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나는 21세기 ‘신바람’ 으로 연다
  • 이문재ㆍ허광준 기자 ()
  • 승인 2006.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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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 고유의 힘 ‘신바람’ 사회 곳곳에 불어



“일과성에서 탈피, 체계화해야”

 ≪시사저널≫은 신년기획의 하나로 신바람 문화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고, 그 미래를 전망해 보고자 한다. 신바람 문화가 실현되려면 지배집단의 인식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시각도 설득력이 있지만, 그같은 목소리를 벗겨보면 ‘네 탓이요’와 같은 순환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업체에서, 국민학교 교실에서, 그리고 군 내무반에서 돋아나는 신바람의 새싹을 살펴보면서, 일꾼이 일의 주인이 되고, 일터가 곧 인간삶의 터전이 되는, 그리하여 인간이 인간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저 신명나는 사회를 모색해본다. <편집자>

 도처에서 ‘신바람’이 분다. 이 신바람은 해방 이후 각 공화국이 커다란 선풍기를 틀어내며 몰아치던 바람과는 어딘가 달라 보인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로 시작해 새마을운동으로 이어졌다가 의식개혁운동, 그리고 새생활 새질서운동등으로 이어져온 그 바람은 취지와 명분이 탁월했는데도 지나가는 바람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위에서부터 내려온 강제적 바람이었던 것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10여년 전부터 주창하고 지난해 여름 이면우 교수(서울대 ? 산업공학)가 ≪W이론을 만들자≫를 내놓으면서 관심을 집중시킨 신바람은, 대학교수ㆍ기업인의 저서와 강연으로 불씨가 일었고, 지난 대선 기간에 각 후보가 신바람 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하면서 유행어가 되었다. 그리고 새 대통령이 선출되어 ‘문민시대’가 열렸다. 자생적으로, 아래로부터 부는 신바람이, 그동안 신바람을 억압해온 권력의 최고 지점까지 올라 언제 신바람의 깃발을 펄럭이게 될 것인지 관심을 끈다.

 아직 신바람은 잃지 않고 있다. 요즘 논의되는 신바람은, 신바람이 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런 신바람의 문화가 있었다, 보아라, 여기 신바람의 새싹이 보인다 정도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신바람은 아직 가능성이다.

 

“후기산업사회는 한국의 시대 될 것”

 신바람은 전통문화의 신명과 동의어로 이해된다. 신명은 일상적 상태를 벗어난 ‘정서의 폭발상태’이다. 신명은, 그러므로 맺힘(恨)의 상대어이다. 한을 건강한 방향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이 곧 신명이었다. 들숨과 날숨처럼 이 맺힘과 풀림의 끊임없는 교차가 우리 삶의 역사였던 것이다. 고대사회의 동맹ㆍ영고ㆍ무천과 같은 연례적인 축제를 비롯해, 양반의 허물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탈춤이나, 마을굿, 두레, 그리고 장터 등은 민중이 주체가 되는 주기적인 신명의 마당이었다. 한편 신내림을 통해 하늘과 지상을 이어주는 무속의 신명이 전해져온다. 우리 역사속의 신명은, 많은 해석이 가능하지만, 그 가장 큰 특징은 민중의 신명이었다는 것이다(40~41쪽 좌담 참조).

 이어령씨는 신바람의 상징으로 바람개비를 든다. 바람을 거슬러서(可逆性) 달려야 돌아가며(可動性) 그래야 사람들이 바람의 속도와 방향, 색깔을 눈으로 볼 수 있다(可視性)는 바람개비의 세 요소가 창조적인 삶과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그냥 뛰라고 하면 뛰지 않지만, 바람개비를 들려주면 신나게 달려나간다. 바람이 없어도 바람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달려나간다. 이때 어린이로 하여금 달려나가게 하는 힘이 ‘내면의 신바람’이다.

 새로운 시대를 뚫고 나갈 에너지가 고갈된 서구사회가 마리화나 같은 외부적 충동에 경도되는 것과 달리 우리에게는 신바람이라는 거대한 바람개비가 있다고 이어령씨는 주장한다. 세께는 지금 노동의 형태와 사회질서가 관리의 시대에서 개개인의 참여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이다. 국내적으로는 문민시대의 입구에 있다. 이씨는 “우리 민족이 이처럼 두가지 가능성을 한꺼번에 가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고 말한다.

