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쓸 땐 작두 탄 무당”
  • 여운연 기획특집부 차장 ()
  • 승인 1992.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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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金秀賢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폭발적 인기는 새삼 작가에 대한 관심을 쏠리게 한다. 14대 총선을 앞둔 불꽃 튀는 선거시즌에도 아랑곳없이 이 MBC 주말연속극의 인기는 불꽃이 꺼질 줄을 모른다. 그러나 ‘도도하고 칼날같은 작가’로 통하는 金秀賢씨(49)는 어떤 인터뷰에도 잘 응하지 않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드라마 방영 이후 그를 찾는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치자 얼마 전에 아예 자택 전화번호를 바꾸어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해버렸다.

 글쓰기와 책읽기가 생활의 전부라며 사람만나기를 멀리하는 분명한 태도가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지는 ‘못된 작가’(본인의 표현)를 만나보았다.

이렇게 시청률이 높으리라 예상했습니까
 그건 언제나 아무도 예상못합니다. 무슨 드라마든지 처음에 시작하면서 이게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보일 것이다라고 예상못해요. 시청률을 염두에 두고 내가 이런 얘기를 쓰면 재미있지 않을까 그런 정도이죠.

88년 국회청문회보다 시청률이 높다는 언론의 요란한 보도가 작가에겐 부담스럽지 않던가요.
 시청률은 시청률이고 나는 나죠. 다음 번 일을 하는 데 힘들겠다는 생각은 해요. 조금 쉽게 생각해서 밤낮 일등해야 되는 사람인 것 있잖아요. 그렇다고 스트레스라고 애기할 것까지는 없고,‘나는 왜 팔자가 이럴까’이런 정도이죠.(웃음) 조금만 덜 점수가 나와도 막 필요 이상으로 나한테 상처를 내고, 그러는 것들이 굉장히 싫어요.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우습죠. 워낙이 내 성격이 그런 쪽으로 뻔뻔스럽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지 시청률이 떨어졌다고 상처를 줘도 그렇고, 시청률이 높다고 난리를 쳐도 그냥 그래요.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나쁠거야 없잖습니까.
 나쁠거야 없죠. 그러나 시청률이 좋으면 개인적으로 굉장히 피곤해요. 귀찮게 하는 데가 많으니까.

<사랑이 뭐길래>에서 보여주려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나는 쓰는 사람은 ‘이런 메시지를 담았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고 원칙을 정해 놓은 사람예요. 왜냐하면 보는 사람들이 각자 다 자기 식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걸 받아들여요. 내가 쓰는 거하고 관계없어요. 써서 내보내면 다 다른 모양으로 시청자들에게 흡수되는 모양이더라구요. 그러니까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발견하고, 자기가 받아들이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면 그걸 받고 그러는 거죠. 난 처음 드라마 공모에 응모할 때도 테마가 뭔지도 모르고 응모한 사람이에요. 드라마란 형식을 빌려서 보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고, 또 즐길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쓰는 걸로 다하는 거 아니겠어요.


재미있게 보면 되는 게 아니냐하는 것이 바로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텔레비전의 함정 아니겠어요.
 그럼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재미있게 풀어서 시청자 여러분이 느껴지는 게 있으면 느끼고, 내가 주는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채널을 갖고 있으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할 수 없고…. 나는 그렇다고 내 작품이 메시지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전체가 다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나는 이 작품에서 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얘기하는 것은 참 촌스럽고 우스워요.

김선생의 작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사회적 관심사를 다루지 않는다, 비판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 늘 따르는데요.
 별로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 데요. 사람들이 다 자기만큼 보고 그런거니까. 나는 내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어요. 단지 이런 손해는 내가 본다고 생각해요. 날보고 말장난이라든지 언어구사가 좀 다르다든지 아니면 재미있다든지 그런 부분때문에 오히려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메시지가 가려져 받아들여지는 것이 약한 게 아닌가… 그걸로 손해를 보는게 아닌가 싶지만 그러나 나는 우선 텔레비전 드라마라는 건 보면서 시간을 즐기면서 빠져들고, 보고난 뒤 잠깐 생각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기대가 크니까 최근들어 드라마 중반에 접어들면서 좀 맥이 빠진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내성이란 것도 있구요. 우리가 물랭루주쇼나 리도쇼를 본다든지 할 때 처음에 보면 굉장히 멋있잖아요. 그러나 점점 쇼가 진행되면서 처음에 느꼈던 감정과 같은 느낌일 수는 없어요. 그거나 마찬가지예요.

