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요금, 매년 ‘시나브로’ 올린다
  • 장영희 기자 ()
  • 승인 2006.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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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원칙·억누르기·기습 인상’ 정책 대수술… 물가 악영향 최소화


 

  한국인의 일상은 피곤으로 찌든 생활이다. 언제부터인가 평일에도 기차 승차권을 구하기 힘들어졌다. 혼잡이 극심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해야 한다. 택시를 타려 하면 합승과 승차거부를 당하기 일쑤며 불결한 버스도 한참 기다려야 온다. 이처럼 공공서비스의 질이 형편없어 인내심을 강요당하는 생활을 한다.

  공공서비스의 질이 불량하다면 공공요금 수준이 낮은 탓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공공서비스의 질과 공공요금 수준은 동전의 앞 뒤 관계다. 공공요금은 전기 통신 철도 상하수도 등 국가나 공익기업이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사용대가다. 자잘한 수수료까지 포함하면 공공요금 수는 4백여개에 달한다. 정부는 87년부터 공공요금을 억눌러왔다. 억누른 이유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것이다. 공공요금 억제는 언제나 물가정책의 1순위에 놓였다. 대부분의 공공요금이 동결됐다. 91년부터 일부 공공요금이 인상돼 다소 숨통이 트이는가 했지만 여전히 원가에 턱없이 미달된다는 것이 공공서비스 생산자들의 주장이다. 경영악화로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는 일은 꿈도 못꾼다는 것이다.

  공공요금 조정은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어느 나라 정부나 통제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물가를 잡기 위해 지나치게 공공요금을 볼모로 삼았다. 공공요금을 누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는 하다. 공공요금이 소비자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나 된다. 공공요금이 10% 오르면 소비자물가가 1.6%포인트 올라간다. 공공요금이 오르면 개인 서비스요금 등 다른 부문의 가격이 들썩거리니 그 큰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정부는 공공요금 억제로 물가를 잡는 데 성공했지만 그 반작용으로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폐해는 우선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만큼 수입이 들어오지 않아 공공서비스 생산기업은 적자에 허덕인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재정에서 메워주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적자를 보전하는 일은 수익자부담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또 공공요금은 몇 년 억누르면 일시에 폭발하기 마련이다. 더 이상 압력을 견딜 수 없을 때 정부는 기습 인상이라는 파행적 방법을 동원한다. 그것도 연말이나 연초에 전격적으로 감행해 가계에 더 깊은 주름살이 생기게 한다. 91년 공공요금 인상률은 10%나 돼 소비자물가 상승률(9.3%)에 1.5%포인트 반영됐다. 매년 인상요인이 발생할 때 적절히 분산했으면 91년에 물가가 그렇게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실패해 오히려 물가에 악영향을 준 것이다.

  93년에는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공공요금이 줄줄이 인상될 예정이다. 버스업계는 정부가 요금인상을 허용하지 않으면 ‘불법’인상을 강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요금인상 없이는 최악의 경영부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영부실은 버스업계 뿐 아니라 대부분의 기관이 심각한 지경이다. 정부가 직접 제공하는 우편서비스 요금은 다른 공공서비스에 비해 더 억제돼왔다. 87~91년간 소비자물가는 43% 올랐지만 우편요금은 14% 인상에 그쳤다. 91년 우정사업 적자는 1천억원이다. 철도청에서 운영하는 철도서비스의 운영수입도 인건비·동력비 등 운영경비에 못미친다. 85년부터 동결돼온 철도요금은 91년에 12.3%, 92년에 9.8% 인상됐지만 아직도 적정원가의 72% 수준이다. 26개 노선 중 경부선을 제외한 25개 노선이 적자다. 정부투자기관인 지하철공사에서 경영하는 지하철의 경우, 운임수입이 운용경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형편없다. 서울지하철이 56%, 부산지하철이 33%에 불과하다. 지방자치단체가 관장하는 상수도요금은 수입이 원가의 82%를 밑돈다. 92년 상수도특별회계 결손은 1천4백억원이다.

