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당 3천만원 땅에 80만원짜리 집 짓고…
  • 글 · 문정우 사진 · 김봉규 기자 ()
  • 승인 1992.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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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판잣집 유민…“더 이상 갈 곳 없다”

 하늘을 찌를 듯 위용을 뽐내며 서 있는 법원과 검찰 청사. 첨단 공법으로 한껏 멋을 내 지은 각양각색의 변호사 사무실 건물. 주차장마다 빈틈없이 서 있는 고급 승용차들. 하지만 그같은 초현대식 건물 사이 사이마다 차마 집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판자와 거적으로 간신히 비바람만 가리고 있는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곳.

 서울 서초구 서초 3동은 “서울은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곳이다”라는 얘기가 정말 실감나는 곳이다. 이곳에는 풍요와 극빈이 어우러져 극심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 와보면 누구나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 문제에 대해서 한번쯤은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곳 서초동 천마촌에 사는 주민들은 이같은 환경 속에서도 상대적 빈곤감을 느낄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것 같다. 그들은 ‘지옥’에서마저도 언제 쫓겨날지 알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이곳 서초동 천막촌에는 지난 3월9일 큰 불이 났다. 88년부터 벌써 여섯차례나 화재를 당했지만 이번의 피해는 심각했다. 검찰청사 밑에 살고 있는 1천3백여세대 중 절반에 가까운 6백여세대가 전소돼 대부분 젓가락 한짝도 건지지 못했다. 취약시간대인 새벽 2시에 일을 당했기 때문에 4명이나 불에 타 숨졌다. 졸지에 2천여명이 비 가릴 곳도 없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비통에 잠겨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언제 지주들이 들이닥쳐 불탄 자리에 울타리를 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불이 나자마자 말뚝부터 먼저 박았다. 호주머니를 털고 친지들에게 돈을 빌려 포크레인을 동원해 불탄 자리를 쓸어내고 다시 판잣집들을 짓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관할 구청과의 충돌도 있었다. 지난 17일 오전 서초구청 철거반이 들이닥쳐 신축 건물들을 부수려하자 주민들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부녀자들까지 나서 죽기살기로 구청철거반의 마을 진입을 몸으로 막았다. 주민들의 저항이 거세자 철거반들은 일단 물러갔으나 그들이 다시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주민들은 현재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태이다.

서울시 재개발 지역 철거민이 집단 이주
 서초동 꽃마을 자치회 회장인 한인선씨는 “우리도 남의 땅에서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이 불법인 줄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이곳이 아니면 이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청에서 기어이 집을 부수면 밤에 횃불이라도 켜고 다시 짓고 부수면 다시 짓고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말처럼 이들의 처지를 잘 대변하는 말은 아마도 없는 것 같다.

 불이 나자 이들은 당장 잠자리조차 구하기가 어려웠다. 집이 타버린 6백여세대 중 5백여세대는 이산가족이 돼 친지집으로 뿔뿔이 흩어지기도 하고 화를 면한 이웃에서 끼살이를 하고 있으나 나머지 1백여세대는 그나마도 어려워 거의 불탄 집 근처 골프연습장 가건물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건물이라고 해야 골프연습장이 문을 닫은 지 오래이기 때문에 문짝도 다 떨어져나가 콘크리트 벽과 지붕만 남아 있는 상태라서 이들은 노숙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3평도 안될 것 같은 가건물 한쪽방에서 아홉세대와 함께 열흘이 넘게 칼잠을 자고 있는 김정순씨(60 · 가명)는 “불이 나자 어렵게 장만한 세간이 재가 되고 있는 것보다도 이놈의 집이나마 못살게 되는 것이 아닌가 겁부터 먼저 더럭 나는 거예요. 아마 모두들 그랬을 거예요. 그러니 대부분 맨발에 속옷차림으로 뛰쳐나온 사람들이 먼저 집부터 지을 궁리를 했죠. 여기서 사는 사람들 아니면 그 심정 몰라요. ‘집없는 설움’이란 말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얘기했다.

 이들이 집을 짓고 있는 땅은 대부분 엄연히 임자가 따로 있는 사유지이다. 그러니 이들은 대명천지에 법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법의 권위를 상징하는 법원과 검찰청사 바로 코밑에서 말이다. 하지만 법을 어겨가며 평당 3천만원짜리 땅에 1채당 80만원짜리 집을 열심히 짓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럴만한 사연과 항변할 말이 충분히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81년만 해도 이곳은 습기가 많은 초지에 불과했다. 시내에 나가려면 30분이나 걸어나가야 버스를 탈 수 있는 ‘오지’였다. 당시만 해도 이곳은 정씨 씨족의 땅이었으나 강남 개발을 미리 감지한 현 지주들이 땅을 사들이면서 이곳은 꽃마을로 변했다. 지주들이 꽃을 기르는 사람들에게 도지세 정도의 임대료를 받고 땅을 빌려준 것이다.