드라마 사이사이에 여성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는데 너무 여성비하가 심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던데요.
 그 질문에 대해 할 말이 있어요. 이건 구성 자체가 마치 여성을 굉장히 비하하는 것같이 살고 있는 타입의 어떤 가정을 설정했어요. 그걸 가지고 ‘여성비하다’ 논란을 벌인다는 건 무식한 짓이죠. 그렇잖아요. 설정 자체가 그런 건데 무슨 여성비하… 또다른 쪽 집에선 가족 모두가 여성을 예우해주죠. 그건 왜 말이 없어요. 두 집이 같아야 한다는 얘긴가. 그럼 드라마가 되겠어요? 내가 얼굴이 네모진 사람을 쓰겠다 했는데 왜 얼굴이 네모지냐고 시비거는 것과 똑같아요. 그 대답은 이렇게밖에 할 수 없어요. 처음부터 알고 봐야지 돼요. 코믹 터치이기 때문에 진실성이 결여되고, 이런 애기들 하죠. 진실성이 결여됐으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많은 엄마들이 보면서 속상해 하고 울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겠어요. 공감한다는 건 진실한 모습을 그려냈기 때문이라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비평에 대해서는 초연한 편이에요. 비평하는 사람들은 비판의 눈으로 보겠지요. 그러나 나는 이 일을 20년 넘게 한 사람이고, 프로이고 프로 중에서도 제법 우수한 프로이기 때문에 드라마에 대해서 또는 인간에 대해서 나이상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은 별반 없다 생각하니까 상관없어요. 일반 시청자들이 의견을 말하는 건 자기네들 취향이니까 관계없어요. 언론사에 갓 입사한 젊은 기자들이 방송을 맡게 되면 비평이란 이름을 빌려 별소리를 다써요. 아주 말이 안되는 소리들을. 신문이란 것, 활자라는 것 때문에 그게 마치 답인 것처럼 된다는 데 문제가 있죠.

평소 여성문제, 여성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편입니까.
 난 관심없죠. 태어날 때부터 남자와 대등하고 남자에게 절대로 꿀릴 게 없으니까.

자신은 그렇지만 다른 여성들을 볼 때 그런 생각을 갖게 되지 않나요.
 이 사회에 나같은 여자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남자들이 내 드라마를 그렇게 싫어했잖아요. 내가 이상으로 하는 남자를 쓰면 남자들은 병신같아 보이는 모양이에요. 여성운동에 특별히 관심이 있다든지 무슨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노력을 해야겠다든지 그런 것 없이도 나 스스로가 그러니까요. 내가 그리는 드라마 속에서 여자들이 다 강하다고 그러잖아요. 강하다고 그러는 건 여자는 약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이 전제된 데서 나오는 거 아니겠어요. 여성들 편에서 한몫을 하고 있을걸요.

방금 말씀하셨듯이 지금까지 발표한 드라마를 보면 남자주인공들은 거의 완벽한 남성상을 그리는 것 같았어요.
 나의 이상이죠 뭐.

주변에서 좋은 남자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절대로 없어요. 이상이죠. 남자가 이런 모습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거죠. 그러니까 남자들이 볼 때는 불쾌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남자들이 좀 근사했으면 좋겠어요. 작품 속에서 그리는 근사한 남자하고 살아서 움직이는 근사한 남자하고는 달라요. 작품 속에선 완벽하기 위한 모든 조건을 다 집어넣을 수 있잖아요. 그러나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들이 완벽하게 멋있는 남자는 될 수 없어도 어느 한 부분씩이라도 근사해졌으면 좋겠어요.

드라마 속의 이순재형 가장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가장 두드러진 극중인물 중의 하나인 이순재씨에 대해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14대 선거를 앞두고 선거운동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는 반발 또한 크던데요.
 이순재씨가 여기에 출연한다고 해서 무슨 정치적 이득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고 관심도 없어요. 그 양반은 연기자로서 제가 참 좋아해요. 정확한 연기를 하는 사람이고 대한민국에서 코믹 드라마를 그 양반처럼 완벽에 가깝게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 분이 이 일을 해주기를 원했고, 그냥 연기자로서도 작품을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사람과 같이 일을 하자는 것뿐이지 정치하고는 상관없어요. 만약에 그런 식으로 시비를 걸자고 한다면 지난번 선거가 끝나고 나서 지금까지 쭉 텔레비전 화면에 안나왔어야 돼요. 또 지금 KBS에서 <가족>이란 드라마도 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어떻습니까. <사랑이 뭐길래>에서 나오는 대조적 타입의 두 남성 중 어떤 쪽을 좋아합니까.
 남자랑 사는 나는 상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대답하기 어려워요. 둘 다 괜찮아요.

