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과 양방이 손잡은 병원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2.12.3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나의료원’ 동·서 의학 협진 체계 첫선… 질병 특성 따른 효율 진료 꾀해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고 허리가 아프면 한의원에 간다.” 한방과 양방이라는 두가지 진료체계가 공존하면서도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는 우리의 의료 현실에서 몸 아픈 사람들이 그동안의 치료 경험에서 얻어낸 지혜이다.

부지불식 간에 질병을 얻게 된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자신의 질병에 대해 한방치료가 효과가 있을지, 양방치료가 효과가 있을지 따져보는 버릇을 가져왔다. 양방 치료를 받으면서 의사 몰래 한방 치료를 같이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즉 국내 의료계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한방과 양방은 의료인끼리는 서로를 배척하고 무시해왔지만 환자들 스스로는 이 협진 치료를 알게 모르게 받아왔다고 볼 수 있다.

한·양방의 협진 치료에 대한 이러한 잠재적 요구에 대해 그동안 의학계의 양 진영에 몸 담아온 젊은 의료인들이 화답을 하고 나섰다. 이들은 의료계의 고질적인 악습으로 남아 있는, 자기 학문만이 최고라는 아집을 버리고 환자를 위한 최선의 의료모델 개발에 관심을 가져온 의료인이다. 경희대학교와 경산대학교 한의과 대학 출신의 한의사와 연세대학교 출신의 양의사가 주축이 된 이들 30~40대의 젊은 의료인은 지난 11월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하나의료원이라는 중급규모의 병원을 공동으로 개설해 그동안 자신들이 모색해온 ‘동·서 의학의 협진’이라는 새로운 의료체계를 본격 가동시켰다.

이러한 협진체제의 구축을 위해 하나의료원은 4명의 한의사가 주축이 된 하나한방병원과 3명의 양의사가 주축이 된 하나의원을 동시에 개설해 한·양방의 공조체제를 이루고, 여기서 얻어진 경험을 병원 부설 동서의학연구소에서 학문적으로 축적해 가장 이상적인 의료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존의 의료기관이 한방 아니면 양방, 그리고 양쪽의 결합을 시도한다고 해도 한쪽을 위주로 하고 다른 쪽을 보완하는 방식을 택해왔던 데 비해 하나의료원은 한방과 양방이 동등하게 참여할 뿐 아니라, 구체적인 병의 진단과 치료에 있어서도 양쪽이 긴밀하게 협조한다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한방 예진 후 전문클리닉서 진료

일반인에게는 아직 생소할 수밖에 없는 한·양방 협진의 구체적인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병원에서 택하고 있는 진료 형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병원에 온 환자들은 먼저 1층에 있는 한방예진실을 거쳐야한다. 예진은 보통 체질 검사, 설진, 맥진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사상의학의 관점에서 환자의 체질을 판별하고 설진이나 맥진을 통해 환자의 상태, 질병의 원인 등을 검진한다.

예진이 끝난 환자는 질병의 종류에 따라 전문클리닉으로 옮겨간다. 현재 이 병원에서 운영하는 전문클리닉은 크게 비만, 당뇨, 신경성 위장장애, 관절염, 요통, 중풍 등 6가지 질병을 중점적으로 다루는데 각각의 질병에 대해 한방 의사와 양방 의사가 한 팀을 이루어 진단과 치료를 공동으로 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신경성 위장질환과 비만은 한방내과 1(최서영 원장)과 가정의학과(김상만 박사)가 담당한다. 당뇨병은 가정의학과(김상만 박사)와 한방내과 2(허 준 박사)에서 담당한다. 요통과 관절염은 한방침구과(박쾌환 부원장)와 재활의학과(정 희 박사)에서 담당하고 중품은 네 개 과가 모두 참여한다.

