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짓 하나에 표 오르락내리락
  • 이숙이 기자 ()
  • 승인 1997.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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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주자들, 이미지 전략 세우기 고심 · · · TV 정치 활성화돼 중요성 커져

클린턴 대통령은 텔레비전이나 대중 연설에 나서기 전에 반드시 코로 물을 약간 들이키는 고통을 감내한다. 그렇게 하면 연설 도중 입안에 침이 고여 발음이 불분명해지거나 입 밖으로 침이 튀는 실수를 막을 수 있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곧 대중의 지지를 좌우한다는 감성 정치의 본질을 클린턴은 일찍 감치 간파하고 있었던 셈이다.

  반면 닉슨은 이미지 때문에 낭패를 보았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60년 케네디와의 텔레비전 토론에 나선 닉슨은 초췌하고 음울한 모습이었다. 토론회 직후 닉슨에게는 ‘오후 5시 수염’(아침에 면도한 얼ㄹ굴에 까칠한 수염이 돋기 시작한 오후의 피곤한 모습)이라는 우울한 별명이 붙었고. 이 이미지가 유권자의 투표 행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바람에 결국 패하고 말았다.

박정희 놓고 다투는 이인제 · 김종필 · 이한동
  클린턴이 될 것이냐 닉슨이 될 것이냐. 97년 대권에 도전하는 여야 예비 주자들에게 클린턴과 닉슨의 사례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이미 세 차례나 텔레비전 토론을 거치면서 이미지가 지지도에 미치는 영향력을 절감한 각 진영은 단점을 분석하고 보완책을 마련하는 등 새로운 전략을 세우기에 무심하고 있다.

  ‘뿌린 만큼 거둔다.’ 세 버의 텔레비전 토론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그 여세를 대선까지 몰아가기 위해 더 화려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김총재가 추구하는 이미지는 될 수 있는 대로 ‘젊고 밝고 부드럽게!’이다. 김총재는 일단 옷차림부터 바꾸었다. 화려한 색상의 넥타이는 기본이고, 젊은층이 선호하는 멜빵을 소품으로 착용하고 신세대에게 성큼 다가서는 중이다. 지난 6월18이에는 초등학교 점심시간에 손수 앞치마를 두르고 배식하는 모습이 뉴스 화면을 타기도 했다. 머지않아 국민들은 파스텔 톤의 캐주얼 셔츠를 입은 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옷차림보다 더 ‘튀는’ 것은 그의 행보이다. 보수층을 끌어안기 위한 파격적인 ‘右턴’ 전략을 과감하게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산 공군기지 · 재향군인회 · 보훈병원 등을 방문한 데 이어 6월18일에는 반공협회 기념식에 참석해 치사를 했다. 김총재의 한 측근은 “반공협회 참석은 시작에 불과하다‘라면서,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라면 자유총연맹 · 전경련 등 어떤 단체 사람들과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총재는 최근 KBS 이사를 지낸 황규환씨를 총재 특보로 영입했다. 곧 MBC 출신 방송 기술 전문가도 합류할 예정이다.

  이인제 지사 진영은 ‘리틀 박정희’ 이미지가 텔레비전 토론회 이후 지지도가 급상승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당분간 이 이미지를 고수할 생각이다. ‘작지만 강하고 추진력 있는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업고 가겠다는 전략이다. ‘군사 독재’라는 박대통령의 부정적 미이지가 맘에 걸리기는 하지만, 국민들이 민주계 적자인 이지사를 독재와 연관시키는 일은 없으리라는 것이 이지사측의 판단이다. 박대통령과 키까지 163cm로 똑같은 이지사는 요즘 머리모양도 박대통령과 비슷하게 매만지고, 가끔 광대뼈가 더 드라져 보이게 연출하기도 한다.

