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물 터진 軍 관련 서적
  • 송준 기자 ()
  • 승인 1992.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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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등 문제 진단하고 ‘과학군대’로 탈바꿈 주장

 그간 공개적인 논의가 금기시돼온 군에 관한 책들이 줄지어 출간되고 있다. 지난해 ≪한반도의 군축과 사회복지≫(평화연구소 외 지음 한울 펴냄) ≪현대 국방조직 발전론≫(이선호 지음 정우당 펴냄) ≪한국의 방위비≫(현인택 지음 한울 펴냄) 등 주로 학문적으로 군조직 군축 군예산 문제에 접근한 책들이 탈냉전 해빙무드를 타고 조심스럽게 선을 보인 이래, 한국군의 문제점을 다양한 입장에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책들이 속속 등장한 것이다.

 지난 2월 출간된 ≪한국군 무엇이 문제인가≫(이선호 지음 팔복원 펴냄) ≪군축시대의 한국군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상하권 · 지만원 지음 진원 펴냄) ≪군축의 경제학≫(이형순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등의 책이 그것들이다. 특히 ≪한국군 무엇이…≫와 ≪군축시대의 한국군…≫ 등은 영관장교 출신 군사전문가가 펴낸 군 비판서적들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이다. 반면 ≪한국의 방위비≫ ≪군축의 경제학≫ 등은 이론적 · 학문적 분석 틀을 가지고 군비와 경제, 국제정세 등을 구명해낸 책들이어서 바야흐로 군 관련 서적이 이론 측면과 실질사례 측면에서 짜임새를 갖춰나가는 듯하다.

 이 책들은 군의 행정과 조직에서부터 군수 정책 방위산업 그리고 예산관리, 나아가 군사 문화에 이르기까지 국방과 관련한 모든 분야를 다루고 있다. 이 책들이 군에 던지는 비판은 대략 다음의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군이 기형적으로 비대해졌으며, 조직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예산이 방만하게 편성됨으로써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 등이다.

장교 출신 전문가의 ‘애정어린 비판서’
 육사 출신(22기) 예비역 육군대령 池萬元씨(49)가 내놓은 ≪70만 경영체 한국군 어디로 가야 하나≫(김영사)와 그 개정증보판 ≪군축시대의 한국군…≫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같은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예컨대 차세대전투기사업(KFP)은 조직의 비효율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에 속한다.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국가사업으로 꼽히는 차세대전투기사업이 시작된 해는 82년이었다. 정부는 89년말이 되어서야 미국 맥도널 더글러스社의 F/A-18기로 기종을 결정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재가가 끝나자 맥도널 더글러스社가 가격을 50% 인상해 90년 10월 국방부의 새 의사결정팀은 원점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해 91년 4월 제너럴 다이내믹스社의 F-16기로 기종을 바꿨다.

 8년여의 세월을 ‘입씨름으로’ 허송하는 동안 전력증강 효과가 지연된 것은 물론, 전투기의 단가는 두 기종 모두 당시에 비해 2배 50% 상승했다는 설명이다.

 지씨는 이밖에도 “비싼 장비는 무조건 좋은 것이며 그런 장비를 많이 사들일수록 전투력이 향상된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덧붙이면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이 군 관료의 비전문성에 있다고 분석한다. “지금의 군은 과학을 토대로 한 선진경영이 필요한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경영의 전문적 지식을 갖춘 엘리트들이 필요하다. 현재 군 행정업무량의 5%만이 지휘관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며 나머지 95%는 참모들의 책임회피용이거나 생색내기에 해당한다. 이는 현 참모부 규모가 지금의 5% 수준으로까지 축소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2000년대를 바라보는 군대개혁론’이라는 부제가 붙은 ≪한국군 무엇이 문제인가≫에서도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의 중복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저자인 李善浩 예비역 해병대령(57)은 심지어 “전투조직을 제외한 지원부서는 모두 전문화된 공무원으로 대체돼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처럼 국방 전문 공무원이 수십년간 한자리를 지키면서 전문성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특히 한국군의 육해공군 비율이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는 데 주목한다. “3면이 바다이며, 대부분의 자원을 수입해 쓰는 나라의 육해공군 비율이 85대 8대 7(미국은 7대 8대 6)이라는 건 말이 안된다”는 주장이다.

 이들 전직 군인들의 비판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군에 대한 애정이다. “군인다운 군인, 군대다운 군대”를 희망하는 이선호씨나 “군의 발전을 위한 우정어린 자극제가 되라고 책을 썼다”는 지만원씨가 공통적으로 바라는 것은 ‘군의 과학적 무장’, 즉 ‘과학군대’이다. 그것은 첨단과학 장비로 무장한 전투력, 고급교육을 받은 전문 군사요원, 불필요한 전달체계가 효율적으로 정비된 조직, 현대전에 걸맞게 개발된 병략운용 기법 등이 조화를 이룬 선진 국군이다. 그 비용은 추가로 책정되는 것이 아니라 몸집만 비대한 기존 군의 구조적 모순을 정비함으로써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이 군사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그 대안으로서 △군인의 수에 의존하는 ‘線방어 개념’을 버리고 첨단장비를 기초로 한 ‘거점방어 개념’을 도입할 것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 △비효율적인 스태프조직을 정비할 것 △군의민주화와 병행하여 더 많은 부분을 국민에게 알릴 것 등이 제시되었다. ≪한국의 방위비≫에서 체계적인 분석틀을 이용, 방위비문제를 정밀하게 정리한 玄仁澤씨(39)는 방위비의 구성 항목 가운데서 특히 연구개발비 부문을 지속적으로 늘려갈 것을 주장했다.

 고려대 李亨淳 교수(경제학)가 지은 ≪군축의 경제학≫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분석을 바탕으로 한국군의 질적 혁명에 대한 명분을 제공한다.

 이교수에 따르면 세계경제권이 블록화하는 추세를 타고, 일본은 동남아 일대를 무대로 ‘엔의 제국’을 꿈꾸고 있으며 그 힘의 토대로서 ‘원자력핵군’을 만들려 한다. 이를 견제하는 미국의 압력은 한국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며 중국은 ‘과학군대’로의 변신을 서두를 것이다. 그 틈바구니에서 통일을 이뤄내야 하는 우리로서는 군축회담에 임하는 한편 미 · 일 · 중 등 강대국의 힘을 막아낼 수 있는 군사력을 갖춰야 하는 이율배반적 숙제를 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조건을 만족시키는 해결책은 ‘과학군대의 실현’인 셈이다.

 그러나 이 책들을 통해 제기된 비판 및 대안과, 이를 받아들이는 군의 입장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다. 군의 개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국가적 이익과, 정책 결정권을 가진 이들의 이해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군사전문가는 “국민이 군의 비효율적 부분들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 그것이 곧 군에 주는 신선한 자극”일 것이라면서 위 책들이 그 선구적 역할을 맡은 셈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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