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항공기 떨어뜨린다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7.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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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사고 대부분 조종사 · 관제사 · 정비사 탓···기체 결함은 15% 가량



 무려 2백 27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는 항공기 대형 참사의 교과서적인 예로 기록될 것 같다. 사고원인부터가 그렇다. 영어에 능숙하고 비행 시간 8천 7백시간을 자랑하는 베테랑 조종사 백용철 기장(45)은 왜 공항 8.9km 앞에 펼쳐진 밀림에 비행기를 내렸을까. 착륙 지점을 앞두고 정상 고도(7백60m)보다 훨씬 낮게 비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고 초기에는 미국령 괌 아가냐 공항의 착륙유도장치 고장이 원인으로 꼽혔다. 비행기는 3°라는 일정한 활공각(glind slope)을 유지하며 착륙해야 하는데, 공항 관제탑이 이를 유도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치의 도움 없이도 착륙하는데 큰 문제가 없으며, 공항에서 유도장치가 고장 났음을 사전에 알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군용 비행장 관제 업무를 담당하는 한 전투기 조종사의 말을 들어보자. “숙련된 조종사는 대부분 현재 고도와 강하율을 따져 수동으로도 별 어려움 없이 착륙할 수 있다. 고도계가 고장나지 않는 한 잘못될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조종사는 첨단 기계보다 육감을 더 믿는다?
그렇다면 공역(관할 영역) 내로 들어올 경우는 비행기 착륙 유도에 관해 전권을 가지는 공항 관제 요원들이 결정적인 실수를 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또 당시 비구름이 관제사와 조종사의 업무 수행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대한항공 보잉 747기에는 비정상적으로 저공 비행해 지상에 충돌할 가능성이 생길 경우, 이를 경고해주는 지상근접경보기(GPWS)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 기계가 제대로 작동했을까. 의문은 꼬리를 문다.

대형 항공기 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일이 대개 이런 식이다. 딱부러지는 원인을 쉽사리 찾아낼 수 없는 것이다. 대형 사고는 대부분 여러 원인이 복합으로 혹은 잇달아 일어나면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블랙박스가 모든 것을 풀어 주리라고 믿지만, 추론에 필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부 기구가 주체가 되어 때로 1년을 넘기기도 하는 원인 조사 작업은, 이번 사고처럼 국제적인 현안으로 떠올랐을 때 지극히 정치적인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다.

운항 기술이 첨단화함에 따라 대형 민항기 조종사들이 할 일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기내 조종실을 들여다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온갖 첨단 장치로 가득 차 있다. 이런 기계의 도움으로 조종사들은 긴장해야 하는 이착륙 순간을 제외하면 잠을 청하거나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자동 조종 장치로 정속(定速) 비행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형 항공기 참사는 끊이지 않는다. 국제민강항공기구(ICAO)가 발표한 항공 안전에 관한 통계를 보면, 지난해 정기 노선에 취항한 대형 민항기 사고는 23건, 사망자는 1천1백35명에 이른다. 90년대 들어 사고 건수는 약간 줄었지만, 사망자 수는 꾸준히 느는 추세다.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 이후 3~4년을 주기로 대형 참사가 거듭 되고 있다.

항공 업계는 항공편이 여전히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라고 말한다. 항공편 이용자는 전세계적으로 1백80만명 가운데 1명 꼴로 죽는데, 이는 다른 교통 수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전한 수준이다. 사고가 잦은 편에 속하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뇌리에 ‘비행기=죽음의 덫’이라는 생각이 박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심리적 측면에서 사고가 났다 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항공 운송 수요가 급증하는 것도 한 요인이 될 수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의 전망에 따르면, 85년부터 10년 간 항공편 수요는 비행기 출발 기준으로는 30%, 비행 거리 기준으로는 50%나 늘어났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항공편 수요는 특히 폭발적으로 증가해, 경쟁 체제를 도입한 86년 아래 해마다 12%씩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사고가 나는 근본 원인으로는 ‘불완전한 사람’이 꼽힌다. 첨단 장비가 위험 상황을 경고할 수는 있지만, 숙력된 조종사들은 기계보다는 자신의 육감을 더 믿는다. 대한항공 소속 조종사 출신으로 정년 퇴임한 한 인사는 “바퀴가 땅에 닿거나 뜨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기장 자신의 판단에 따라 기체를 통제해야 하는데, 이럴 때는 베테랑 조종사도 긴장하기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게다가 대형 비행기는 자동차를 비롯한 다른 교통 수단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민감한 기계다. “착륙 때 조종사들은 이번에 문제가 된 할공각말고도 방위각(azimuth)을 잘 통제해야 한다. 잘못되면 비행기가 좁은 활주로를 벗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기어가 부러지게 된고, 기체가 성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앞서의 퇴임 조종사가 한말이다.

