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섬 동 디모르 ‘피의 투쟁’
  • 최영재 기자 ()
  • 승인 1997.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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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압제 맞서 독립운동 20여 년 … 평화적 해결도 적극 모색

동(東) 티모르. 인도네시아 군도 남동쪽 끝과 오스트레일리아 바로 위에 있는 섬나라. 제주도의 3배쯤 되는 면적에 인구는 70만명 정도. 인도네시아에게 식민 지배를 받는 동 티모르에서는 분리 독립 운동과 관련해 인권 유린과 유혈 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인도네시아 총선 하루 전인 5월28일 밤에도 이 섬에서 총격전이 4건 발생해 22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동 티모르 문제는 최근 유엔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6월19일 인도네시아와 포르투갈 외무장관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주재로 뉴욕 유엔본부에서 동 티모르으이 미래에 관해 논의를 시작했다. 동 티모르의 미래에 관해 논의를 시작했다. 동 티모르 문제가 국제 사회에 알려진 직접적인 계기는 96년 이 나라의 독립운동가인 카를로스 필리페 시네메스 벨로 카톨릭 주교와 호세 라모스 오르타가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으면서 부터이다. 두 사람이 노벨상을 받은 사실은, 과거 20년 동안 동티모르에서 일어난 인권 탄압을 모른 체 한 국제 사회로서는 충격이었다.

  동 티모르는 기나긴 식민 역사를 가진 비운의 섬나라이다. 이 나라는 같은 섬 서쪽을 차지하고 있는 서 티모르와는 다른 역사를 갖고 있다. 티모르 섬에 식민 역사가 시작된 것은 1520년 포르투갈인을 통해 이 섬이 유럽에 알려지면서 부터이다. 1613년 섬 서쪽을 네덜란드가 차지했다. 그 후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체결한 조약에 따라 티모르는 포르투갈령 동 티모르, 네덜란드령 서 티모르로 양분되어 20세기 중반까지 이르렀다. 그 뒤 네덜란드령이던 서 티모르는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자 인도네시아에 편입되었다. 포르투갈령이던 동 티모르는 포르투갈이 식민 정책을 포기한 75년에 가서야 독립했다.

  그러나 독립을 선언한 지 겨우 9일 만인 75년 12월7일, 인도네시아가 무력으로 동 티모르를 침공해 스물일곱번째 주로 편입했다. 동 티모르인들은 인도네시아군이 동 티모르 인구의 3분의 1인 20여만 명을 학살했다고 주장한다.

  국제 사회는 이 학살을 무시했다. 특히 당시 미국의 닉슨 행정부와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인도네시아의 만행을 묵인하고 오히려 후원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두 나라는 인도네시아의 동쪽 끝과 오스트레일리아 바로 위에 ‘태평양의 쿠바’가 탄생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따라서 강력한 반공 정권인 수하르토를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미국은 인도네시아가 동 티모르를 침공하기 바로 한달전에 베트남에서 후퇴했기 때문에 공산주의에 대해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한 술 더 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과거 동 티모르 사람들에게 크게 신세를 진 적이 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42년 오스트레일리아 군인들은 동 티모르에서 일본군과 교전했다. 일본군과의 전투가 불가피했던 오스트레일리아는 싸움터로 자국 땅 대신 인접한 동 티모르를 택한 것이다. 당시 동 티모르를 지배하던 포르투갈은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일본군은 이 섬을 우회해 오스트레일리아에 상륙하려고 했다. 티모르 사람들은 이 전투에서 오스트레일리아군을 도와 일본군과 싸우다 4만명이 죽었다. 그런데도 오스트레일리아는 75년 인도네시아군이 동 티모르 사람들을 학살할 때 외면했다.

  이웃 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시아 국가들은 자원 강국인 인도네시아와의 정치 · 경제 관계를 생각해 동 티모르 문제를 눈감아 왔다. 더구나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는 권력의 정통성이 약했던 터라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를 탓할 처지가 아니었다. 결국 이러저러한 이유로 동 티모르의 비극은 철저히 잊혔다.

“동 티모르는 태평양의 팔레스타인”
   96년 노벨상을 수상한 벨로 주교는 “동 티모르에 남아 있는 동 티모르인은 노예나 다름없다. 특히 젊은이들은 고통 받고 절망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오늘날 동 티모르가 태평양의 쿠바가 아니라 태평양의 팔레스타인이라고 말했다.

  국제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도 이 나라 사람들의 투쟁과 평화를 위한 노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동 티모르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부인 모베레 민족저항평의회(CNRM)가 내세우는 평화계획은 △1단계(1~2년):유엔 사무총장 주재로 동 티모르 대표가 참가한 가운데 인도네시아와 포르투갈 대표 회담으로 동 티모르 내부의 무장 활동을 종식한다. △2단계(5년):동 티모르인이 지역 기구를 통해 민주적으로 스스로를 통치하는 과도적인 자치 과정을 거친다. △3단계:주민 투표로 인도네시아와 통합 또는 완전 독립을 선택한다.

  유엔은 2000년을 ‘식민 시대를 완전히 종식하는 해’로 정했다. 현재까지 유엔이 인정하는 전세계의 식민지는 동 티모르를 포함해 모두 17개국이다. 동 티모르 문제는 식민지 문제와 관련해 국제 사회가 안고 있는 큰 과제이다.
崔寧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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