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 3은 폭동 아닌 민중항쟁”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2.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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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제주민중항쟁연구회’ 10개대 6백75명 설문조사 결과

 70년을 전후로 해서 태어난 ‘풍요의 세대’ ‘콤플렉스가 없는 세대’인 대학생들은 44년 전 4월 제주도에서 일어난 현대사의 비극 4 · 3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대학생들의 제주 4 · 3 에 대한 인식을 알아본 설문조사 결과가 최근 나왔다.

 서울대 동아리연합회 소속 ‘제주민중항쟁연구회’ (회장 夫相一 · 해양학과 3년)가 지난해 11월1일부터 15일까지 서울대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경희대 한양대 중앙대 등 서울지역 10개 대학 6백75명을 대상(무작위 추출)으로 직접 면접한 이 조사는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5개 문항과 4 · 3에 대한 11개 질문 등 크게 두 부문으로 나뉘어져 있다.

88%가 “43사간을 들어보았다”고 답변
 “지난해 자료집 ≪제주민중항쟁연구보고≫를 배포하는 과정에서 특히 신입생들이 4 · 3에 대해 피상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번 설문조사를 계획했다”고 밝히는 부상일군은 “조사 결과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학우들이 4 · 3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제주 4 · 3사건에 대한 설문은 제주 4 · 3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한 5백91명(87.6%)을 대상으로 했는데, 이들은 사회과학서적(54%) 대자보(22.1%) 신문 잡지(12%) 텔레비전(1.3%) 등의 순으로 4 · 3을 접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응답자들의 약 88%가 4 · 3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지만 이 가운데 약 54%만이 4 · 3의 직접적인 발단인 47년의 3 · 1사건(3 · 1절 기념식을 마치고 시민들이 해산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발포, 사상자가 생겼다)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답하고 있어 3 · 1사건, 3 · 10총파업, 검거령, 입산등으로 이어지는 4 · 3의 ‘예열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생들은 4 · 3이 △5 · 10선거를 반대하고 민족해방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하여 (33.1%) △미군정의 실정과 경찰 · 서북청년회 등의 탄압에 항거하기 위하여(28.7%)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단선 단정 수립을 반대하기 위하여(15.4%)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반면 그간관변 · 학계에서 주장해온 북한지령설, 남로당 지시설 등은 둘 다 0.61%로 나타나 대학생 층에게는 설득력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원인을 이같이 파악하고 있는 탓에 응답자 대부분이 4 · 3의 성격을 제주민중항쟁(77.2%)으로 보고 있다.

 4 · 3은 47년 3 · 1절 사건 이후 미군정의 검거령과 이를 피하기 위한 입산이 되풀이되는 상황 속에서 48년 4월3일 제주도 남로당이 지서와 우익인사를 공격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육지에서 증파된 군경과 서북청년단 등 우익조직의 횡포로 인해 그 불길이 거세어졌다. 48년 10월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주민들은 토벌대와 빨치산 사이에서 참담한 세월을 겪어야 했다. 6 · 25 이후 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되기까지 약 7년6개월 동안 4 · 3은 계속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당시 제주 인구의 10%가 넘는 3만~4만명이 죽어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4 · 3은 아직 정확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88년 이전까지는 당시 피해자의 2세들도 알지 못할 정도로 4 · 3은 금기였다. 그간 문학작품과 학문적 접근 그리고 대중매체 등을 통해 간헐적으로 소개되어 왔고, 최근 MBC 텔레비전의 드라마 <여명이 눈동자>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번 조사에 응한 학생들은 4 · 3의 진상규명을 위해서 △미군정의 당시 자료 공개 요구(47.6%) △국회 내에서 특위 구성을 통한 진상규명(44.3%) △1차 자료 수집 · 정리(33.7%) △학술 탐구를 통한 진상규명(29.6%, 이상 복수 응답) 등이 절실하다고 답하고 있다.

 이 조사는 운동권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선거운동을 아르바이트로 삼는 등 요즘 대학생들의 의식과 행태에 견주어볼 때 그 신뢰성에 의구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4 · 3을 문학으로 형상화했던 한 작가는 “4 · 3에 대한 인지도가 매우 높아 조사에 응한 6백75명 대부분이 운동권 학생들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지만, 그러나 이 신뢰성 문제가 민족적 모순의 뿌리를 찾아보려는 순수한 열정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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