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할머니 전담 통역사는 열다섯 살 소녀
  • 김은남 기자 ()
  • 승인 1997.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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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잇 크니어! 도잇 크니어!” 훈 할머니가 캄보디아어로 하는 말을 김유미양(15·왼쪽)은 ‘똑같다’는 한국어로 열심히 바꿔주고 있었다. 한국을 찾은 이틀째에 용인민속촌에 들른 훈 할머니는 초가집이 몹시도 반가운지 문설주·마루 이곳저곳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어렸을 적 기억과 똑같다는 말을 반복했다. 훈 할머니가 한국인 종군 위안부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아 몹시 초조해 하던 유미양은 이 날 비로소 긴장에서 벗어나는 모습이었다. 유미양이 훈 할머니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6월. 할머니를 만나러 캄보디아에 간 한국 손님들을 안내하던 아버지가 “네 캄보디아어 실력이 제일 낫다”라며 등을 떠미는 바람에 엉겁결에 토역을 맡게 되면서부터였다. 선교사 아버지를 따라간 지 3년밖에 안되었지만 유미양의 캄보디아어 실력은 현지 교민중 단연 으뜸이다.

이번에 훈 할머니를 수행한 유미양은 어른 못지 않은 직업 정신으로 주변을 감탄케 했다. 쏟아지는 질문에 짜증내는 법 없이 유미양은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곤 했다. 훈 할머니가 바구니를 가리키며 옛 기억을 설명하면 “소쿠리인지 바구니인지 분명치 않은데, 캄보디아어에는 이 둘을 구분하는 단어가 없다”라고 설명을 덧붙이는 식이었다. 3년 전 헤어진 친구들과 연락할 사이도 없었다는 유미양은 “헐머니가 한국의 가족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라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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