영어 서툴러 대형 참사 부르기도
4년 전 대구 공항에서 벌어졌던 동체 착륙 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당시 기장과 부기장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리를 바꿔 타고 있었는데, 착륙 시점에서 랜딩 기어 내리는 것을 잊어 버렸다. 이들은 회항하라는 관제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착륙하다가 대형 참사를 빚을 뻔했다, 당시 기내 조종실에는 랜딩 기어를 내리지 않았다는 경고 표시가 깜빡거렸는데, 조종사들은 계기가 고장난 것으로 보고 아예 계기판의 휴즈를 뽑아버렸다. 이처럼 항공기 사고의 대부분은 사람 때문에 생겨난다.

그 가운데서도 조종사의 잘못이 가장 많은 원인을 차지한다. 항공기 사고가 가장 많았던 87년에 93건의 사고 원인을 광범위하게 조사한 미국 연방 교통안전위원회(NTSB) 자료에 따르면, 조종사의 실수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랜딩 기어를 내리지 않는 것과 같은 기초적인 운항 절차를 소홀히하는 경우(33%)다. 조종사나 승무원들이 크로스 체크를 하지 않거나(26%) 우기 상황에서 적절히 대응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9%).

반면 관제사가 실수할 수도 있다. 이번 사고가 일어난 괌 아가냐 공상은 평소 조종사들로부터 관제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불만을 만ㅅ이 받던 곳이다. 극히 드문 경우이기는 하나, 정비사가 항공기 부품을 제대로 정비하지 않거나 기체에 균열이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 할 수도 있다.

첨단 계기 비행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사람과 사람간의 의사 소통이 줄어들기는커녕 갈수록 중요해진다는 사실이다. 김칠년 교수(한국항공대학·운항학과)는 “첨단 장치를 이용한 운항이라고는 해도 그 결과 가운데 일부는 조종사와 관제사, 조종사와 조종사 간에 구두로 전달된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관제사가 5천 피트를 3천 피트라고 말한다거나, 무리한 비행 일정을 소화하느라고 주의가 산만해진 조종사가 관제사의 지시를 잘못 알아들을 때도 사고가 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모두 괌 아가냐 공항에서처럼 착륙유고장치가 고장나 있을 때 얘기다.

영어에 익숙지 않은 아시아권 민간 항공기의 사고가 유독 많은 것을 의사 소통 문제와 연결해 보는 시각도 있다. 항공기에서의 의사 소통은 영어로 이루어지는데, 영어가 서투른 경우 대형 참사를 빚을 수도 있다, 항공 전문가들에 따르면, 언어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끼리도 관제사와 조종사는 영어로 교신해야 하는데 간혹 조종사들이 못알아 듣는 경우가 있다. 조종사가 랜딩 기어를 내리지 않아 상황이 다급해지면 우리 말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야! 맨발이야, 맨발!” 박춘배 교수(인하공전·항공운항과)의 말이다.

게다가 비행기는 백만 개가 넘는 부품으로 이루어진 정밀 기계다. 신형 민항기들이 점점 더 복잡한 운항 장치들을 채택함에 따라, 사소한 부품상의 결함도 결정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 볼트 하나가 파열되어도 비행기는 곧바로 추락할 수 있다. 탑재 정비가 문제가 되어 잘못된 경보가 울리는 일도 많다. 첨단 운항 장치의 도움으로 그 비율이 상당히 줄어들기는 했지만, 난기류나 뇌우 같은 자연 재해로 인한 추락 사고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상대적으로 높은 사고율을 보이는 군내 민항기 업계의 문제는 우리 업계의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조종사 양성에 활용되는 자료는 50년대 이후 미국에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연구해서 만든 것이다. 박춘배 교수는 “서양인과 다른 사고 방식과 삼리 상태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다른 비상 사태 대처 요령과 행동 방식이 있을 텐데, 우리는 아직 이를 연구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사고 직후 기장과 부기장 사이의 수직적 관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일부 외신보도가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닌 셈이다. 이런 분위기는 조종실 내의 의사 소통을 해치는 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잇단 국내 민항기 사고의 원인은 근복적으로 적자에 허덕이는 항공 업계 탓이 크다(대한항공도 자난해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앞서의 군용 비행장 관제요원은 “전투기도 추락하지만, 이착륙 때는 거의 사고가 나지 않는 이유를 아느냐?”라고 반문한다. 물론 전투기는 작고, 군용 공황 활주로가 민간 분야보다 여우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전투기 조종사들은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기 때문에 이착륙 때 사고가 나지 않는다. 반면 상업성에 지배를 받는 민간 항공기 조종사들은 규정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고 원인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민항기 회사와 조종사의 안전 불감증이 원인 중 하나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또한 이번 사고의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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