 ‘욕망, 이성, 그리고 티모스(thymos)’ (氣 ? 가슴 ? 자존심)를 역사 발전의 3대 동인으로 꼽는 이씨는 21세기를 티모스의 시대로 내다본다. 후기산업사회 ? 정보화시대인 21세기는 티모스, 즉 신바람의 민족인 한국인의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산업주의가 무너지고 개인이 더 이상 관리될 수 없는 시대가 온다”라고 말하는 이어령씨는 “한국인은 원래 관리가 잘 안되는 민족이지만 일단 신바람이 나면 어떤 일이든 해낸다”고 강조한다.

 이씨의 바람개비 이론은 “신나서 하는 일에는 실패가 없다”는 이면우 교수의 W이론 (≪시사저널≫ 92년 7월30일자 참조)과 같은 맥락을 가진다. W이론은 이교수가 오랫동안 산학협동 현장에서 한국 기업과 근로자들과 부대낀 결과 모아진 ‘한국적인 경영철학’이다. 그의 저서 ≪W이론을 만들자≫에 소개되었듯이 이교수의 주장은 유럽 ? 미국과 일본이 간 길을 아무리 따라가 봐야 2등밖에 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세운 첨단 산업기술 정책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소에 해당하는 미국, 미국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쥐인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우리가 쥐머리 위에 앉는 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소-쥐-벌 이론).

 솔선수범으로 인정받는 지도자, 공생공사 정신으로 하나가 된 참여자가 어우러질 때 신바람이 발생한다는 W이론은 △과감한 교육 혁신 △선진국이 아닌 우리 실정에 맞는 발전전략 구축 △사고의 혁신과 발상의 전환 △상식과 순리의 회복에 바탕한 소-쥐-벌 이론의 실현 등을 통해 정보혁명 시대에 대비하는 전략(주인없는 땅 먼저 차지하기)을 세우는 한편, W이론에 걸맞는 지도자를 배출해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그러면 기업체에서 이는 신바람의 현장을 찾아가보자. “내가 과연 이런 사원들을 데리고 큰일을 해낼 수 있을까?” (주)금성사 창원공장 세탁기설계실 조성진씨(89년 당시 技正 ? 현재 책임연구원)는 앞이 캄캄했다. 89년 노동운동의 여파로 회사는 벼랑에 있었다. 국내 최고의 가전업체라는 명예가 바래지고 있었다. “당신들이 하고 싶은 일로 회사를 구해 봐라”하는 상부의 막연한 지시도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설계 제조 상품기획 구매 품질관리 등 제품생산의 전과정에서 추천된 사원들은 대개 문제사원이었다.

 조성진씨가 그때 팀을 이끌어 인공지능 세탁기를 개발,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은 소집단 신바람의 한 전형이 될 듯하다. 팀장인 그는 한달 동안 아무 지시도 않고 연구원들을 합숙시켰다. 왜 이 팀에 와 있는지조차 모르는 연구원들은 무질서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연구원들이 문제사원이 아니라, 일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높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자의식이 강하고 곧은 소리를 잘하며 직선적이어서 주위와 융화가 잘 안되었던 것이다.

 한달쯤 지나자 연구원들은 스스로 목표를 세웠다. ‘우리가 여기 왜 모였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동일한 답변이 생겨난 것이다. 놀라울 만큼 팀워크가 단단해졌고 활발하게 아이디어가 튀어나왔다. “목표를 스스로 파악하고 이를 전체가 공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조성진씨는 말한다. 그에게 신바람이란 ‘마음의 공유’인데, 그것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한 ‘마음 열기’에서 비롯한다. 팀장이 할 일이란 “나를 열어주고 구성원 전체를 서로 열어주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개별적 신바람 하나로 모아야 한다”

 소집단에서의 신바람은 비교적 쉽게 발견된다. 삼성전자의 “타임머신팀”이 좋은 예이다. 정보통신 분야의 아이디어 개발 전문부서인 이 팀은 모두 10명으로 구성됐는데, 각자 독립성이 보장돼 있다. 본인이 기안하고 결재하며 출퇴근 시간도 자유롭다.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아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삼성전자측은 이 팀에서 나올 ‘전략적 미래상품’에 대한 기대뿐만 아니라, 이들이 펼치는 새 바람이 획일화 ? 경직화된 조직을 살아서 꿈틀거리는 조직으로 전환하는 자극제가 되길 바란다.

