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첫 한국 유물관 설립
  • 워싱턴·한종호 기자 ()
  • 승인 1992.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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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가야금 공연.범종 전시

 해외로 반출된 유물의 처리문제를 놓고 논란이 이는 가운데(89쪽 기사참조) 지난 2월27일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는 몇가지 의미있는 행사가 마련됐다.

 15개 박물관으로 구성된 스미스소니언박물관 가운데 아시아 예술품을 주로 전시하는 아더 새클러갤러리에서는 黃秉冀 교수(이화여대?국악)의 가야금 연주회와 고려시대의 청동범종 전시회가 동시에 열렸고, 또 인근 프리어 예술갤러리에서는 한국정부의 후원 아래 내년 한국관 개관을 앞두고 보관중인 한국유물이 언론에 공개됐다. 이번 행사가 주목받는 것은 △해외 한국관 지원 △대여 전시 △문화교육 등 해외문화교류의 본보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프리어갤러리, 내년 5월쯤 한구관 개관
 가야금 작곡 및 연주가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황병기 교수의 공연은 새클러갤러리가 마련한 ‘한국예술공연제’ 시리즈의 첫 행사로 5월과 9월에는 또 다른 한국 예술가의 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기획이 교육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클러갤러리의 마일로 비치 관장은 “황교수를 초청한 이유는 그가 탁월한 작곡?연주가이자 6살짜리 어린이와도 이야기할 수 있는 교육자이며 한국문화를 잘 소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황교수의 이번 연주여행에는 공연뿐만 아니라 현지 예술학교에서의 강의 및 워크숍, 한국아이를 입양한 학부모들과의 좌담회 등이 포함되어 제한적이나마 한국문화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돕고 있다.

 황교수의 공연에 때맞춰 전시를 시작한 청동범종은 경기도 양평에서 출토된 고려시대의 유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년간 대여해준 것이다. 물론 한국예술품의 대여전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워싱턴 자연사박물관에 고려시대의 철조여래좌상이 87년 대여된 적이 있으며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박물관에 31건 33점,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동양미술박물관에 15건 17점이 대여되어 있다. 또 워싱턴의 미술박물관에는 91년 10월부터 금년 1월까지 국보 2점 보물 2점을 포함, 총 16점이 대여되어 특별전시회가 열린 바 있다. 문화재대여 전시는 외국으로 반출된 문화재를 반환소송이라도 해서 들여와야 한다는 일부의 ‘조급증’에 비하면 훨씬 적극적인 문화외교의 하나이다. 중앙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대여된 문화재는 해외에서 한국문화의 선교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국 문화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은 것은 프리어갤러리의 한국관 개관계획이다. 1923년 개관한 이 박물관에는 원래 주로 일본과 중국 등의 도자기 1천7백여점과 함께 한국 도자기류 약 5백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별도의 전시공간은 고사하고 체계적 분류조차 되어 있지 않아 컬렉션으로서의 가치를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87년부터 시작된 보수공사가 내년 5월쯤이면 끝나는데 그때면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처음으로 한국유물전시관이 생기게 된다. 프리어갤러리 큐레이터 루이스 코트씨는 “별도의 한국관 전시를 위해 한국문화재의 분류와 보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다국적기업 후원, 한국은 ‘구경꾼’
 이처럼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모아진 것은 재정적 후원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81년 프리어갤러리에, 87년에는 새클러갤러리에 각각 1백만달러를 기증했다. 그러나 해외에서 대대적인 문화사업을 벌이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이번 공연과 전시회의 경우 모두 한국에 진출한 미국의 다국적기업인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스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차세대 전투기사업을 계기로 한국에 널리 알려진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스는 기업 이미지 향상을 위한 홍보전략의 하나로 이번 행사를 후원하고 있으며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의 협조가 맞물림으로써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비록 한 기업의 홍보전략의 일환이긴 하지만 우리 정부나 기업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공백을 메워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있다. 일본의 경우 최근 나고야시에 박물관을 지으면서 일본문화재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미국 보스턴의 예술박물관과 협상을 벌여 전시품을 대량 대여받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이는 튼튼한 재정적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 국력은 문화교류에도 고스란히 반영되는 셈이다.

 아쉬운 것은 추진 당사자 가운데 한국측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모든 준비가 미국기업과 워싱턴에 있는 한?미재단 및 박물관에 의해 이루어졌을 뿐 한국측은 사실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화려한 바깥 잔치도 좋지만 우선 국내에 있는 박물관부터 살려야 한다”는 지적을 하는 이도 있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우리 박물관은 아직 19세기 수준에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 목록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데다 대학에 박물관학과가 없는 나라는 아마 한국뿐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1백여개 대학에 박물관학과가 설치되어 매년 수천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는데 국내에는 정식 박물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라니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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