  이지사가 뜻하지 않게 리틀 박정희 이미지 때문에 덕을 보았다면,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신한국당 이한동 고문은 이런 이지사 때문에 크게 손해를 보았다고 여긴다. 김총재 진영은 처음에는 김총재의 경륜이 돋보였다가 차츰 ‘구시대 정치인’ ‘만년 2인자’ 의 이미지가 도드라지면서 지지도가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자민련은 특히 개발 주체 세력인 김총재가 거두어들여야 할 박정희 증후군의 과실을 이지사가 몽땅 가로채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내각제 홍보에만 주력한 나머지 김총재 홍보에 소홀했다고 자체 평가를 내린 자민련은 앞으로 김총재 이미지 메이킹에 주력하기로 했다. 6월24일 전당대회에서 김총재가 대선 후보와 총재선출 된 직후 LA다저스의 박찬호 선수와 통화하는 이벤트를 기획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한동 고문이 이지사를 원망하는 맥락도 김총재와 비슷하다.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 · 식량 자급화 · 자주 국방 등 내용으로만 따지면 오히려 이고문의 정책 방향이 박대통령을 닮았는데, 단지 외모가 닮았다는 이유로 이지사가 박정희 프리미엄을 통째로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토론에서 실력의 50%도 채 발휘하지 못했다고 자평하는 이고문측은, 일련의 출판 · 식량자급화 · 자주 국방 등 내용으로만 따지면 오히려 이고문의 정책 방향이 박대통령을 닮았는데, 단지 외모가 닮았다는 이유로 이지사가 박정희 프리미엄을 통째로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토론에서 실력의 50%도 채 발휘하지 못했다고 자평하는 이고문측은, 일련의 출판 · 출반 시리즈를 통해 적극적인 이미지 홍보에 나섰다. 주된 테마는 ‘가슴이 넒은 남자’. 정책 서적인 <이한동의 나라 살리기>와 인물 평전 <가슴이 넓은 남자>가 출간되었으며, 머지 않아 <경제 리포트>도 나온다. 이고문은 특히 빼어난 노래 실력을 부드러운 이미지 심기에 십분 활용하고 있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가수 뺨치는 노래 솜씨를 선보였고, 최근에는 장애인 돕기 앨범을 취입했다.

  텔레비전 토론으로 재미를 못 보았다고 아쉬워하기는 이수성 · 박찬종 고문도 매한가지다. 이고문은 호감도나 순발력에서는 다른 주자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두루뭉실한 답변, 지나친 지역색 강조, 가부장적 태도는 감점 요인이라고 지적받았다. 이에 대해 “후발 주자라 자기소개 부분이 많아 보니 과거 지향으로 보였다"라고 해명한 이고문측은, 앞으로는 명쾌하게 비전을 제시하는 쪽에 역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고문의 외모에서 변화를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고문 스스로가 외양 가꾸기를 천성으로 싫어하는 탓이다. 다만 집안에서 늘 입고 있는 한복이 이고문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것 같다.

  박고문은 이미지 연출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다. 무균질 · 청렴 · 참신성 등이 그의 높은 대중적 인기를 구성하고 있는 이미지다. 패션 전문가 김동수씨는 그가 천부적인 패션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극찬했다. 그런데 그는 텔레비전 토론에만 나갔다 하면 얼굴이 굳어지는 통에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애타게 만든다. 그래서 박고문은 취미를 ‘거울 보기’로 바꾸었다. 그의 여의도 사무실 오른쪽에는 대형 벽거울이 걸려 있고, 책상 위에는 작은 화장 거울이 놓여 있다.

  앞으로 이미지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를 놓고 가장 고민하는 쪽은 누구보다 이회창 대표다. 지금까지 이대표를 다른 주자와 차별화시켰던 ‘대쪽’이나 ‘법대로’ 이미지가 시간이 갈수록 차갑고 포용력 없는 쪽으로 비치는 탓이다. 특히 감성 매체인 텔레비전을 통해 드러난 이대표의 모습이 지나치게 논리적이고 딱딱하다는 내부 평가가 나온 후 이대표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겉만 번지르르한 정치인 뽑힐 수도
  궁리 끝에 이대표 진영은 갈 길을 정했다. 최대한 부드러움을 추구하되 이대표의 본성을 건드리지는 않는다는 쪽이다.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박성범 의원은 “대중성을 얻기 위해 안하던 몸짓이나 안 웃던 너털웃음을 짓는다면 오히려 어색하게 보인다. 차라리 정직하게 이대표를 드러내는 게 낫다”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이대표가 판결문을 읽는 듯한 말투를 구어체로 바꾸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눈짓 같은 아주 세세한 표정 관리에서부터 정책 방향을 바꾸는 본질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유권자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려는 가 주자의 이미지 전략은 다양하다. 하지만 후보나 유권자나 지나치게 이미지를 중시하다 보면 자칫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빈약한 인물이 대통령으로 뽑힐 가능성도 적지 않다.

  잘 보이려는 주자와 제대로 보려는 유권자 사이의 줄다리기가 갈수록 치열해질 것 같다.
李叔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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