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 의원 빈 자리, 사연 많더라
  • 나권일 기자 ()
  • 승인 1997.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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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 수련회’ 일정 꼬여 21명 대참변 … 불참자들 더욱 침통



 지난 8월7일 광주시 대인동 서강빌딩 7층에 자리잡은 국민회의 광주 동구 지구당 사무실. 고인이 된 시기하 의원과 부인 김정숙씨, 심우인 광주 동구의회 의장 등 21명의 영정이 나란히 놓인 임시 분향소에는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다.

맨 처음 분향한 신의원의 맏형 신대규씨는 “시신이라도 수습할 수 있어야 할 텐데···”라며 말은 잇지 못했다. 신의원의 노모인 이묘현씨(93)는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몸져 누웠다고 했다. 국민회의 이종찬부총재를 비롯해 이길재·정동채·윤철상 등 동료 의원들도 이날 오후 분향소를 찾아 유가족과 당원들을 위로했다.

분향소가 설치된 7일부터 이틀 동안 동구 지구당을 찾은 조문객은 1천5백여 명. 지구당사에는 강계 유력 인사들이 보낸 조화가 입구부터 분향소까지 늘어서 광주 출신 중견 정치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동구 지구당 사고수습대책위’ 조수웅 위원장은 국회장을 치른 후 신의원 부부의 시신을 함평군 나산면에 있는 선영에 안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호남 정치 1번지’로 알려진 광주 동구의 국민회의 당직자들은 하루아침에 줄초상이 난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 망연자실했다. 광주 지역 최다선인 4선에다 원내총무까지 지낸 신의원의 죽음이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특히 당초 수련회에 참가하기로 했다가 개인 사정으로 괌 여행을 포기했던 ‘살아 안믕 자들’의 얼굴은 더욱 침통했다. 이번 사고로 동구 지구당은 여름 수련회를 떠난 24명 가운데 무려 21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사망자 가운데 지구당의 고원준·강원식 부위원장, 심우인 상무위원회 의장, 조진형 기획실장, 이남수 환경특위위원장, 곽재성 소비자보호특위 위원장, 김주배 정책실장 등은 모두 지구당의 핵심 당직자이다. 광주 지구당은 매년 여름이면 당원의 화합과 결속을 위해 수련회를 다녀오곤 했다. 지난해 8월에도 신의원과 당원 30여 명이 중국을 다녀왔다.

조상 제사 모시느라 재앙 면하기도
올해는 일이 잘못되려고 그랬는지 처음부터 일정이 꼬이기 시작했다.

당초 올해 수련회 일정은 7월23일부터 4박5일. 그러나 임시국회가 30일 끝나게 되어 있어 신의원의 참석을 위해 8월3일로 출발 날짜를 바꾸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행사측이 표를 구하기 어렵다고해 결국 5일 밤 출발하는 운명의 KAL 801편을 택하게 된 것이다.

사망자가 많은 만큼 생사가 엇갈린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먼저 조상과 부모 덕을 톡톡히 본 경우. 대책위원장인 조수웅 광주시의원은 지난해부터 음력 7월에 조부모의 기일이 연이어 닥치는 바람에 번번이 수련회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그 덕으로 이번에 화를 면했다, 신이섭 시의원은 당초 수련회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모친이 손자들을 위해 삼계탕을 끓이다 온몸에 화상을 입는 바람에 괌 연수를 포기했다. 그는 “동료들과 동고동락해야 하는데 개인 사장으로 화를 면한 죄책감에 마음이 아프다”라고 아타까워했다.

다른 일정이 겹쳐 화를 면한 경우도 있다. 건축업에 종사하는 동구의회 신채성 의원은 사업상 불가피한 사정이 생겨 해외 연수를 포기했다. 사망한 동구의회 강원식 의원의 부인 임옥숙씨(약사)도 원래는 부부 동반으로 괌 여행을 갈 예정이었으나 때마침 제주도에서 열린 약사 수련회에 참가 하느라 화를 면했다.

애도 분위기 속 보궐선거 후보 거론
그러나 악재가 겹친 경우도 있다. 신의원의 비서관 출신으로 동구의회 최연소 의원인 조진형씨(36)는 출발 이틀 전인 8월3일 지리산 부근에서 운전하고 가던 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가벼운 상처만 입어 연수단에 합류했다가 끝내 변을 당했다.

광주 동구의회는 특히 이번 사고로 탁승한 의원6명 가운데 5명을 한꺼번에 잃었다. 유일한 생존자는 현재 한강성심병원에 입원중인 신 현 의원. 한 당직자는 “신의원이 연수 중에 공휴일이 끼어 있어 갈까말까를 망설일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천인데다 워낙 체격이 건장해 살아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망자들에 대한 애도 속에 보궐 선거 후보도 조심스레 거론되고 있다. 신의원이 사망해 자리가 빈 국회 의석은 선거법에 따라 오는 11월 이전에 보선이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영일 전중앙당 홍보위원장을 비롯해 정상용 전 의원, 윤강옥 광주시지부 전 사무처장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으나, 의외의 인물이 공천될 가능성도 있다. 신한국당 후보로는 조규범 지구당위원장이 유력하다.

시·구 의원은 잔여 임기가 1년 미만이어서 보선을 치르지 않아도 되지만, 염시형씨가 사망해 결원이 생긴 광주시 교육위원은 다시 선출해야 한다. 추모 분위기 속에 고인들의 빈 자리를 채우려는 움직임도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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