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노력’의 일본 잡으려면
  • 공병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 승인 1992.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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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없는 전쟁’이 지구촌 곳곳에서 진행중이다.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힘의 원천이 되어왔던 군사력이 새로운 원천인 기술력으로 대체되어가고 있다. 이른바 첨단기술을 둘러싼 각국의 ‘소리없는 전쟁’이 그것이다.

 필자는 최근 기술경쟁의 메카인 일본의 첨단산업을 둘러보고 관계자들과 의견을 교환할 기회를 가졌다. 이번 방문을 통하여 그동안 막연하게 느껴왔던 한 · 일간의 기술격차를 직접 확인했다.

 “기업은 역사가 있다. 그러나 기술자는 과거가 없다. 오직 창조만이 있다.” 파낙社 사장의 훈시는 기술개발에 대한 일본기업의 자세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파낙사는 수치제어 분야에서 일본시장의 약 75% 내외를 차지하고 있는 공장자동화(FA) 종합메이커이다. 이 회사는 매출액의 약 10%를 연구개발비로 매년 투입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만 하더라도 약 1백85억엔(한화기준 약 1천1백억원)을 기술개발에 투자했다. 우리나라 기업 중 연구개발 투자순위가 1위인 삼성전자와 3위인 현대자동차(90년 기준)의 투자규모가 각각 2천7백89억원과 1천16억원이었음을 고려할 때 그 규모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파낙사가 일본에서 연구개발비 순위 50위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첨단산업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기술력 격차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경쟁기업간 기술 협조하는 ‘전략적 제휴’ 풍토 정착
 일반적으로 연구개발 투자 결정에 가장 큰 제약조건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자본비용과 자금확보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고금리와 만성적인 자금부족에 신음하고 있는 데 반하여 일본기업들은 저금리와 풍부한 자금력을 확보하고 있다.

 투자규모뿐만 아니라 투자의 효율성 면에서도 일본기업의 전략은 단연 돋보였다. 일본의 전체 연구개발 실적 중 74%가 기업간 제휴에 의한 것이다. 특히 자본이나 생산 면에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계열회사간의 제휴는 1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부분 동종업계의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들이다.

 경쟁기업간의 공동기술에 대한 협조, 이른바 전략적 제휴는 우리 기업 풍토에서는 생소한 용어이다. 그러나 일본기업은 이미 오래 전부터 대기업간 그리고 대기업과 부품기업간 연구개발을 둘러싼 제휴가 활발히 이루어져오고 있다.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의 마루오 연구부장은 “일본에서는 전체 기업의 1%에 불과한 1백50여개의 대기업(자본금 1천억엔 이상)이 전체 연구개발 자금 및 인적구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나 된다. 투자자금의 대규모화, 투자의 불확실성, 그리고 회수기간이 장기화로 말미암아 이런 대기업 주도의 전략은 불기피하다”고 주장했다.

국가 경영전략 최우선 과제를 기술개발에 둬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을 둘러싼 각종 산업정책이 대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 해소 여론과 맞물려 상당한 저항을 받고 있다. 이에 더하여 일부 학자들은 향후의 기술특징을 輕薄短小, 다품종 소량생산이라고 예를 들면서 소기업형 기술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첨단기술로 분류되는 거의 전 품목이 대규모 투자가 선행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기술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산업구조가 일본과 유사하게 형성되어 있는 점을 고려하면 경쟁력 유지 면에서도 우리의 기술전략은 대기업 위주가 불가피할 것이다.

 일본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원활한 협조관계를 통해 원가절감과 경쟁력을 향상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컴퓨터를 생산하는 도시바의 오메 공장에는 총 4천명의 직원 중 1천5백명이, 그리고 기계생산을 주로 하는 히타치의 츠지우라 공장의 경우는 약 2천명 직원 중 8백명이 협력업체에서 파견나와 일한다고 한다. 모기업에서의 공동작업을 통하여 협력업체가 앞선 기술을 원활하게 이전받고 있었다. 아울러 모기업은 생산라인의 설치와 구매면에서도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었다.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 우선 기술개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국가 경영전략의 최우선 과제를 기술개발을 통한 국가발전에 두어야 할 것이다. 다음은 기술개발에 상당한 재원이 배분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개발의 주체인 사람이 의욕을 상실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횡재의 기회와 복권과 같은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는 일이다. 경제 외적인 논리를 이용한 불필요한 기업규제도 없어져야 한다. ‘예측 가능한 경제’가 마련되어야만 연구개발이 활성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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