치료는 먼저 동일한 질병에 대해 한의사와 양의사가 동시에 진단해 질병의 유형을 구분하는 데서 시작된다. 즉 같은 질병이라도 질병의 형태에 따라 한방 치료가 유리한지 양방 치료가 유리한지, 아니면 한·양방의 협진이 유리한지 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같은 당뇨라도 일반적으로 인슐린 의존성 당뇨는 양방 치료가 유리하고 인슐린 비의존성 당뇨는 한방 치료가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통의 경우도 척추뼈의 이상에 의한 통증에 대해서는 재활의학과의 물리치료가 적합하다. 그러나 원인이 불분명한 만성 요통은 인체의 기혈 작용을 조절함으로써 치료효과를 거두는 한방 치료가 유리하다. 일반적으로 급성질환과 질병의 원인이 분명한 기질적인 질환은 양방 치료가 유리하고 만성질환이나 기능장애에 의한 질병은 한방 치료가 유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중풍의 경우는 양쪽이 협진을 했을 때 치료효과가 배가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재활의학과에서는 물리치료나 작업치료를 통해 근육의 마비증세를 방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에 비해 한방의 침구학에서는 침이나 약물 요법으로 기혈을 조절해 근원치료를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의료원의 동·서 의학 협진체제의 출발점은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이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최서영 원장은 이를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형상”이라고 표현한다. 즉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런 상호보완적인 협진 체제의 구축을 위해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몇차례의 학술토론을 통해 치밀한 사전 준비를 해왔다. 우선 출발 단계인 만큼 진료과목 선정에서 한·양방의 공조가 비교적 쉽게 이루어지도록 6개 진료과목에 대해 전문클리닉을 개설했다.

이들 분야는 여태까지 한쪽의 진료만을 가지고는 치료효과를 보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우선 이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협진체제가 구축되면 결핵이나 간염, 그리고 궁극적으로 암 등 악성질환에까지 진료 영역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준비과정에서 또 하나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이들 6개 진료과목에 대해 구체적인 질병 유형을 분석해 그에 대한 진료형태를 구체화시키는 작업이다. 이미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복안이 마련돼 있다.

각각의 분야에서 대부분 각 대학의 교수급 의사로서 기반을 다져왔던 이들이 신생 병원을 개설하는 모험에 뛰어든 것은 그동안 한쪽이 배제된 반쪽 의학을 하면서 한계를 뼈저리게 느껴왔기 때문이다. 최서영 원장은 “문제의식이 있는 의료인이라면 동·서 의학의 협진의 필요성을 누구나 느끼고 있다”고 전제한 뒤, 개인적으로는 9년 전에 경희대 부설 동서의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때부터 동·서 의학의 만남의 필요성을 생각해왔다고 말한다. 부원장 박쾌환씨(침구학과장)는 한의학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던 중 이 병원에 합류한 경우이다. 이 병원에서 서로 다른 학문 분야에 있는 양의사들과 교류하면서 “한의학에서 고쳐야 할 점과 보존해야 할 점이 어떤 것들인지를 검토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환자들 반응도 좋은 편”

한의학 관계자들이 한의학의 과학화 및 객관화를 모색하기 위해 고민해온 반면 양의학 전공자들은 서양의학이 가지고 있는 치료의 한계 문제로 고민해왔다. 양방병원인 하나의원 원장을 맡고 있는 김상만 박사(가정의학과장)는 그동안 양의사들이 치료의 한계를 느낄 때마다 ‘신경성 질환’이라는 말을 남용해온 데서 서양의학의 한계를 느꼈다고 말한다. 양의사가 포기한 신경성 질환들을 한의학에서는 정확하게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 치유하는 것을 보고 한의학과의 접목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양의학의 한계를 느끼기는 재활의학과 정 희 과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서양의학에서 질병의 원인 진단 및 치료까지 완전하게 할 수 있는 경우는 세균성 질환 등 몇몇 질병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몇번의 환자 진료 과정에서 확실하게 진단과 처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가 안되는 경우가 생겨 고민을 하던 차에 한의학과의 접목을 시도하면 치료가 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서로에 대한 필요성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에 약 1년 동안의 준비과정에서 부닥쳤던 문제들은 마음과 마음의 교감으로 헤쳐 나올 수 있었다고 이들은 말한다. 김상만 박사는 “너무 재미있어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많았다”고 술회했다.

아직 개원한 지 보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환자들의 반응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게 병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환자들은 한방 치료와 양방 치료를 동시에 받을 수 있고 또 편안해 하는 눈치라는 것이다.

본격적인 한·양방 협진 병원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설립된 하나의료원의 성공 여부에 따라 앞으로 이와 유사한 시도가 많아질 것 같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