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 철학대, 조정래 문학대 ‘꿈틀’
  • 성기영 기자 ()
  • 승인 1996.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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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과정, 통합 과학 교육 · 문인 양성이 목표 … 편제 · 과목 파격적

 
“당신네 학교안에 ‘김용옥대학’을 만들어 주시오.”

 87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집필 활동에 몰두하고 있던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에게 서울의 한 사림 대학 총장이 교수로 오라고 제의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물론 이는 현실성 없는 제안으로 끝났지만, 그 정도로 김씨는 현재의 대학과는 편제 · 과목부터가 전혀 다른 대학 설립을 구상하고 있다.

 김씨뿐만 아니라 일부 원로 학자 · 문인중에는 후진을 배출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스스로 후학 양성 기관을 설립하고자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교육부에 설립 신청을 한 대학들이 첨단 또는 실용 학문을 위주로 가르치려는 대학이라면, 이들 학자나 문인이 구상하는 대학은 정통 인문학을 그 대상으로 한다.

 김용옥씨가 구상했던 대학도 교수와 재정 여건을 갖추기만 한다면 머지 않아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 그는 91년 펴낸 저서 <대화>에서 대학 설립을 위한 그의 청사진을 비교적 상세하게 밝힌 바 있다.

 그가 구상하는 대학은 석사 2년과 박사3년인 대학원 대학으로, 정원은 학년당 5백명 정도가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저술과 강연을 홍해 주장했던 대로 한국의 고전을 기초로 하여 철학 · 종교 ·예술 등을 통합한 ‘통합 과학’을 가르치는 대학이기 때문에 대학 안에 따로 과(科)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93년부터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운영하고 있는 도올서원을 모태로 대학 설립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백산맥> · <아리랑>의 작가 조정래씨도 몇 차례에 걸쳐 대학 설립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조씨가 구상하는 대학도 4학기제 대학원 대학이다. 물론 정원은 80명 수준으로 현재 웬만한 대학의 한 과 정원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시 · 소설 · 평론 ·드라마 ·시나리오 등 장르 별로 다섯 개 과를 설치해 졸업자 전원을 문단에 정식 등단시킨다는 방침이다. 조씨는 곧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예정인데, 집필이 끝나는 4년 후쯤 이 대학을 설립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조씨는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통해 벌어들인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구상으로 현재 경기도 광주에 학교부지를 몰색하고 있다. 조씨는 문인 양성 단설 대학원을 건립하기로 한 배경에 대해 “현재 국문학과 학생 중에 인생을 걸고 문학을 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이는 문학의 비극이고 시대의 비극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학부를 마친 사람들을 대상으로 문단에서 활동하는 현역 문인들의 강의를 듣고 등단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기업체 등이 투자하는 대학과 달리 이러한 대학들은 투자한 만큼 비용을 뽑기 어려울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김용옥씨나 조정래씨의 구상이 성공을 거둔다면 인문학이 점차 외면 당해 가는 분위기에 신선한 자극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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