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民의 싹을 위하여
  • 김 훈 (편집위원) ()
  • 승인 2006.05.0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결국 군정은 이런 방식으로 종결되었다.  우리는 현실을 혁파하거나 과거와 단절하는 방식으로 군정을 종식시킨 것이 아니라, 군정의 自然死를 기다리는 시간의 흐름 위에서 군정의 종식을 맞이한 것이다.  역사에 작용하는 변증법의 역동성이 아니라, 괴롭고 느려터진 진화의 여정을 우리는 선택했다.  부당한 역사를 달래면서 살아냄으로써 그 부당한 역사를 청산하는 민족적 삶의 한 방식이 이번 선거 결과 드러났고, 한국 현대사는 이제 가장 기초적인 합리성의 길로 겨우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 느려빠진 진화의 여정을 재촉할 수는 있을지언정, 거기에 거역할 수는 없게끔, 역사는 이제 방향지워질 것이다.  文民으로 가는 현대사의 길은 단절이 아니라 오버랩의 방식이다.

  그리고 이 포개짐의 역사적 풍경 속에는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군정의 거대한 구조적 잔해들과 그 잔해 위에서 돋아난 문민의 싹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희뿌연 문민의 새벽에는 축제의 감격보다도 성찰의 고통을 앞세우는 편이 온당하다.

  아마도 이번 선거의 결과가 심오한 정밀분석의 대상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당선자의 표 속에, 그리고 패배자의 표 속에도 이념이나 가치의 구조가 들어 있지는 않다.  거대하게 양대 블럭화한 표 속에는 다만 현대사를 군정으로 통과해온 한국인의 정치적 잠재의식이나 상처받은 집단 정치정서의 집적만이 들어 있을 뿐이며, 표의 양대 블록화 그 자체가 군정의 구조적 잔해일 뿐이다.  문민은 이처럼 괴로운 토양 위에서 겨우 배태된 것이고, 이 문민의 싹을 길러 그 토양인 군정구조를 거꾸로 청산하는 것이 이제 한국인의 시대적 과제로 등장했고, 문민의 싹에 유해한 환경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 그 과제의 제1장인 셈이다.

‘기관장 회식 사건’은 사법처리 아닌 정치적 극복 대상

  군정과 문민이 포개짐으로써 비켜가는 이 교체기에 부산 기관장 회식 사건이나 사면복권의 문제를 처리하는 정부의 인식과 자세는 문민의 미래보다는 군정의 유산이 깊이 작용하고 있음을 국민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과 자세는 혁명이 아니라 진화의 방법으로 군정을 종식시키는 역사방향을 선택한 국민의 선의를 배반하는 것이다.  부산 기관장 회식 사건은 그것이 만일 복국 한그릇씩을 나누어 먹은 사사로운 모임이었다면, 그 모임을 도청한 범죄의 내용은 고작 사생활침해 정도의 수준에 불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복국 사건의 본질은 이 회식이 사법처리의 대상인가 아닌가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회식 사건의 본질은 그것이 국가기관의 공조직을 총동원한 부정선거였던가 아니면 사사로운 점심의 자리였던가를 정황증거에 따라서 판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회식의 자리에서 드러난 이른바 기관장이라는 사람들의 그 저열하고도 치매한 멘탈리티에 있다.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반역사적인 시대인식을 스스로 유지함으로써만 이른바 기관장이라는 자리에까지 출세할 수 있었던 정치환경 속에 문제의 본질은 있다.  그들을 둘러싼 정치환경과 그들의 멘탈리티는 아직도 살아있는 군정의 구조적 잔재인 것이다.  따라서 기관장 회식 사건은 사법적 처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이제 정치적 단절과 극복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적 결단으로 대처해야 할 일을 사법적 장치에 의해 해결하려는 태도는 정치 쪽의 책임회피일 뿐이다.  그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유죄로 끝나건 무효로 끝나건, 그들이 대표하는 인간성과 가치관의 집단유형으로서의 군정잔재는 아마도 오랫동안 살아남아 이제 막 배태된 문민의 싹을 괴롭히게 될 것이고, 새 문민정권을 책임져야 할 정치세력의 싸움은 바로 이 군정잔재와의 싸움이라야 한다.  그리고 그 싸움에 국민들은 흔쾌히 동참할 것이다.

군정잔재와의 화해는 새로운 갈등 심는 일

  군정의 구조적 토양 위에서 겨우 배태된 문민의 시대에, ‘안정속의 화합’이라는 깃발로 새 문민의 싹을 책임진 집권세력들은 ‘안정’과 ‘화합’이 갈등을 일으킬 때 ‘안정’쪽으로 주저앉고 말리라는 의구심을 국민들은 버릴 수가 없다.  그리고 교체기에 이루어진 이번의 사면이 과연 화합이나 청산을 위해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를 따져보는 일은 허전하다.  과거의 군정은 군정이 수용할 수 없는 미래의 가치를 표방하거나 실천하는 세력들을 사회의 공조직으로부터 대거 추방하거나 감금하고 학살했다.  광주의 민족적 상처와 전교조 교사들의 추방이 그 대표적 비극들이다.  화해는 이 근원적 상처들과의 화해로써 이루어져야 한다.  5공비리, 수서비리와 같은 군정의 잔재와 화해하는 것은 화해가 아니라 역사 속에 갈등의 새로운 씨앗을 뿌리는 일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더구나 그 군정잔재들과의 이같은 ‘화해’가 대통령의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교체기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또 한바탕의 친인척 비리일 뿐이다.  지금, 떡잎을 겨우 내민 문민의 싹은 한국 현대사 속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미래 가능성이다.  그리고 그 싹은 매우 불우한 토양 위에서 돋아난 싹이다.  차기 집권세력들이 군정의 거대한 잔재들을 청산하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실천할 때만 비로소, 이 귀한 싹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