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는 클린턴 내각의 체면
  • 워싱턴·김승웅 특파원 ()
  • 승인 2006.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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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국방·재무·법무만 경험 다양… 애스핀 국방 비리 드러나 곤욕


 
  장관 14명 가운데 여성 장관이 셋, 거기에 흑인 장관 셋, 히스패닉계 장관 둘을 합하면 순수 남성 백인 장관은 겨우 여섯. 전체 장관의 절반에 못미치는 숫자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 클린턴이 완성한 미행정부 각료의 내용이다. 남의 나라 조각내용을 우리 잣대로 보는 것은 무리겠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 이·취임식이 코앞으로 닥치면서 미 언론도 그 점에 관심을 갖는다.

  여성 각료를 단순히 3명으로 계산해서 그렇지, 같은 각료급인 캐럴 브라우너 환경보호장관, 로라 타이슨 경제자문위원(신설)과 매들레인 올브라히트 유엔대사를 합하면 이번 조각에서 여성이 차지한 장관(급) 감투는 모두 여섯이 된다. 미 헌정 사상 유례없는 여성 장관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미국 장관 가운데 국무·재무·국방·법무 장관을 흔히 ‘빅4’라 부른다. 이 가운데 하나인 법무장관 자리를 대통령 당선자 부인 힐라리와 같은 여성 변호사 출신 조 베어드(40)가 맡은 것도 조금 어색하다. 베어드는 정권인수팀 사무총장으로 국무장관이 된 위런 크리스토퍼와 카터 대통령 시절 국무성에서 함께 일한 인연으로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사실은 힐라리의 눈에 들어 영부인 지분으로 법무장관이 됐다는 것이 ‘알려진 비밀’이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지금까지 각료 인선에 큰 몫을 차지해온 힐라리가 앞으로 각료회의에도 매번 얼굴을 나타낼 것으로 본다. 로버트 케네디가 법무장관에 임명된 사례 이후 대통령 친인척을 각료직에 앉힐 수 없다는 금지조항이 생겼지만, 힐라리가 각료가 아닌 옵서버나 대통령 영부인 자격으로 굳이 참석하겠다고 고집할 경우 이를 제지할 제도적 조처나 법적 조항이 없다.

  힐라리가 사전동의 형식으로 인선에 개입한 것이 법무장관 한 자리에 국한되지 않은 모양이다. 다른 2명의 여성 장관인 도나 슐레일러 보건장관과 해즐 올리어리 에너지장관은 물론, 유엔대사·환경보호장관·경제자문위원 등 여성 각료급 임명에 모두 ‘사전동의’했다고 한다.

  이번 인사는 성과 인종의 장벽을 과감히 깼다는 측면에서는 클린턴의 표현대로 가장 미국적인 조각일지 모르나, 미 언론은 클린턴에게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타임》은 조각 명단이 이리저리 새나갔다고 보도했다. 샌안토니오(텍사스주) 시장 출신이며 히스패닉계인 헨리 시스네로스 주택개발장관과 월남전 상이용사인 흑인 제시 브라운을 원호장관에 임명한다고 발표한 12월17일의 예도 그렇다. 이 두 장관의 명단을 자랑스럽게 발표하는 클린턴 당선자의 회견은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언론이 이틀 전에 명단을 입수해 미리 ‘지상 발령’을 냈기 때문이다.

  그날의 관심은 오히려 주말에 발표할 예정인 하원 군사위원장 애스핀 의원의 국방장관 임명 여부와 문교장관 자리에 내정한 것으로 알려져온 조네타 콜(애틀랜타 스펠만대학 총장) 대신에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리처드 릴리가 전격적으로 임명된 사연에 쏠렸다. 또 크리스마스 전야로 예정된 베어드 법무와 배비트 내무, 에스피 농무, 페냐 교통장관 임명발표는 이미 그날 아침 <워싱턴 포스트>가 그 내용을 크게 다뤘기 때문에 기자회견 자체가 유야무야됐다.

  <워싱턴 포스트>의 특종에 이어 <뉴욕 타임스>가 새로운 특종을 했다. 국방장관에 임명된 애스핀 하원 군사위원장이 미 국방성의 연방예산을 자기 선거구인 위스콘신주의 지방 사업에 전용토록 압력을 넣은 사실 등 몇가지 비리를 밝혀낸 것이다.

