있는 현재의 의료보험체제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통합론과 비슷한 집단별로 분류하여 부담과 급여의 형평을 꾀해야 한다는 현행 조합론이 맞서 있다.

 

李光粲 원광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찬) “통합체제만이 공평한 보험 혜택 보장한다”

 

임금 소득자와 비임금 소득자는 소득형태나 소득노출도가 크게 달라 한데 묶어 관리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재처럼 구분해서 관리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현재의 조합체제는 직업별·지역별·계층별 분할통제체제이고 조합별 독립채산제여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도시조합이나 농촌 조합은 큰 부담을 안게 되면서 ‘약육강식’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현행 조합체제는 원천적으로 공정한 보험료 부과나 보험료 징수같은 업무관리가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통합체제로 가는 것만이 소득형태에 관계없이 형평부과를 할 수 있고 소득노출도의 차이 또한 줄일 수 있다.

 

임금근로자의 소득자료는 1백% 노출되어 있다. 반면 도시 자영민의 약 60%, 농어촌 주민의 21%는 소득과 재산이 포착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에 대해서는 보험료를 부과할 수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이처럼 미흡한 조세구조 때문에 전 국민의 약 4분의 1이 보험료도 내지 않고 의료혜택만 받게 된다면 사회보험의 기본취지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국민의 연대의식까지 깨뜨릴 수 있지 않은가.

도시자영자 가운데 일부에 대한 소득파악이 어려운 것이다. 공·교보험이나 직장보험의 경우도 상여금 혹은 각종 수당 등 여러 부가급여를 제외한 소득만이, 그것도 비근로소득을 제외한 소득만이 부과대상이 되고 있다. 다른 소득 특히 비근로 소득이 상위직 직장인의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의외로 크고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그 비중도 높아진다는 점(뇌물성 및 직권에 따른 특권적 부수입도 큰 것으로 추정된다)을 감안하면 ‘불완전한 노출’과 ‘소득파악 곤란’은 피용자계층에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통합체제화함으로써 금융실명제 및 토지종합과세, 기타 소비생활 파악 등 소득과 재산을 좀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강구하도록 부추기는 효과를 얻을 것이다.

 

임금 소득자의 56%가 비과세대상자인 저임금근로자이고, 소비 수준으로 추정한 소득수준은 도시자영자가 오히려 도시근로자보다 높은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재정이전의 실수요자는 전체 자영자의 28%에 불과한 농어민이 아니라 절대 다수인 도시 자영자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임금소득자의 재정이전은 상대적 빈자가 상대적 부자를 돕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재정이전은 임금근로자와 도시자영자 또는 농어민으로 분류하여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통합체제화하면 누구든 무슨 직업에 종사하든 간에 부자는 많이 내고 가난한 자는 적게 내며 일생의 상이한 소득시기에 따라, 그리고 직업간 이동에 따른 불공정한 부담없이 공정한 부담체제가 된다.

 

현실적으로 의료기관 수, 의사 수, 의료인력 수의 면에서 도시주민이 농어민보다 훨씬 유리하다. 실제로 의료 이용의 정도를 보면 공무원, 직장 근로자, 도시주민, 농어민 순이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할 경우 오히려 농어민이 도시 자영민의 의료비를 지원하게 되는 소득역진 현상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농어민에 불리한 현실은 현행 조합주의 탓이다. 이 방식은 조합간 급여의 격차를 가져올 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고소득층 조합이 많은 대도시 지역에만 많은 유효수요를 창출하므로 의료 자원이 대도시로만 집중하게 된다. 그러므로 농촌지역은 의료 자원의 상대적 결핍과 열악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통합체제화하면 조합간 급여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디서나 동일한 유효수요를 갖게 된다. 이는 의료자원의 균형적 배분을 촉진시키는 데 유리하다.

 

가입자들이 걸핏하면 병원을 찾고 종합병원을 선호하는 데다 불필요한 진료요구를 하는 등 부작용도 늘고 있다. 통합방식이 되면 규모가 전국단위로 커져 보험급여 관리가 부실해지고 의료남용에 대한 피보험자들의 동류집단적 감시기능이 약화되어 의료비 지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 ‘도덕적 위험’은 현 조합체제에서 집단이기심을 조장하여 다른 조합사람들이야 어찌되든, 도시조합의 상대적 부유층만이 ‘불필요한’ 종합병원 진료를 요구함으로써 나타난 것이다. 이와 반대로 농촌조합에서는 재정취약 문제 때문에 꼭 필요한 진료라도 갖가지 직·간접적 방법으로 억제하고 지연시켜 병을 악화시키고 그래서 결국 더 많은 의료비를 지출케 하는 ‘도덕적 횡포’를 자행한다고 할 수 있다.