드라마에 나오는 ‘타타타’가 히트를 치면서 요즘 중년여성들 간에 ‘타타타 증후군’이란 말까지 나왔는데요. 이 노래를 어떻게 드라마 속에 집어넣게 됐습니까.
 그건 참 기쁜 일이에요. <사랑이 뭐길래>를 하면서 가장 기쁜 일은 김국환씨의 ‘타타타’가 많이 알려지게 됐다는 거예요. 차타고가다 우연히 노래를 들었는데 곡도 좋고 말도 좋더라구요. 노래 중간부터 들었는데 굉장히 가슴에 닿더군요. 그 테이프를 사야겠는데 제목도 모르고 가수도 모르니 어떻게 사야할지 몰라 주변 사람에게 “산다는 게 그런거지.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한벌 건졌잖소…” 이런 노래가 들어있는 테이프를 사오라고 했어요. 그런데 못구했어요. 사방으로 알아보다 겨우 구해 갖고온 것을 들어보니까 “아 이게 자식을 떠나보낸 엄마쪽 장면에 넣으면 잘 어울리겠구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때까지 김국환이란 가수를 전혀 몰랐고. 그래서 쓴 거죠. 결과적으로 그 양반한테 참 좋은 일이 됐다는게 기뻐요.

드라마쓰는 작업이 상당히 진빼는 작업일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어떤 경우든 진은 빠져요. 앉은 자리에서 불과 20시간 정도 한꺼번에 해도 진은 빠져요. 완전히 들어가버리거든요. 무당이 작두를 20시간 타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글쓰는 일을 즐기는 편입니까.
즐긴다, 안즐긴다 할 새가 없을 정도로 급박하게 원고를 쓰죠. 일하는 것 정말 싫어요. 어느 글쟁이보고 글쓰는 게 좋으냐고 물어보세요. 다 치를 부들부들 떨지.

‘오만하다’ ‘도도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지 않습니까. 일부에선 인기가 떠받쳐 준 것 때문에 더욱 그런게 아니냐 말하기도 하는데요.
 사람이 무슨 인기가 있어지니까 그렇다면 아주 유치한 사람이죠. 나는 유치한 사람 제일 싫어해요. 난 당당해요. 어릴 때부터 누구한테 지는 것 절대로 싫고 부당한 꼴을 못보고…. 타고나기를 교만하게 타고 났나보죠. 그런 평판에 대해서 난 괜찮아요. 비굴하다 치사하다 약삭빠르다든지 그런 평판이 아닌 것만도 행복해요. 실제로 그런 평판이 날 만하게 했으니 할 수 없죠.

극중에서 윤여정 하희라 모녀관계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사고 있는데 실제로 딸(현재 미국유학중)을 키우면서 모녀간의 미묘한 갈등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거의 없어요. 둘이 서로 친구같고 갈등을 일으킬 뭐가 있어야죠. 대발이나 나타난다면 모를까.

대발이 같은 남자가 따님한테 청혼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극중에 나오는 윤여정하고 생각이 많이 비슷할 거예요. 난 더 펄펄 뛸 수도 있어요. 그리고 곧 포기하겠죠. 우리 딸은 고집세기가 난 저리가라에요. 그렇지만 내가 싫다는 짓은 안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한번 붙으면 논쟁이 굉장하죠. 걘 아주 논리적이고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고.

국민당의 정주영 대표와 친밀한 관계로 알려져 있는데 지난번 발기인으로 참여 이후 국민당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지 않았습니까.
 맨 처음부터 발기인하고 당원하고 꼭 붙어야 되는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고 나는 그냥 내가 하는 작업 열심히 하면서 사는 사람이에요. 적극적으로 어떤 형식으로 참여할 수 있겠어요. 요청은 없었어요.

정주영 대표의 자서전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습니까.
 자서전이란 원래 본인이 쓰는 거잖아요. 본인이 쓰는 건데 사실은 모두들 본인이 쓰질 않아요. 다른 사람들이 손을 대서 본인이 쓴걸로 내죠. 내가 이름도 성도 없는 사람일 것 같으면 이렇게 거론될 필요도 없겠죠.

마지막으로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 작가로서 한말씀 해주세요.
 연출자인 박철 프로듀서가 참 좋은 애길 했더라구요. 어딘가 인터뷰에서 맨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김수현씨가 시청자들한테 드리는 따뜻한 마음의 선물이다”라고 했더군요. 내가 할 수 없는 말을 그 양반이 해줬는데 이 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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