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풍비박산낸 광기의 복수극
  • 이세용 (영화평론가) ()
  • 승인 1992.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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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 피어

감독 : 틴 스콜세지
주연 : 로버트 드 니로.

 
케이프 피어, 우리말 뜻은 ‘공포스러운 ?’이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파헤친 존 맥도널드의 소설 ≪사형집행자≫를 각색한 작품으로 같은 소설의 두번째 영화이다.

 첫 번째는 1962년 리J톰슨이 감독하고 그레고리 펙 · 로버트 미첨 · 마틴 발삼이 출연했다. 30년이 지나 두 번째로 만들어진 이 영화에는 로버트 드 니로 · 닉 놀테 · 제시카 랭이 출연한다. 감독은 <택시 드라이버>의 마틴 스콜세지.

 성폭행범으로 14년형을 살고 풀려난 남자 맥스 케디(로버트 드 니로). 감옥에서 글을 배워 스스로를 변호할 만큼 유식해진 이 사나이가 자신을 보호해준 샘 보든(닉 놀테)앞에 나타난다.

 14년 전 샘은 맥스를 풀려나게 할 수도 있었지만 소녀를 성폭행한 맥스에겐 자유조차 누릴 권리가 없다고 생각해 침묵을 지켰었다. 옥중에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맥스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 집념을 불태운다.

 맥스가 출옥한 후 샘과 그의 아내(제시카 랭), 딸(줄리엣 루이스)이 단란하게 사는 행복한 집이 공포로 가득찬다. 이 광정이 아주 감각적으로 속도있게 그려진다. 전과자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변호사 일가. 광기어린 분노와 숨막히는 욕정이 뒤엉키며 화면은 팽팽하게 긴장된다. 치밀하게 계산된 구성과 섬세한 연출은 커튼을 닫는 소리, 자물쇠 채우는 소리에도 머리카락이 쭈뼛하게 만든다.

 정신병의 징후를 보이는 맥스의 위협에 공포를 느낀 변호사 샘은 경찰서장을 찾아가 호소하지만 속수무책이다. 맥스는 오히려 법을 이용하여 법망을 빠져나가고, 샘의 약점을 물고늘어지며 그를 파멸시키려든다. 다급해진 샘은 해결사를 고용하지만 맥스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몰리다 못한 샘은 딸과 아내를 미끼로 맥스를 유인, 피비린내나는 승부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서 악마 같은 맥스는 처절하게 최후를 맞는다. 하지만 온 몸에 징그러운 문신을 새긴 이 악당은 법과 양심의 상징인 저울을 목걸이처럼 걸고 다닌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케이프 피어>의 두 남자를 놓고 선과 악으로 편가르기는 쉽지 않다. 변호사인 샘 보든 역시 법률 · 도덕적으로 흠이 많은 인물인 까닭이다.

 선과 악이 뒤섞여 돌아가는 세상과 인간을 단순화시키지 않으려는 연출자는 선악의 명쾌한 구분을 유보한다. 이런 설정 혹은 해석은 변호가 천국인 미국, 혼외정사에 시달리는 미국 사회의 고민을 이중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주인공 샘의 부도덕성은 ‘샘 가족’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관객의 소박한 감정을 샘의 응원에까지 연장시키지 못한다.

 <케이프 피어>는 이런 대목에서 스릴러의 미덕을 깨뜨리고 관객의 기대를 배반한다. 무사하면 좋고 설령 죽는다 해도 그다지 애통하지 않을 샘의 위기감에 동참할 사람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뛰어난 음향이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마 이 영화의 ‘놀람’ 효과는 반감됐을 것이다. 로버트 드 니로와 줄리엣 루이스의 연기가 기막힌 공포의 애정극 <케이프 피어>는 공포를 과다하게 복용하고 있다. 그래서 관객은 공포에 떨다가 그만 지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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