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산업정책’에 재벌 긴장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2.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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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경쟁력’ 위해 규제 가속화…대기업 부채 ‘주식교환’도 검토

 3월9일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에서는 상임이사회가 비공개로 열렸다. 전경련의 ‘두뇌’들뿐만 아니라 학계인사와 전직관료가 고루 참석한 이 회의의 관심은 크게 두가지에 쏠렸다. 하나는 국민당이 14대 총선에서 과연 몇석을 차지하느냐 하는데 있었고, 다른 하나는 정부가 그동안 조용히 연구해온 ‘신산업정책’이 과연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에 있었다.

 전직 고위 경제관료로서 관료의 생리를 잘 안다는 한 참석자는 “신산업정책은 재벌을 잘 다스리자는 방안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가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조치나 업종 전문화와 같은 일련의 재벌규제정책을 펴왔다는 점에서 긴장해온 대다수 참석자는 국민당 바람이 정부의 재벌규제정책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14대 총선이 끝난 지금 재계의 관심사는 하나로 좁혀졌다. “어떤 형태의 신산업정책이 펼쳐질 것인가.” 신산업정책을 재벌규제정책으로 이해하는 전경련도 정치전망과 관련한 신산업정책의 앞날에 대해서는 두가지 시각이 있다. 집권여당이 참패한 상황에서 재계의 반발이 예상되는 충격적인 산업정책을 추진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는 ‘회의론’과, 정부가 자신들로부터 등을 돌린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재벌에 대한 개혁적인 조치가 필요하며 제2의 재벌당 출현을 막기 위해서도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밀어붙일것이라는 ‘조기 반영론’이 그것이다. 재계는 6공 들어 정치권과 재벌과의 관계를 급격하게 바꿔 온 산업정책이 어떤 형태로든 바뀔것이라고 본다.

 재계가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신산업정책’의 실체는 과연 어떤 것인가. 신산업정책이라는 새로운 용어는 지난 1월 □□□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이 한국능률협회에서 연설하면서 “산업정책의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그가 이같은 고민을 공개석상에서 토로하게 된 데에는 우리나라 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뭔가 새로운 처방이 있어야 한다는 심각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연설 이후 경제기획원 산하 한국개발연구원은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것을 방해하는 요인은 무엇인지를 조사해왔다. 조사는 주로 △대기업의 기술개발실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관계 △부실채권 현황 및 법정관리와 은행 관리 실태 △차입경영방식과 자기자본 경영방식 비교 △장기산업자금 공급실태 △대기업의 상호지급보증과 은행주식보유실태 △정부의 역할 재정립 등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조사분야만 보면 신산업정책이 재벌규제정책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거의 없다. 뒤이어 韓□沫 상공부장관은 지난 3월17일 신라호텔에서 개최된 한국공업표준협회 주최 최고 경영자협의회 조찬회 특별강연에서 “기업활동에 애로가 되고 시장경쟁을 저해하는 행정편의적 규제 및 중복규제는 대폭 간소화하고 형평과 복지를 위한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는 일은 당사자 간의 충분한 의견조정을 거쳐 점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재계가 신산업정책을 재벌규제정책으로 보는 것은 경제부처와 민자당 안에서 정부개입을 주조로 한 산업정책, 특히 강력한 재벌규제정책이 필요하다느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왔기 때문이다(아래 상자기사 참조). 경제부터에서 각종 재벌관련 조치가 검토되고 있지만 정책으로 현실화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이와 관련하여 朴雲□ 청와대경제비서관은 경제부처 간에 일부 이견이 있음을 밝혔다. 그는 “경제력집중 완화 문제와 관련하여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조치와 업종전문화 정책에 대해서는 합의가 되어 이미 실시됐다. 그러나 대기업의 소유분산과 소유·경영의 분리를 인위적으로 해야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있다”고 말했다. 경제기획원의 경제기획국이 상대적으로 강제적인 조치를 선호한다면 상공부 산업정책국은 피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기업집단의 출자한도를 놓고도 부처 간에 견해차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는 순자산(자본총계에서 국고보조금과 계열사가 출자한 금액을 뺀 것)의 40% 이상을 초과해 출자해서는 안된다. 초과분은 올해 3월말까지 주식이나 회사를 팔든지 통폐함해서 해소해야 한다. 대기업집단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가능한한 빨리 해소해야 한다고 보는 부처에서는 초과 액수 가운데 미해소된 부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출자한도액도 30%선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청와대 경제비서관팀에서는 출자한도 제한에 그다지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일본이 미국을 앞선 것은 ‘게이레츠’(□□·공통의 이해와 상호출자를 통해 결합된 기업집단) 때문이라고 본다. 재벌그룹 내의 비주력 업종이 주력업종에 대해 출자하는 것만 막으면 된다는 게 청와대쪽 생각이다. 이런 찬반 양론은 인위적인 소유분산과 소유·경영의 분리방안에 이르면 더욱 심각하다.