 대기업은 전사적인 신바람을 도모한다. 이른바 ‘1사1캠페인 운동’ 즉 21세기를 위한 경영혁신 운동이 그것이다. 미래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경영철학과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경영철학과 기업문화를 다져나가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눈에 띌 만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신유근 교수(서울대 ? 경영학)는 최근 내놓은 ≪한국의 경영≫에서 ‘긍정적 의미에서의 감정적 몰입상태가 신바람“이라고 규정한다.

 신교수의 저서에 따르면, 한국인은 일터에서 신바람과 그 정반대 상태인 ‘한’ 사이를 오가며, 중용으로 정의되는 자기 규제력으로 일상을 유지한다. 이 점이 한국인의 특성이다. 그러므로 요즘 일고 있는 “과도한 신바람(논의)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 신교수는 적절한 스트레스가 경영에 도움이 된다면서 ‘We-I형 기업문화’를 제안한다. 기업문화의 궁극목표인 공동체를 중시하고, 그것을 이룩하기 위한 수단으로 구성원의 자율적 행동방식을 필요로 하는 문화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신교수의 ‘We-I형 기업문화’는 신바람의 개별화 현상을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생산ㆍ재무ㆍ마케팅 등 각 경영기능(I) 나름대로는 활력이 있지만 그 기능들 사이에 벽이 너무 큰 것을 문제로 보는 것이다. 각 기능을 연결하는 응집력(We), 즉 경영철학이 빈곤한 것이다. 신교수는 개별적 신바람을 하나로 모으는 화합 ? 협동의 원리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사원의 술값 내주는 중소기업체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신바람 운동은 그 열기나 효과가 비교적 빨리 나타난다. 의료기기 전문생산 업체인 (주)메디슨과 의류업체 이랜드 그룹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이 두 기업은 젊은 창업주를 구심점으로 젊은 사원들이 자율성과 창의성, 그리고 공동체 문화를 ‘재산’으로 삼고 각기 자신의 분야에서 선두를 달린다.

 85년 국내 최초의 의료기기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메디슨의 창립사원들은 현 대표이사 이민화씨(40)를 비롯해 모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 출신이다. 83년 국책연구과제로 시작된 초음파 진단기를 연구 ? 개발했으나 생산이 불가능하다며 기업체의 연구지원이 중단되자, 당시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들이 아예 회사를 차린 것이다. 그러나 첫 제품을 출하했을 때 국산품에 대한 불신, 제품의 결함, 자금부족 등으로 무릎을 꿇을 뻔했다.

 그러나 ‘메디슨맨’들은 독창적이고 성능이 우수한 초음파 진단기를 잇달아 개발, 지난해에는 매출액 2백24억원, 종업원 2백24명에 이르는 우량기업으로 뿌리를 내렸다. 메디슨은 현재 유일한 국산 초음파 진단기 개발 제조업체로, 국내시장 95%, 세계시장 17%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이 도전의 역사에는 ‘국부창출, 인간존중’을 이념으로 하는 메디슨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메디슨은 연구중심형 기업풍토를 가꿔나가기 위해 ‘실패에 대한 지원’이라고 경영방침을 세웠고 연구원과 사원의 자율성을 넓혀 주었다. 메디슨의 자율성은 결재용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재난은 보통 담당자와 상사 두 개만 있다. 결재난은 보통 담당자의 전결로 처리 되고 큰 사안이라 할지라도 세 단계를 넘지 않는다. 자칫 파편화로 흐를 수 있는 이 자율성과 신속성은 공동체의식이라는 구심점으로 하나가 된다. 회사 내에 설치된 사원 노래방이나 각종 동아리 활동, 그리고 회사가 부담하는 지정술집 등이 공동체의식을 결속시키는 소프트웨어 들이다.

 대기업이 그러한 것처럼 중소기업도 웬만한 곳이면 신바람 이론을 적용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신바람 이론이 동기부여 효과는 크지만, 실제로 노동강도를 강요하는 측면도 있다”는 정보전략연구소 윤은기 소장의 지적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윤소장은 구체적인 방법론 없이 구호만 외치는 것은 ‘마른 헝겊에서 물짜기’와 다를 바가 없다면서, 경영인과 신바람의 전파에만 치중하는 언론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이성은 교수(이화여대ㆍ교육학)는 지난 학기 동안 졸업반 학생들에게 ‘신바람나는 교육, 어떻게 가능한가’를 놓고 토론을 벌이게 했다. 예비교사들은 자료와 현장조사를 통해 몇가지 ‘강령’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궂은 일을 찾아서 한다 등 여덟 가지 신바람 조건을 추출한 것이다.