 

 

李奎植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반) “현행 조합체제는 제도정착·재정안정 단계다”

 

현재의 조합체제는 직업·계층·지역별로 수많은 조합을 만들어 각기 다른 부과체계 및 기준을 설정함으로써 조건이 열악한 취약조합 가입자들에게는 불합리한 부담을 안게 한다. 그렇다면 어려운 계층에 대한 의료 서비스라는 본래 목적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셈 아닌가.

현행 제도는 국민마다 여건차와 특성차가 있기 때문에 국민을 소득형태, 소득파악률, 의료이용률 등이 비슷한 집단으로 나누어 부담과 급여의 형평을 도모하고 있다. 그간 재정이 취약했던 자영자보험에 대해서는 근로자보험과 달리 국고에서 총재정의 50%를 지원하고 있고, 시행 4년째를 맞으면서 재정안정과 함께 제도정착 단계에 있다.

 

의료보험을 통해 고소득층의 보험료가 저소득층에 이전되는 소득의 수직적 재분배와, 젊고 건강하며 부양가족이 적은 계층의 보험료가 늙고 병약하며 부양가족이 많은 계층으로 이전되는 수평적 재분배의 기능을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의료보험은 국민의 의료보장을 주목적으로 하는 단기보험이며, 보험료를 형평부과했다 하더라도 개인의 질병발생 여하에 따라 소득역진이 초래될 수도 있으므로 수직적 재분배를 추구하기에는 부적합한 면이 있다. 따라서 수직적 재분배는 1차적으로 국가 조세정책에서, 2차적으로는 사회보장제도 가운데 연금제도나, 저소득층에 대한 무상 의료제도인 의료보호, 공중보건사업 등을 통해 추구하는 게 정도일 것이다.

 

통합체제로 운용하면 어떤 직종이든 관계없이 소득수준에 따라 고소득층은 많이 내고 저소득층은 적게 내는 부담의 사회적 공정화를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보험료로 재원을 조달하는 보험방식 하에서 의료보험을 통합할 경우 다음 세가지 요인으로 인해 근로자의 보험료는 크게 오르고 자영자의 보험료는 감소하는 불형평성이 야기된다. 첫째, 소득 재산에 대한 과세자료가 전무한 도시 자영세대의 60%, 농어촌 자영세대의 21%에 보험료를 부과할 수 없게 되는 ‘부과의 공동화 현상’이 발생한다. 둘째, 소득이 포착되는 자영세대라 하더라도 실제 소득의 3분의 1~25분의 1만 파악되므로, 근로소득이 1백% 노출되는 근로자가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된다. 셋째, 근로자의 보험료는 1백% 징수되나, 자영자는 자진납부제로 매년 약 10%의 미징수액이 발생하며 이 재정결손분은 근로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조합방식은 행정관리비 및 여러 가지 낭비와 구조상의 복잡성, 국민의 이용 불편을 낳고 있다. 분산된 관리체제를 일원화하면 그만큼 국민이 감시하기가 쉬워지고 조직의 관료화와 경직화도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단순한 통합만으로 관리비나 소요인력이 감소되리라는 견해는 이상론이다. 89년에 국회에서 통과된 통합법안을 보아도, 기존의 보험료 징수를 지방자치단체에 위탁함으로써 업무는 줄였지만 인력은 불변하고 보수 일원화에 따라 총관리비용은 증가하는 등 모순을 낳고 있다. 무엇보다 통합은 관료제적 폐단을 초래하고 국민의 정부 의존도가 커지며 도덕적 위험을 불러 총재정의 절대비중을 차지하는 보험급여비의 상승을 유발하는 등 부작용이 크다.

 

의료보험조합의 대표들은 군이나 여당 출신, 퇴직 공무원들이 대부분이다. 의료보험제도를 이들의 자리를 마련·유지하는 데 이용해서야 되겠는가.

현재 의료보험조합의 대표이사는 조합 내 조합원대표로 구성되는 운영위원회에서 선출하여 보사부장관의 승인을 얻도록 되어있으나 일부 지역보험조합에서 군, 정당 등 비전문단체 인사가 낙하산식으로 선정되고 있는 것은 개선돼야 할 문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사회의 과도기적 산물일 뿐 현행제도 자체의 문제나 제도운영 상의 실책은 아니다.

 

앞으로 우리 의료보험제도는 어떤 방향으로 개선·발전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우선 국민의료비가 적정 증가수준을 유지해야 할 것이며 고가 의료장비의 보험 적용과 급여기간의 확대 등 보험급여의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의료기간은 의료보험의 심사지불 제도를 개선하고 조합 간에는 현행 재정공동사업을 더욱 강화하여 재정안정의 뿌리를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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