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대, 고쳐야 할 운영법규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1992.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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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위 축조심사 · 전문인력 증원 … 징계강화, 입법기술 교육해야

 당선자들은 치열한 전투에서 이긴 개선 장군이 된 심정으로 국회의문을 들어선 것이다. 13대 국회의 만기가 5월29일이기 때문에 14대 국회의원의 임기는 5월30일부터 시작된다. 이날부터 30일이내, 즉 6월 28일까지 개원 국회가 열려야 한다.

 개원 국회는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소집한다. 최연장자의 사회로 진행되는 본회의에서는 우선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뽑는다. 개원식은 새로 뽑힌 의장의 사회로 진행된다. 교섭단체가 의장에게 등록함으로써 구성되면 의원들에 대한 각 상임위 배정이 뒤따른다. 상임위원장 선출에 따라 상임위가 구성되면 원 구성이 끝난다.

 야당에게도 상임위원장을 줄 것이냐의 문제는 개원 협상의 난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으리라 예상된다. 또 현행 법률은 올 6월말까지 자치단체장 선거를 치를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자치단체장 선거를 임기 후로 연기하다고 공표한바 있다. 선거를 연기하려면 법률을 바꿔야 한다. 이것은 개원국회의 커다란 쟁점으로서 여야의 심각한 격돌이 예상된다.

날치기 · 진치기 · 폭력 · 연기발언에다
무단결석 · 낮잠자기 등 후진성의 본보기
 왜 국회의 정상적인 운영은 어려운가. 초장부터 야당의 ‘진치기’와 여당의 ‘날치기’라는 구태의연한 작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국회가 비효율, 비생산적일 뿐 아니라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본회의에서 의원들의 질문이 너무 길고 연설식이다. 대정부 질문은 영국 등 내각책임제를 채택한 나라의 국회에만 있는데 그것도 서면 질문이 대부분이고 꼭 구두 답변을 들어야 할 때만 장관을 출석시킨다.

 반면 우리나라 대정부질의의 경우 의원들은 답변에 상관없이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기 일쑤다. 게다가 한가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묻는 것이 아니라 뜬 구름 잡는 식으로 온갖 것을 다 질문해 쟁점이 구체화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개의 경우 공방으로 끝나버린다. 이는 진상을 밝히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이 자기 과시나 인기를 의식한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행태는 국회발전에 저해요인으로 지적된다.

 본회의가 열리고 있는데 자리를 뜨거나 잠을 자는 행위도 의무태만으로 지적될 수 있다. 이밖에 국민의 조롱거리가 되고 의원 스스로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의사당 내의 욕설과 폭력은 텔레비전 생중계가 이뤄진다면 많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생중계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국회에서의 중계방송 등에 관한 규칙’으로 19대 국회에서 이미 마련됐다. 방송사의 요청이 있으면 무조건 생중계를 할 수 있도록 돼 잇다. 따라서 생중계를 하느냐 마느냐, 또 객관성을 유지하느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방송사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국회 관계자들은 말한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대부분은 폐회중에는 하는 일 없이 빈둥대다가 국회가 열리면 법석을 띠는 것처럼 국민의 눈에 비춰지기 십상이다. 이런 폐단을 없애고 국회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법으로 폐회중에도 상임위원회를 한달에 한번 의무적으로 열게 돼 있다. 또한 상설소위원회제도가 도입돼 언제라도 열 수 있다. 국회 운영에 관한 선진적 장치는 13대 국회에서 어느 정도 보완됐으나 운영이 제대로 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상임위원회 운영에도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법안처리 절차가 형식적이어서 밀도있는 심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제안설명만 듣고 소위원회에 넘겨버리는 것이 관행으로 돼있다. 제대로 하려면 상임위원회에서 축조심사를 해야 한다. 소위원회에서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잡담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관행도 고쳐져야 한다고 한 국회 간부는 말한다.

