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 김세원 교수 (서울대 경제학)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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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국제질서에 적응해야 한다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아쉽게 생각한 것 중의 하나는 후보들의 외교정책이나 대외경제정책에 관한 공약의 제시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국민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거나 또는 정당의 체질에 별 차이가 없다는 데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문제가 선거의 최대 쟁점이었으며 또 대외거래에 한국 경제의 사활이 달려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최근 급변하는 국제경제적 여건에 대한 후보들 입장이 충분히 논의되었어야 한다고 본다.

  국제경제 질서는 2차대전 이후 최대의 변혁기에 접어들고 있다.  우선 사회주의 제국이 체제 개혁을 추진함에 따라 국제 질서는 시장경제로 단일화되어 가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국제 분업의 전개를 예고한다.  러시아가 국내정치 불안 때문에 경제개혁을 늦추고 있으나 세계 시장경제로의 편입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중국은 10여년 간의 고성장과 공업화에 자신을 얻어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의 방향을 더욱 굳히고 있다.  1인당 GNP가 4백달러도 안되지만 중국은 이미 한국의 수출규모를 능가하였으며, 미국을 비롯한 중요 선진국 시장에서 품목에 따라서는 한국의 시장점유율을 앞지르고 있다.  나아가 중국은 한국의 제3의 무역 대상국으로 등장하였으며 국내 기업에게 제일 좋은 자본?기술 수출국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면 11억의 인구, 풍부한 자연자원 및 기술 잠재력을 가진 중국 경제와 발전 전망은 어떠하며 한국 경제와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혹자는 중국 경제의 도약이 한국 경제에 이익을 줄 것으로 예측하며, 이러한 견해는 설득력도 갖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양국간 분업체제는 어떤 모양이 될 것인가, 한국 기업의 중국진출이 국내 산업구조조정에 과연 얼마나 도움을 줄 것인가 등에 달려 있다고 본다.

지역 경제권 없는 한국은 UR에 적극 참여해야

  한편 2차대전 이후 지속된 국제주의?다변주의 체제는 이제 서서히 퇴색하고 지역주의가 이를 대체하고 있다.  물론 다변주의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강력한 협상권을 갖고 있는 경제대국이 자국 이익과 관련될 경우 항상 다변주의를 내세워 하나의 ‘명분’으로 삼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루과이라운드(UR)로서 가트(GATT) 체제는 다변주의와 지역주의를 동시에 포용하는 이원 질서로 발전할 전망이다.

  지역주의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유럽공동체(EC)에 의한 시장통합이 추진되고 유럽공동체 경제권이 형성될 때는 미국이 다변주의를 고수하는 한 국제경제가 ‘블록화’의 위협에 직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캐나다와 자유무역지역(FTA), 그리고 최근 멕시코까지를 포함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체결을 통하여 미국마저도 지역주의로 전향함에 따라 이제 다변주의는 ‘국제적 준칙’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이와같이 국제경제는 크게 양대 지역 경제권으로 분립되어 가고 있다.  하나는 유럽공동체 경제권으로 12개국의 회원국으로 90년대 중반 이후 유럽자유무역연합(EFTA).7개국을 추가하게 되고, 2천년대에는 유럽 전지역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여기에 특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근동, 아프리카, 태평양 및 카리브 지역을 추가한다면 유럽공동체권에 속하는 국가는 1백개국 이상에 달한다.  또다른 갈래는 미주권이다.  미국은 나프타에 이어 중장기적으로는 자유무역지역 대상을 중남미 제국으로 넓힐 계획을 발표하였다.  아?태경제협력(APEC) 각료회의가 기능을 발휘하고 있기는 하나, 대부분의 아시아?태평양 국가는 대외경제정책면에서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이 경제권과 어떤 관계를 수립하느냐에 있다.

  그래서 우루과이라운드의 의의는 더 한층 강조되고 있다.  지역주의가 여기에 속하지 않는 역외 국가들에 대한 차별대우로 인해 국가거래에 왜곡을 가져온다면 피해는 가트의 무차별 원칙에 입각한 국제무역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될 때 크게 줄어들 수 있다.  한국과 같이 어떤 지역 경제권에 속하지 않는 입장에서 볼 때 우루과이라운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역주의의 심화나 확산을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역주의의 취지는 배타적인 보호주의의 강화보다는 광역 시장의 형성, 분업의 가속화 및 성장의 촉진 등에 있으므로 한국 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면 오히려 이러한 추세를 유리하게 활용할 여지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국제경제의 전환기적 모습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한국 경제가 당면한 최대 과제의 하나인 산업구조조정의 방향을 분명히하여 전문화를 과감히 추진하고 경쟁력을 제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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