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익는 ‘同盟의 계절’
  • 최진 기자 ()
  • 승인 1997.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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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주자, 이회창 진영 대 反李진영으로 헤쳐 모여 한창 · · · JP도 은근히 한몫

 미래학자 제임스 데이비드슨은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폭력의 논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른바 메가폴리틱스 이론(거대 정치론)을 주창했다. 시대가 변해도 폭력은 형태만 달리할 뿐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요즘 신한국당의 경선 정국을 보면, 메가폴리틱스 이론을 그대로 적용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갈수록 치열한 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이회창 대표 진영 대 반(反)이회창 진영. 그동안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던 여권의 대선 예비 주자들은 6월 들어 확실하게 두 쪽으로 가라지고 있다.

  이회창 진영은 이대표를 비롯해 김윤환 고문과 나라회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김고문이야 일직감치 이대표 대열에 가담했고, 민정계 모임인 ‘나라회’ 역시 김고문이 배후에 있어 사실상 이대표지지 그룹이나 다름없다. 나라회에 참여하고 있는 이한동 고문 지지파가 막판에 이탈하겠지만, 3분의 2이상이 허주계다.

  6월27일 원내외 지구당위원회장 1백50여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경선 출마 선언식을 갖고 기선을 완전히 제압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이대표는, 7월초 대표 직을 내놓은 이후에 대비해 경선 필승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친(親)이대표 계열 교수들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A4용지 15쪽 분량 문건 ‘세계 각국의 경선 투표 형태 분석’에는, 1차 투표에서 1위를 한 이대표가 본선에서 2위에게 불의의 역전패를 당하지 않는 전략에서부터 반대 세력의 연대를 ‘야합에 의한 뒤집기’로 몰아붙이는 심리전까지 담고 있다. 이대표 진영이 만든 또 다른 경선 대책 문건에도 반이회창 연대를 무력화하는 다단계 전략이 나타나 있다.

  문제는 반이회창 진영이다. 이들이 어떤 형태로 얼마나 견고하게 뭉치느냐에 따라 대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반이회창 진영은 대표직 사퇴 공세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면서 구체적인 연대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가장 뚜렷하게 손을 잡은 합종 3인은 이한동 박찬종 ·  김덕룡. 6월 17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김덕룡 의원 경선 출마 선언장에 나와 손을 맞잡아 올리며 연대를 공식화한 세 사람은, 6월 20일 서울 시내 팔레스호텔에서 만찬 모임을 갖고 1차 경선 때까지 철저하게 공조해 나가기로 신사협정을 맺었다. 이들은 공동 세미나를 개최하고 공동 경선 때까지 철저하게 공조해 나가기로 신사협정을 맺었다. 이들은 공동 세미나를 개최하고 공동 경선 전략을 세우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사실 세 사람은 ‘프로 정치인’이면서도 ‘아마추어 정치인’인 이대표에게 형편 없이 뒤지고, 최근데는 지지도가 3~4위권으로 처지고 있는 데 대해 불만과 위기감을 공유하는 처지이다. 또 이한동 · 김덕룡 두 사람에게는 그동안 남모르는 외부 압력이 있었다. 다름 아닌 경복고 동문들의 압력이 그것이다. YS 정권의 최대 실세 학맥으로 꼽혔던 경복고 동문들은 지난 5월 초 기수별 회장단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모임을 갖고 동문인 이한동 · 김덕룡 · 이인제 세 사람 가운데 누구를 지지할 것인지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어쨌든 경복고 출신 주자들끼리 협력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이들 3인 연대의 한 배경을 작용했다.

정치인 출신 3각 연대파, 독자파 등 혼재
  이한동 · 박찬종 · 김덕룡 3자 연합 전선에 이수서 고문도 참여할 뜻을 강하게 비쳤다. 그러나 아마추어리즘을 맹렬히 비판해온 박찬종 김덕룡 두 사람이 ‘아마추어’인 이수성 고문의 가담을 영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어 이고문이 이 연대 그룹에 참여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한동 고문이 이고문 참여를 찬성하고 있어 변수다. 서울법대 선후배인 이한도 · 이수성 두사람은 ‘형님’ ‘아우’라고 부를 만큼 돈독한 관계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최근 들어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부쩍 가깝게 지내고 있다.