 그러다 이곳에 천막촌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83년 서울시내 사당동 상계동 목동 등에서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부터였다. 재개발과 함께 전세 월세값이 폭등하자 갈 곳이 없어진 철거민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천막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에서 꽃을 기르던 임대인들은 처음에는 철거민들에 대한 동정심에서 땅 귀퉁이에 집을 짓도록 허락했으나 나중에 브로커들이 끼여들면서 집파는 데 재미를 붙여 한 채당 3백만~5백만원씩 받고 무더기로 집을 팔기에 이르렀다. 86년 법원과 검찰청사가 들어서면서부터 꽃을 기르던 사람들은 거의 다 빠져나가고 지금은 천막촌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현재 서초동 꽃마을 주민 중 더러는 사업이나 질병 등으로 가세가 기울어 이곳까지 흘러든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철거지역에서부터 밀리고 밀려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입주하게 된 사람들이다.

대명천지에 법 어기며 사는 사연이 있다.
 사당3동 철거지역에서 86년 이곳으로 이주해온 박복순씨(45 · 가명)는 “당시 월세를 살다가 70만원의 이주비를 받고 거리에 나서니 갈 곳이 없었어요. 마침 이곳은 월세부담이 없어서 빚까지 얻어 3백만원을 주고 들어왔지요. 악차같이 돈을 벌어 이곳에서 나갈 생각이었는데 아빠와 내가 둘이 열심히 노동일을 해도 빚 가리며 애들 학비대고 먹고 살기에도 벅차요. 여기서 나가라고 하면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했다.

 서초동 천막촌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집없이 떠도는 도시의 유민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자신들만의 책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중산층과 투기꾼들의 재산만 불려준 정부의 주택정책 때문에 자신들이 이 꼴이 됐다고 여기고 있다. 또 땅주인들이 땅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앉아서 수십억 수백억을 버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 사회와 지주들에 대해 거침없이 적개심을 보이고 있다.

 벌써 집을 두 번째나 태웠다는 주민 김인수씨(40 · 가명)는 “81년 당시 이곳의 땅값은 평당 1만2천원이었는데 지금은 3천만원을 호가한다고 합니다. 지주 중에는 법조계 인사와 사회 지도층 인사가 많이 끼여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들은 이곳이 개발될 줄 알고 땅을 산 것 아닙니까. 서민생활은 아랑곳 없이 개발이득을 독점하는 그들이 미워서도 그리고 그것을 용인하는 이 사회가 저주스러워서도 이곳에서 못나갑니다”라고 얘기했다.

 현재 서초지역에는 법원과 검찰청사 밖에 사는 2천5백여세대외에도 군부대 주변 5백세대 등 6곳에 걸쳐 모두 8천세대의 판잣집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 서울 근교 전체에는 국공유지와 사유지에 불법으로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모두 2만세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구당 식구수를 4명으로 따지면 서울 시내에는 모두 8만여명이나 되는 유민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거의 없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초구청의 한 관계자는 “국공유지 거주자들에게는 임대주택을 주고 있으나 사유지 거주자들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 공권력을 투입해 강제로 철거할 수도 있지만 상당한 무리가 따를 것이다. 지주들과 그들이 문제를 잘 해결하기를 바랄 뿐이다. 또, 그들 중에는 부동산투기를 목적으로 그곳에 이주해 억지를 쓰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고 얘기했다.

 주민들도 그들 중에 부동산 투기꾼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수긍을 한다. 하지만 정부가 그점을 강조하며 대책을 외면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정부가 조금이라도 성의가 있다면 투기꾼은 얼마든지 가려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주민 한해선씨(39 · 가명)는 “정부정책을 보면 한마디로 우리가 어느날 갑자기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행정서류상으로는 우리가 사는 지역에 존재하고 있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정부는 우리가 수년 동안 살아온 이 지역에서 주민등록조차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보상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아요. 사는 동안만이라도 사람 대접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얘기했다.

 실제로 이 지역 주민들은 행정당국이 거주지역에서 주민등록을 하는 것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다른 곳에 사는 친지집에 주민등록을 해놓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 지역 아이들은 상계동으로 사당동으로 오류동으로 뿔뿔이 찢어져 심하면 2시간이 넘게 차를 타고 학교에 다니고 있다.

 서강대 도시빈민연구소의 박병구씨는 “그동안의 도시재개발은 도시빈민들에게 최소한의 합법적인 생활 공간마저 빼앗아 버렸습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습니다. 정부는 이제라도 그동안의 주택정책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해결의 실마리가 풀립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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