  애스핀은 크리스토퍼 국무(국무차관 출신)는 벤슨 재무(상원 재무위원장 출신)와 함께 클린턴 행정부 각료 가운데 대외적 지명도가 높은 인물이다. 신임각료 14명 가운데 클린턴이 자랑할 만한 인물이라고는 ‘빅4’의 4명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클린턴 새 정부의 새 얼굴은 대외적인 지명도가 떨어진다.

  좋게 해석하면 ‘새로운 술로 채운 새 부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클린턴이 워싱턴 정가나 국제정세에 통달한 인물임을 전제로 할 때나 통할 법한 ‘새 부대’ 이론이다. 클린턴은 행정경험이 주지사 경력 12년이 전부이므로 각료의 지명도가 형편없이 낮다는 것은 행정 수장으로서 앞으로 4년동안 국정을 이끌어가는 데 어려움이 따르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크리스토퍼와의 만남은 클린턴의 행운

  애스핀 국방의 발탁과 벤슨 재무의 기용은 미국 헌정제도의 고질인 대통령과 의회 간의 교착을 깨기 위한 조처로 이번 조각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애스핀 국방은 임명 첫날부터 그의 전력으로 클린턴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연초 신한국 건설의 견인차를 가동해야 하는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에게는 결코 먼 나라의 먼 얘기가 아닐 것이다.

  애스핀은 하원 국방위원장 시절인 6년전, 국방성 산하 조달 공장 하나를 출신구인 위스콘신주에 세우고 스스로 명예회장에 취임해 출신 지역의 고용창출과 지역발전에 기여한 사실이 있음이 밝혀졌다.

  ‘애스핀조달협회’(Aspin Procurement Institute)라 명명된 이 공장에 지급된 92년도 국방성 예산지출액은 22만5천달러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방성 조달청측은 같은 규모의 조달 공장이 43개 주에 있기 때문에 언론의 보도대로 애스핀조달협회가 애스핀의 재선을 돕는 선심 기관은 아니라고 해명한다.

  또 다른 비리는 M-1 탱크 부품 제조업체인 스코트 포지사(일리노이주 소재)가 애스핀의 선거자금을 대준 업체라는 사실이다. 애스핀은 이 회사가 더 많은 탱크를 수주할 수 있도록 국방성에 압력을 넣었는데,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이 회사의 위스콘신 공장 지배인인 미모의 샤론 사톤 여사와 ‘놀아났다’는 것이다.

  스코트 포지사측이나 애스핀의 측근은 이 회사와 미 국방성 사이의 계약은 두 사람이 데이트를 즐기기 훨씬 전의 일로 사생활과 구별해야 한다고 해명한다. 애스핀 신임 국방장관은 53세로 이혼한 독신남이다. 그는 개를 끌고 의원 사무실에 출근할 정도로 철저한 동물애호주의자다. 몇 년 전 그 개가 죽었을 때는 정치가십에 오르기까지 했다.

  문제는 애스핀 장관에 대해 클린턴 당선자가 어떤 조처를 취할지가 관심사다. 모종의 조처를 한다면 미국인의 변화욕구를 클린턴 당선자가 수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크리스토퍼 국무나 벤슨 재무의 발탁은 그들의 업적이나 지명도에서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크리스토퍼 국무와의 만남은 클린턴으로서는 다행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는 크리스토퍼가 과거 이란에 인질로 잡힌 미국인을 구출한 외교적 수완이나 정권인수팀을 성공적으로 지도한 것 때문만은 아니다. 공화당의 장기집권으로 고갈 상태에 빠진 민주당 두뇌 중에 크리스토퍼 같은 외교·행정 실무의 테크너크랫이 아직 건재함을 다행으로 여기는 시각 때문이다.

  경제각료팀이나 흑인 및 히스패닉계의 대거 입각에 관해 미 언론은 평가를 자제한다. 사안을 가볍게 봐서가 아니라 오히려 무겁게 보기 때문이다. 이들 각료의 행정능력은 클린턴 4년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신임 대통령을 적어도 6개월 정도 ‘봐주는’ 미국 언론의 미덕이 클린턴 각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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