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추문’에 천년 왕실 붕괴 위기
  • 런던·한준엽 편집위원 ()
  • 승인 1996.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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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입헌군주제 지지율 42% 불과···버킹엄궁, ‘공화제’ 고개 들자 왕실 개혁안 마련중

 
 
영국 왕세자 부부 찰스와 다이애나의 15년 결혼 생활이 지난 8월 28일 이혼판결의 효력 발생으로 공식 마감됨에 따라 영국 왕실은 1917년 현 왕실 시작 이후 가장 어려운 위기를 맞고 있다. 윈저가를 향한 영국 국민의 애정과 존경은 여왕과 여왕의 모후인 퀸마더 두 사람에 대한 연민 속의 한가닥 애정을 제외하고는 이미 식은 지 오래고, 1천2백년 역사의 영국 군주제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신뢰 역시 밑바닥까지 떨어져 내렸다.

 현재 재위 44년째를 맞고 있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가 곧잘 ‘윈저회사‘라고 부르곤 했던 윈저 왕가. 그 ’황실 윈저주식회사‘의 주가는 지난 5년 동안 매일 하종가를 거듭해 왔다. 이제 긴급 부양책과 회사 경영 방식에 대개혁을 단행하지 않는 한 ’공화제‘라는 감리 인수 회사에 ’윈저회사‘재산과 경영권을 송두리째 넘겨울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보수파 언론들의 우려와 경고까지 나올 정도다. 나아가 준주제 폐지를 위해 관련법 개정을 요구하는 노동당 좌파 및 공화제 옹호론자들의 목소리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세기의 이혼’이 왕실 위기 앞당겨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영국 왕실은 언론으로부터 과보호를 받으며, 한때 왕정제도 지지율 88% 라는 수피가 말해주듯 국민으로부터 큰 인기와 신뢰를 누려왔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의 동생 마거릿 공주를 시작으로 여왕의 자녀 넷이 혼전 관계·혼외 정사·별거·이혼 등 무분별한 추문을 일으키면서 타블로이드 언론(황색 신문)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국민들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3류 멜로 드라마 같이 전개되는 왕실 구성원들의 무절제한 생활태도와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에 차츰 싫증을 내게 되었다. 마지막 파국 상황은 바로 지난달 25일 ‘세기의 이혼’으로 막을 내린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의 이혼이다.

 이와 관련해 시사 주간지<이코노미스트>는 8월24일자에서 윈저 왕실의 실수는 윈저 주식회사가 본사 직영 체제 아래 위계 질서와 일사 불란 한 명령 체제 아래 위계 질서와 일사 불란한 명령 체계로 운영되어 온 데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영국 언론들은 윈저 왕실의 앞날은 물론 군주제 존속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모를 제 3의 인물로 찰스의 어릴 적 연인 카밀라 파커 보웰스 부인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 전편이 끝난 윈저 왕실 연속극의 후편 스토리 전개는 또 다시 한 여인의 행보에 좌우될 공산이 크다.

 “ 우리 결혼은 당초부터 두 사람 외에 또 한 사람이 개입돼 있었다. 제 3자가 끼여든 3각 관계는 그래서 언제나 말썽속에 혼잡스럽기까지 했다”.찰스와 이혼한후 이제 ‘전하’라는 존칭을 박탈 당한채 ‘웨일스 공주’로 불리는 이혼녀 다이애나는 지난해 11월 BBC의 대담 프로<파노라마>에서 그 제 3자가 카밀라 파커 보웰스 라며, 자신이 결코 왕비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언 했었다.

 이제 자유스러운 이혼남 찰스에 대한 언론의 주된 관심은, 결혼 파경의 장본인으로 낙인 찍힌 연인 카밀라와 재혼 할 것인지 여부이다. 찰스가 이혼한 후 지난 9월 1일 처음 실시된 모리 여론조사 기관과<선데이 메일>의 합동 여론조사 결과는 찰스가 자신 때문에 역시 이혼의 파경까지 맞은 올해 49세의 카밀라와 재혼할 경우,그의 왕위 계승에 찬성하는 숫자가 전체 여론조사 대상자의 40%선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찰스는 이혼하기 전 주일인 지난 8월25일 주말을 카밀라와 남부 웨일스의 친구 저택에서 함께 보냄으로써 특히 종교계로부터 심한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분석가들은<월드뉴스>가 특종 보도한 두사람의 주말 밀애 사진이. 그동안 감춰진 관계를 서서히 드러냄으로써 세인의 인정을 받아내고 궁극적으로는 두 사람의 재혼에 대한 영국 국민의 충격을완화하기 위해 찰스측이 계획한것이라고 주장한다. 버킹엄궁은 이같은 주장에 반발하고 있지만, 분석가들의 예상대로 찰스의 재혼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며, 다만 카밀라와 결혼한 후 왕위 계승 자격 시비와 영국 성공회의 수장겸임 여부가 찰스 자신의 앞날은 물론 영국 군주제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

