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한 ‘무릎꿇기 외교’ 일본 우익 “참을 수 없다”
  • 도쿄 ·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2.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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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마루 저격 … ‘반공 · 반한’ 두 얼굴 드러내

 지난 3월20일 오후 6시경. 2천명의 청중이 가득 찬 일본 도치기현의 한 연설회장에 세발의 총성이 울렸다. 24세의 우익 청년이 노린 표적은 단상의 가네마루 신(金丸 信) 자민당 부총재.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총알은 모두 표적을 빗나갔다.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 와타나베 히로시는 “가네마루는 國賊 이기 때문에 저격했다”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북 · 일 수교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가네마루가 일본의 국익을 저해하는 ‘매국노’라는 것이 범인의 주장이다.

 90년 9월 ‘3당 공동선언’을 발표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가네마루는 김일성 주석과 두차례 단독 대좌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김주석과는 첫 대면이지만 처음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다. 회담이 성사돼 감격하고 있다”고 허리를 굽힌 뒤 “우리측이 제안한 것들을 모두 이해해줘 울고싶은 기분이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또 “정치생명을 걸고 사죄와 배상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김주석에게 약속했다. 이어 그는 식민지통치 36년뿐만 아니라 “전후 45년 동안 조선인민이 받아온 손실에 대해서도 일본은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는 조항을 ‘3당 공동선언문’에 합의해주었다. 일본 우익이 이러한 가네마루의 ‘방북 행적’을 문제삼은 것은 두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그의 월권행위. 방북당시 자민당의 일개 파벌(다케시타파) 회장에 불과한 그가 어떤 자격으로 ‘3당 공동선언’에 합의했느냐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전후 45년간에 대한 보상 약속. 전후 45년간 각종 테러행위를 통해 적대행위를 저질러 온 것은 북한인데 일본이 왜 ‘전후 보상’까지 책임져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방북 이후 일본 우익으로부터 북한에 대한 이른바 ‘도게좌(土下座 : 무릎꿇기) 외교‘ 즉 ’저자세 외교‘를 펼친다는 공격을 줄기차게 받아왔다.

 일본 정가에 큰 충격을 던진 이번 사건의 범인은 이른바 ‘행동 우익’. 천황제 국가에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본류 우익’에 비해 이들은 반공을 내걸고 가두선전차를 이용해 활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 공안당국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규모는 9백80단체 12만명에 이른다. 그중 지금도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는 것은 약 2만3천명. 개중에는 폭력단이 법망을 피하기 위해 우익단체로 변신하기도 하는데 그 수는 약 4천명 정도로 집계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 우익의 ‘두개의 얼굴’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아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이들이 반공을 외칠 때는 친한 성향을 보이다가도 사죄문제 등이 부상하면 가장 반한적 태도를 보이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14일 히로시마시 평화기념공원 근처에서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방화사건이 일어났다. 아직 범인은 잡히지 않았지만 이른바 ‘행동 우익’의 범행임에 틀림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또한 정신대문제에 대한 사죄와 보상요구가 방화 이유라는 것이 대다수의 추측이다. 90년 5월 일왕의 사죄발언을 둘러싸고 한 · 일간에 마찰이 일고 있을 때 역시 이 위령비 방화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런 추측이 무성한 것이다.

 가네마루의 방북행적에 대한 일본 우익의 공격 즉 ‘도계좌 외교’ 비난이 미야자와 방한 이후에는 ‘사죄 외교’ 비난으로 집중됐다는 점에서도 일본 우익이 ‘두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음이 증명된다.

 이들의 중심은 ‘본류 우익’쪽에 가까운 이른바 ‘사상 우익’. 이들은 지난 1월 미야자와 방한 이후 일부 언론을 통해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언론의 반일 대합창이 한국을 혐오하는 嫌韓감정을 만연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일본이 사죄하면 할수록 한 · 일 관계는 오히려 악화된다는 논리를 폈다.

 이러한 반한공격을 퍼부었던 대부분의 필자는 한국을 비교적 소상하게 알고 있는 지한파 그룹에 속한 일본인들이며 또한 가네마루의 ‘도게좌 외교’를 철저히 비난해온 사람들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 가네마루 피격사건은 우리에게 적지않은 시사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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