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해일’ 서태평양 지역 강타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1996.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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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자 수 20만명 넘어서···유엔 ‘퇴치 지원금’ 줄어 급속 확산 예상

 
서태평양 지역에 ‘20세기 흑사병’ 에이즈(AIDS) 문제가 날로 심각해 지고 있다. ‘킬링 필드’로 유명한 캄보디아의 경우 에이즈 원인균인 HIV에 감염된 사람이 성인 백명 중 2명에 이른다. 회교원 국가인 말레이시아는 3만명에 이르는 감염자를 보유하고 있다. 자본 주의를 받아들인 중국도 에이즈 확산 대열에서 예외가 아니어서,94년 말 현재 만명에 이르는 감염자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태의 진상은 전체 현황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서태평양 지역 전체의 에이즈 감염자 수는 20만명을 넘어섰다. 한국의 사정은 이웃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나은 편이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한국의 경우, 감염자 수는 94년 말 현재 2천명 정도로 전체 성인의 0.008%인 것으로 보고되었다(이하 표 참조).

 이같은 사실은 9월9~14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 지역위원회는 서태평양 지역에 있는 26개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무소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 있다. 회원국이 돌아가며 개최하는 지역 위원회 회의는 이번이 47회째다. 이 지역 질병 퇴치 사업을 총괄하는 지역사무소 사무총장은 58년 보건복지부(당시 보건사회부) 보건국장을 끝으로 국제기구에 진출해 세계보건기구에서만 30년째 근무해온 한상태 박사가 맡고 있다.

캄보디아·말레이시아 등은 요주의 지역

 서울 회의는 세계보건기구 일반 업무에 관한 사항 외에 에이즈·소아마비 퇴치사업과 노인 보건문제 등을 의제로 채택했다. 이 중 국내 언론이 가장 주목하는 분야는 단연 에이즈 실태 및 퇴치 현황과 관련된 부분이다. 한박사는 현황 보고를 통해 서태평양 지역의 에이즈 환자 수가 해마다 급격하게 늘고 있는데도 유엔의 재정 지원은 오히려 줄어드는 형편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 커지고 있다며 지원 규모 축소 추세에 우려를 나타냈다.

  지역 사무소가 지난해 펴낸 <에이즈 감시보고서>에 따르면, 서태평양 지역의 에이즈 감염 발생건수는 88년 2천건이던 것이, 해마다 급격한 증가세를 보여 95년에만 만건에 이르렀다. 반면 유엔에이즈 프로그램(UNAIDS)의 지원금 액수는 94~95년 회기 4백50만달러(미화)이던 것이 96~97년 회기에는 오히려 1백 50만달러로 감축되었다. 한박사는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5년 안에 중국·말레이시아·파푸아뉴기니·베트남 등 현재 에이즈 감염자가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몇몇 나라의 상황은 이미 갈 데까지 가뾰족한 처방이 없는 캄보디아 만큼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과거 서태평양 지역에서 질병 퇴치 사업의 주요 관심 대상은 풍토병인 말라리아나 후진국 질병의 대명사였던 결핵, 그리고 콜렐라 따위 법정 전염병이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특별한 치료약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에이즈의 원인균인 HIV가 국경은 물론 인종과 피부 빛깔 빈부의 차이를 가리지 않고 어디든 침투해 닥치는 대로 병을 옮기고 있다.

 서태평양 지역에서 에이즈의 ‘안전지대’는 없다. 서태평양 지역을 여행하는 한국인은 특히 동남아에서는 단단히 몸조심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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