 박종흡 운영위원회 전문위원은 당선된 의원들이 의안 제출부터 통과까지 입법과정을 비롯한 각종 절차에 관해 일정 기간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것을 제안한다. 의원들이 입법 기술, 입법 추진 기술 등을 알아야 원활한 의정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제 전문가 일본국회 130명, 한국은 6명
 생산적인 국회를 위해 입법 조사 기능 강화와 함께 위원회마다 전문인력이 보강돼야 한다고 국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의원들은 자기 식솔들만 늘리려 할 뿐 입법 보조 기능 강화에는 신경을 안쓰는 실정이다. 현재 국회사무처에 소속된 직원은 3천명, 그중 순수 사무처 직원이 1천3백명, 도서관 직원이 2백명이고, 1천5백명이 의원 보좌관이나 비서관, 비서이다. 의원 한 사람이 5명의 공무원 식솔을 거느리는 셈이다. 의원 한 사람당 2명의 비서진을 준 일본의 경우와 비교된다.

 반면 일본 국회의 법제국이 1백30명의 요원을 확보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 국회의 법제담당관실 직원은 6명의 불과하다. 국회사무처의 법제 업무가 약하다는 사실과 이에 대한 의원들의 무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회의 파행적인 운영은 우리의 정치적 경험과 궤를 같이한다. 50년도 채 안된 우리 의정사는 오욕과 굴절의 역사였다. 비정상적인 정치환경 속에서 의사당은 날치기 통과와 폭력대결의 장소로 제공돼 왔다. 국회는 정당과 정부의 틈바구니 속에서 곤욕을 치를 뿐 활동영역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국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사실 정치와 정당의 문제다. 집권 연장을 위한 부정선거, 정당의 횡포 등은 파행적인 국회 운영을 가져왔고 국민으로 하여금 실망을 갖게끔 했다. 특히 5.16 유신, 5.17 등 세차례 국회의 물리적 해산은 국회의 위신을 땅에 나뒹굴게 했다. 이 세 차례에 걸친 국회 해산은 국회해산권이 헌법에 명기돼 있지 않았을 때 일어났다.

 5.16 쿠데타 이후에는 국회의원이 당적을 이탈하면 의원직을 상실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따라서 의원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기보다는 당의 명령에만 충실하게 됐다. 그후 조국 근대화의 기치 아래 국회는 정치와 행정의 예속화 과정을 걷는다. 정부는 국회를 상대역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정부의 방침을 능률적으로 처리해주면 되는 ‘시녀역’으로 격하시켰다. 어설픈 법안을 시간이 임박해 여당에게 주어 졸속 처리를 요구하기 다반사였다. 정치적 목적을 가진 법이 제안에서 통과까지 불과 4~5일 만에 처리되는 일이 많았다. 수산업법 중 개정법률안, 조세감면규제법 중 개정법률안 등은 국회 제출 2일 만에 통과됐다. 국회의원선거법 중 개정법률안, 선거관리위원회법 중 개정법률안 등은 하루 만에 통과되기도 했다. 심지어 소비자보호법안은 당일에 처리됐다.

 정치적 목적을 가진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날치기가 이뤄졌다. 날치기는 물론 다수의 횡포다. 그러나 특히 예산과 법안의 경우 가해자가 여당이고 피해자가 양당이라는 등식이 반드시 성립되지는 않는다고 국회 관계자들은 말한다. 경제과학위원회의 진재훈 전문위원은 “날치기의 가장 적극적인 피해자는 국민이다. 타협할 여지가 있는 부분까지 물리적 방해에 부딪쳐 날치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여당의 횡포도 문제지만 야당의 합리적인 주장을 하지 않을 때 날치기는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이는 야당 지도자로 있던 사람이 여당 지도자가 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정통성 없는 권력에 의해 정치판 자체가 인위적으로 잘못 짜여져 잇을 때 의원들에게만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진전문위원은 “일단 국회에 들어온 이상 의회주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회주의의 핵심은 이해 당사자들이 피를 흘린 만큼 견해와 이익이 상충되더라도 일단 대표를 의회라는 공식 장소에 보내 이들로 하여금 대화를 통해 대립관계를 해소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국회 관계법규를 아예 준수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의원들이 폭력 외에도 발언 시간과 순서, 출석할 의무에 등한하다는 것이 의정활동을 지켜본 국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적지 않은 의원은 자신이 법 위에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원의 면책, 불체포 특권은 국회내 질서를 잘 지킴을 전재로 한다. 관계 전문가들은 국회법규를 안 지키는 의원에 대해서는 공정한 징계와 처벌이 가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국회 위상에 관한 국민의 각별한 관심과 함께 국회 · 국회의원에 대한 비판과 감시가 강화돼야 한다고 그들은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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