  이수성 고문이 최근 이대표에게 대표직 사퇴를 촉구하면서 탈당을 언급한 대목이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JP-이수성-이한동 3인 연대설을 눈여겨 보라고 귀뜸한 사실은 그런 맥락에서 심상치 않다. 이들 세 사람에게 6월18일은 매우 의미심장한 날이었다. 이 날 JP는 이수성 고문의 ‘아성’인 대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고문이 신한국당의 대선 후보가 됐으면 좋겠다. 그의 국민투표제는 자민련의 내각제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라며 노골적으로 지지 발언을 했는가 하면, 저녁에는 경선 운동을 위해 현지에 내려가 있던 이한동 고문을 마나 1시간 넘게 밀담을 나누었다.

  만약 세사람이 여야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연개 할 경우 정치권에는 그야말로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정가 일각에서는 세 사람의 물밑 연대가 앞으로 계속될 것이며, 최악의 경우 세 사람이 충청도 -TK-중부권 보수대연합을 내걸고 독자 후보를 내세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6월20일 광주에 함께 내려간 DJ와 JP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흘렀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와 관련해 친이수성계로 분류되는 정발협의 한 핵심 인사는, 만약 정발협이 이고문을 지지하지 않을 경우 예측 불허 상황이 올수도 있다고 조심스럽세 말했다.

  사실 JP가 야권 공조를 유지라면서도 여권 주자들에게 계속 손짓을 보내는 까닭은 보수대연합 전략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지역 기반이 겹치는 이대표에 대한 강한 반감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자민련이 만든 ‘정치 풋내기에 사상 검증 안된 오뉴월 수양버들. 이회창 대해부’라는 문건에는 JP가 이대표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최근 빠르게 떠오르고 있는 이인제 지사와 최병렬 의원은 당분간 독자적으로 반이회장 노선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36쪽 기사 참조). 텔레비전 토론 이후 지지도가 2위권으로 껑충 뛰어오른 이지사의 경우 홀로 뛰는 편이 이미지를 높이는 데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최의원은 여러 측면에서 이수성 고문과 손잡을 소지가 많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결국 현시점에서 보면, 이대표 진영을 제외한 나머지 주자 모두가 반이회창 연대 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그 내부에 이수서파와 이한동 - 박찬동- 김덕룡 3각 연대파, 이인제 독자파가 혼재하면서 합종연횡을 모색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들이 1차 경선이 끝난 이후에도 행동 통일을 할지는 의문이며, 그 이전에 일부 주자가 이대표 진영으로 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선 이대표 쪽이 추파를 던지고 있는 사람은 김덕룡 의원이다. 그는 지난 4월 말 일본에서 허주와 단 둘이 만나 대권 구도와 관련해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주고받은 뒤부터 물밑 접촉을 계속해 왔다. 김의원이 의도적으로 이대표를 맹렬히 비난하고 있는데도 이회창-김덕룡 막판 연대설이 여지껏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박찬종 고문도 이대표측의 영입 대상이다. 박고문이 아직은 요지부동이지만, 정발협이 다른 사람을 지지할 경우 가만 있을 리 만문하다. 박고문과 김의원은 이회창과 이수성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의외로 선택, 예를 들어 이대표 쪽으로 투항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이대표와 반이대표 진영이 팽팽할 때 이들의 거취는 대세를 결정적으로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이때 관건은 권력 분점 문제다.

  6월 초 이대표가 갑자기 권력 분점력을 들고 나왔던 것도 반이(反李) 진영 특히 반찬종 · 김덕룡 두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 성격이 강했다. 요컨대 당권이나 서울시장 가은 굵직한 자리를 보장할 테니 자기 쪽으로 오라는 손짓인 셈이다.

  반이회창 진영에게도 권력 분점 문제는 합종연횡의 중요한 연결 고리이다. 맨 먼저 권력 분점론을 주장해 합종연횡의 물꼬를 텄던 이홍구 고문은, 권력 분점의 구채적인 방안으로 국무총리에게 사실상 부분 조각권을 부여하는 ‘책인 총리제’와 분점 내용(대권과 당권, 국회의장, 서울시장)을 대국민 공약으로 발표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지만, 대통령 중심제에서 권력을 나누어 갖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우세하다. 권력은 일단 잡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학자들도 개헌 없이 권력 분산을 제도화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데이비드슨은 폭력이 힘의 균형을 가져온다는 측면에서 폭력의 논리를 미래 지향적이라고 해석했다. 치열한 경선 경쟁 끝나고 나면 평화 국면이 올지 모르겠지만, 현시점에서 볼 때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회창 대 반이회창 싸움이 6월의 때이른 무더위를 더욱 뜨겁게 만들고 있다.
崔 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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