찰스의 재혼과 관련해, 성공회 성직자들은 56%가 ‘성공회 수장으로서 찰스의 재혼불가’를 주장하고 있지만, 영국 국민들은 결국 재혼한 찰스를 그들의 국왕으오 받아들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번 여론조사에서 ‘찰스가 카밀라와 재혼할 경우 그가 왕위를 계승해도 좋으냐’라는 질문에 찬성 의견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추세는 93년 12월의 29%m95년 11월의 35%에 비해 금년은 40%로 계속 높아지고 있어, 찰스에게 그나마 한 가닥 위안과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자신의 재위 기간 동안 윈저 왕실에 대한 국민의 사랑과 지지가 하락하면서 왕실의 권위 추락은 물론 군주제 폐지론까지 거론되는 상황을 맞은 엘리자베스 여왕은, 다음 세기를 겨냥한 왕실의 대대적인 변화와 군주제 개혁을 모색하고 나섰다. 여왕은 이미 왕실이 지나치게 낭비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판론자들에게많은 양보를 하면서 92년부터 세금 납부에 동의한 바 있다.

왕자 윌리엄에게 왕위 넘어갈 수도

 여왕의 지침에 따라 왕실 핵심 참모들로 구성된 왕실 개혁기구 ‘포워드 웨이 그룹’이 마련한 왕실 개혁안의 골자는 △왕실에 대한 국고 지원 중단△왕실 가족과 카톨릭 신자의 결혼 허용△영국왕의 성공회 최고위직 겸직 규정 폐지 등이다. 여기에는 국교인 성공회와의 관계를 느슨하게 유지하면서 성공회의 수장 직을 포기할 뜻을 비쳐온 찰스의 의견이 상당부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자구책에도 불구하고 찰스 다이애너의 이혼으로 국민의 군주제 지지율은 과반수를 훨씬 밑돌아 9월 현재 42%로 뚝 떨어졌다. 비록 지난 2월의 최저 지지율 34%에 비해 8%가 오른 것 이기는 하지만, 군주제 반대 및 무관심론자 58%중에서 군주제 폐지가 국가 이익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철저한 반왕정파는 90년의 6%보다 무려 2.5배나 늘어난 16%를 기록하고 있다.

 찰스는 반군주제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대관식 때 이혼녀 카밀라가 왕비로 옆에 서는 것을 반대하는 국민이 무려 79%에 이르고 있다는 적대적인 국민 감정을 호전시켜 나가야 할 최대의 숙제를 안고 있다. 자칫 국민 감정이 악화할 경우 갓 막이 오른 ‘로열 드라마’ 제 2편의 주인공역할이 찰스와 다이애나가 만들어 낸 윈저 왕실의 제 3세대 윌리엄 왕자에게 넘어갈 공산이 크다.

 이와 관련해 <더 타임스>8월31일자 사설은 한때 희망과 기대를 약속했던 찰스. 아이애나의 결혼이 세기의 이혼으로 깨어진 것은, 당사자인 두사람에게 고통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이 현세까지 지켜온 귀중한 제도인 군주제에까지 큰 흠집을 남겼다고 우려했다. 이 신문은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은 여론을 개선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여기에는 시간의 변화에 적응해 나갈 군주게 현대화가 뒷받침되어 야 할 것이라고 지적해, 찰스의 왕위 계승에 적잖은 고비가 기다리고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미래의 왕찰스가 헤쳐 나가야 할 큰 물결은 그동안 수면 아래 있던 공화주의자들의 세력이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받으며 빚어낼 험난한 파고다. 이파고는 그동안 공식으로 금기시되어왔던 왕정 폐지 및 공화국 수립론 으로 이어질수도 있다.

 이에 맞서 왕실 관계자는 36년 미국의 이혼녀 심프슨 부인과 결혼해 빚어진 에드워드 8세의 왕위 폐위 사건 때에도 영국의 입헌 군주제는 건재했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거듭된 왕실의 부침 속에서도 천년 이상 군주제가 지속되어 온 이유는 , 환경에 순응하고 시대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 온 능력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영국의 헌법학자 월터 바게호트가 일찍이 정의한 ‘도덕들의 모범 및 전형’으로서 영국군주제는 이미 퇴색해 가고 있어서 제2편의 서막이 오른 로열드라마는 현 여왕의 종신 재위, 찰스의 짧은 등극, 윌리엄 왕자의 ‘윌리엄 5세’등극이라는 3부작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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