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에 퍼진 ‘자장면’냄새
  • 부다페스트ㆍ김성진 통신원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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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에만 중식집 2백개…“중국에 점령당했다” 푸념



  헝가리인이 현재의 다뉴브강 유역을 점령한 때는 9세기 말이었다.  오랫동안 유목생활을 해온 이들은 일단 정착을 하긴 했으나 먹을 것이 부족해 그 후 약 50년 동안 서유럽을 무차별로 노략질 했다.  사람을 잡아먹는 잔인한 거인이라는 뜻의 오거(Ogre)라는 영어는 바로 이때 헝가리인을 지칭하는 오노구르(Onogur)에서 나왔다는 말도 있다.

  요즈음 헝가리 언론은 ‘중국인, 헝가리 침공하다’라는 꽤 선동적인 제목을 자주 등장시킨다.  아닌 게 아니라 부다페스트 시내에서 조금만 큰 시장에 가보면 어김없이 중국인 상인을 만날 수 있다. “한 블록 건너 중국식당 하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얼마전만 하더라도 국영 중국식당은 세개뿐이었는데 최근에는 부다페스트에만 중국식당이 2백개를 넘어섰다는 통계다.  신문을 펼쳐도 침술전문 중국한의원 광고 투성이다.  한때 서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헝가리가 이제 중국에 ‘정복’당하고 말았다는 엄살섞인 푸념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는 현실이다.

  헝가리로 중국인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개혁이 본격화된 90년 후반기부터였다.  당시 홍콩거주 중국인들은 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에 불안을 느껴 투자이민 후보지를 물색하다 헝가리라는 ‘신천지’를 발견했다.

  홍콩의 인베스트먼트 파 이스턴이라는 투자개발회사는 외환 부족에 시달리던 헝가리 정부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90년 11월, 1인당 미화 10만달러를 투자한다는 조건으로 이민허가를 받아냈다.  이 회사는 물론 이를 기회로 ‘동유럽 최대의 차이나타운 건설’ 등의 미사여구로 투자객을 모았고 그 소문은 급기야 중국본토로 들어갔다.

“세금도 안내는 중국인” 혐오 여론 높아

  헝가리에서 중국인 이민이 사회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본토 중국인들이 무작정 헝가리로 몰려들면서부터이다.  그나마 돈이 있는 사람은 현지 법의 허점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투자회사 설립에 관한 상법인데 외국인의 경우 1백만 포린트(약 1천만원)만 은행에 예치하면 그날로 법인설립과 함께 체류허가를 받을 수 있다. 

  부다페스트의 권위있는 주간 《세계경제》(HVG)가 추적한 바에 따르면 중국인들이 입금한 1백만 포린트가 은행에 머무는 시간은 짧으면 2~3분, 길어야 세시간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사람이 입금과 동시에 입금영수증을 교부받으면 인출한 돈은 그 다음사람에게 넘어가므로 중국인 투자회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가 추적한 한 중국인 화학설비회사 내역은 이렇다.  화학기계류를 생산하고 수리한다는 목적으로 자본금 1백80만 포린트를 내 설립한 이 회사는 사장은 18명인데 종업원은 한명도 없다.  사장 1인당 딸린 식구가 5명이라고 하면 모두 90명이 이 유령회사를 통해 합법적으로 정착한 셈이다.

  그나마 이들은 법률적인 문제를 해결했으므로 조금 나은 형편에 속한다.  체류허가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중국인이 경영하는 여관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말이 여관이지 실제로 가보면 큰 방에 침대를 몇십개나 들여놓아 남녀구별 없이 공동생활을 하는 ‘벌집’이 대부분이다.

  중국인이 그들 특유의 상술로 손님을 끌게 되면서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헝가리 소매업자들의 진정도 줄을 잇고 있다.  시장에서 만난 한 헝가리 상인은 “중국인은 세금도 내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이 판매하고 있는 물건은 공식 통관을 거치지 않은 밀수품이다”라고 주장한다.

  간간히 발생하고 있는 중국인 관련 사건도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 신병을 비관한 중국인이 부인을 죽인 뒤 자살한 사건은 중국인을 혐오하는 여론에 불을 질러놓았다.

  12월 초 프라임타임에 방송된 국영 M-TV의 중국인 특집방송은 비데오케가 장치된 중국인전용 클럽에서 정장을 한 채 춤을 추는 남녀와 벌집에서 라면으로 배를 채우며 기약없는 내일을 눈물로 하소연하는 한 중국 여인을 중첩시키며 끝을 맺었다.  중국식 경제개혁이 낳은 두 얼굴을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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