 분명한 것은 정부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체질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확신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한 여러 방안이 재벌에 대해 규제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에 대한 논란은 지난 3월13일 산업연구원 대회의실에서 ‘기업경영효율화 지원방안’이란 주제로 열린 제2차 산업조직 민간협의회 및 정책토론회에서 이루어진 바 있다. 산업조직 민간협의회는 지난 88년 1차 회의가 열린 후 4년여 만에 다시 열린 것이다. 여기서 구체화된 주요 조치 세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상호지금보증 제한 : 정부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30대 대기업집단에 속한 계열사끼리 서로 서준 지급보증 총액이 3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정부는 대기업집단에 속한 계열사의 빚을 다른 계열사가 보증해주기 때문에 은행자금이 계열사가 많은 재벌그룹에 몰릴 뿐만아니라 이들의 재무구조를 취약하게 만든다고 본다. 또 실제로 한 기업이 망하면 계열사가 연쇄적으로 망할 가능성이 있어 정부로서는 구제금융을 해줄 수밖에 없다. 상호 지급보증이야말로 재벌을 절대 망하지 않게 해주는 안전판이 되고 있다. 이미 지난해 6월부터 30대 대기업집단의 주력업체가 다른 회사에 새로이 지급보증을 할 수 없게 한 정부는 이를 전 계열사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정부는 이 조치를 은행의 대출관행만 바꿔도 시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의 자금담당 이사는 “은행이 신용을 매개로 대출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기업이 담보로 잡힐 부동산 취득도 금지된 상황이라 상호지급보증마저 금지되면 기업들은 대출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부채·지분 교환 : 현재 여신한도관리대상에서 제외된 30대 대기업집단의 총 은행빚은 10조원에 달한다. 비주력업체의 은행빚까지 포함하면 이 액수는 더 불어날 것이다. 막대한 은행빚은 대기업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키고 은행경영을 부실화시킨 주범이다. 정부는 이런 현실인식 아래 대기업이 은행에 빚진 금액의 일부를 주식으로 교환해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자금의 일부를 주식에 투자한 것으로 바뀌며 기업으로선 유상증자를 실시한 결과가 된다. 대기업의 대주주 지분은 감소하고, 현행 공정거래법상 대규모기업집단에 속하는 금융기관이 소유한 계열회사의 주식은 의결권행사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금융기관의 기업에 대한 지배력이 커지지도 않는다. 만일 정부가 세계적으로 유례가 별로 없는 이 조치를 채택하려면 우선 많은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책토론회에 참석했던 □申□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 조치의 부작용에 대해서 “은행을 부실기업 인수기관으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은행빚을 주식으로 교환해 주는 일이 금융자율화에 역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인수·합병(M&A) 활성화를 통한 부실기업 정리 : 정부는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재벌계열사나 비주력 기업의 처분을 유도하려 노력해왔으나 인수·합병시장이 정비되지 않아 업종 전문화정책이 의도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고 본다. 재벌의 여러 업종 참여나 무리한 사업확장을 막아 자금에 대한 가수요를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불필요한 사업부문을 쉽게 처분할 수 있도록 해줄 필요가 있다고 정부측은 주장한다. 기업에게 ‘망할 자유’를 돌려줄 필요가 있다는 역논리인 것이다. 이럴 위해서는 인수·합병을 전담할 중개기관 등이 생겨야 한다. 이 조치는 민자당이 14대 총선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으며, 7차5개년계획의 국제경쟁력강화시책에도 들어 있다.

 이에 대해서 삼성경제연구소의 金永東 산업연구실장은 “누가 부실기업을 사들이겠는가. 결국은 대기업이 다시 인수할 수밖에 없어 과거 부실기업 정리 때처럼 특혜시비만 낳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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