 

‘수익자부담원칙’에 대한 거부감 버려야

  정부가 재정에서 적자를 메워주는 부문의 공공요금은 처지가 좋은 편이다. 택시·버스 등 민간기업이 경영하는 공공서비스는 적자를 보전할 방법이 없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전혀 지원을 해주지 않으면서 요금마저 인상해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5백71개 버스업체의 부채는 1조6백억원에 달한다. 버스 한 대가 빚 3천1백만원씩 진 셈이다.

  잘못된 공공요금 정책은 가격체계의 왜곡도 불렀다. 대표적인 것은 전화요금과 전력요금이다. 전화요금은 시내통화료 원가보상률이 가입은 68%, 공중은 36%에 그치지만 시외통화료는 원가보상률이 83~2백13%에 달한다. 한국통신이 91년에 4천8백억원 흑자를 낸 것은 시외통화료를 원가보다 많이 거둬들인 탓이 크다. 전력요금도 원가보상률이 50%(농사용)에서 1백32%(업무용)까지 들쭉날쭉이다. 한국전력공사는 91년 7천2백억원의 이익을 냈는데 자영업자와 기업으로부터 지나친 폭리를 취한다는 반발을 샀다.

  공공요금은 서민의 부담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가능하면 낮은 수준에 머무르는 게 좋다. 그러나 지나치게 공공성을 중시해 기업성을 무시하면 반작용이 생긴다. 공공요금 정책은 상반된 논리를 조화해야 한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정부는 이 틈에서 고민한다.

  공공요금 결정제도 연구자인 명지대 정세욱 부총장(행정학)은 “공공성과 기업성을 모두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원칙 설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부총장은 서비스원가주의를 기본원칙으로 하고 서비스의 내용에 따라 서비스가치주의·고객부담능력주의·공정보수주의 등을 적절히 혼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생산비용만큼 수입이 보장되게(서비스원가주의) 요금수준을 현실화하되 저소득층이 주대상인 공공서비스는 요금을 낮게 책정하는(고객부담능력주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정지원은 투자비와 저소득층 지원에 한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공요금에 대한 지나친 규제는 풀되 상대적으로 통제가 느슨한 개인서비스요금은 적절하게 관리해야 물가를 잡고 공공요금 정책도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한켠에서는 요금을 자율화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규제로 인한 폐해가 두드러지니 아예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 박우규 연구위원은 “요금수준은 현실화해야 하지만 요금자율화는 빠르다. 이보다 공익기업의 경영합리화를 선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공공요금은 다른 나라 도시에 비해 싼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활수준(1인당 국민총생산)을 고려할 때는 결코 싼 것이 아니다. 이는 공익기업의 방만한 경영과 관계가 있다. 공공서비스는 정부에서 직영하거나 정부투자기관에서 생산하는데, 민간기업에 비해 경영능력이 떨어진다. 조직 자체에 ‘비계’가 많아 생산성이 낮다. 인상요인이 발생하면 우선 경영합리화를 통해 자체 흡수토록 해야 하는데 공익기업은 여기에 태만하다. 구성원 누구도 허리띠를 졸라매려 하지 않는다. 경제기획원 김선옥 물가정책국장은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제도를 내실있게 추진하고 사무자동화, 인력의 적정한 배치 등으로 경영을 개선하도록 유도해 인상요인을 최대한 자체 흡수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인상요인이 발생할 때마다 매년 소폭씩 조정하는 것을 정례화할 방침이다. 인상시기도 연간 고르게 분산해 개인서비스요금 등 다른 물가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무원칙·억누르기·기습 인상으로 표현되는 공공요금 정책은 전면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공익기업(공공서비스 생산자)은 요금인상에 앞서 경영합리화를 통해 비용을 낮춰야하며 국민(서비스 이용자)도 수익자부담원칙에 거부감을 가지지 말아야 공공요금 문제가 합리적으로 풀릴 것이다. 헝크러진 공공요금 체계를 바로잡는 일은 올해 해결해야 할 첫 과제다. 공공요금의 ‘줄줄이 인상 대기 상태’를 보는 국민의 눈은 불안하다. 잘못된 정책의 결과를 한꺼번에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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