 기존 교육학계에서 신바람 이론은 아직 연구되지 않고 있다. 젊은 교사들이 교육 현장에서 새로운 교육을 모색하고 있을 뿐인데, 바로 그 중에 하나가 ‘열린 교육’이다. W이론과 김상일 교수의 ‘퍼지이론’을 비롯해 홀로 그래피이론, 불확정성의 이론 등 현대과학의 틀을 통해 신바람나는 교육을 실현하고자 하는 이교수는 현재 여기에 가장 가까운 모형이 열린 교육이라고 말한다.

 

‘열린 교육’으로 신바람나는 교실

 1930년대 영국에서 태동한 열린 교육은 전통적인 교육방식에 대한 반발이었다. 교사와 학생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한편, 교실도 가능한 한 벽을 터 열리게 하고 학년이나 석차(절대평가)와 같은 제도도 없앤다. 역할ㆍ제도ㆍ공간ㆍ정보가 모두 열리는 것이다. 열린 교육은 60년대에 미국이 수용했고, 일본은 70년대 초 받아들였다. 국내에서는 86년 서울 운현국교에 이어 89년 경기도 평택 안중국교, 그리고 지난해 서울 윤중국교(공립)가 시범학교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획일화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열린 교육은 이미 동양적”이라는 이교수는, 열린 교육에 대한 반대론이 많지만, 획일적이고 규제적이며 관료적인 우리 교육 현실을 개선해나가는데 좋은 지향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그 반대론은 외래이론이며 그 수요 태세가 미비하다는 것으로 압축되는데, 이교수는 “현대물리학의 이론은 우리 고유의 문화와 맥락이 비슷하다”며 아무리 한국적인 것이라 해도 동시대의 과학적 보편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교육부의 지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적 상황’이 있지만 열린 교육의 내일은 밝다. 이농현상으로 농어촌은 열린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위로 부터가 아닌’ 젊은 교사들 중심으로 열린 교육에 대한 연구 ?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학계의 단단한 이론이 뒷받침되면 열린 교육은 교사 ?학부모 ? 학생 ? 지역사회 모두에 신바람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병영에도 신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사회와 격리된 특수사회의 군대 내부에서도 유일한 원칙이던 명령과 통제에서 탈피해 병사가 주인인 군대, 즉 兵主主義가 발아한 것이다 이 변화의 바람은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인다. 신세대 의식과 행동양식을 보이는 병사에게 일방적 통제는 먹혀들지 않는다. 지휘자들 사이에서 합리주의에 대한 개안이 이뤄진 것이다.

 지난해 9월 김진영 육군참모총장은 새로운 육군문화의 정립을 강조했다. 健(건전 건강 합리) 信(상호 이해와 신뢰) 團(지휘관을 중심으로 단결) 勝(필승정신)을 기둥으로 하는 새 육군문화는 건전한 음주ㆍ놀이문화, 바른 말 쓰기 운동, 토의문화 정착, 그리고 각자 직분에 걸맞게 행동하는 ‘답게하기 운동’과 같은 구체적 형태로 실현되고 있다.

 기계화부대인 육군 필승부대는 토요일 오후 일과가 끝나면 재야 집회에서나 들음 직한 사물놀이 가락이 요란하다. 옷과 악기를 갖추고 연주에 몰입, 신명을 내는 병사들은 머리가 짧은 것을 빼면 꼭 대학 동아리방에서 연습하는 젊은이들처럼 보인다 이같은 ‘병주주의’가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에, 이 부대 민심참모 곽현웅 소령은 군기의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함성이나 딱부러지는 동작이 군기가 아니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으나 임무가 떨어지면 자신의 열과 성을 다해 전념할 수 있는 능력과 책임감이 새 시대의 군기”라고 말한다.

 

‘兵主主義’로 유쾌한 병영생활

 필승부대에서 고운말 쓰기나 구타 추방 운동을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이다 점호도 ‘대화점호’ ‘편지쓰기 점호’ 등으로 바뀌었다. 신병교육을 받는 예비 이등병과 사단장이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심지어 중대 단위로 몇몇 사병을 명예위원으로 두는 일종의 ‘암행어사 제도’를 실시하기도 한다. 이 부대의 한 대대를 지휘하는 김태왕 중령은 “요즘 병사들은 자기 할 말은 다 한다”라고 한다. 한 주임상사는 “병사들은 편해지고 간부들은 힘들어졌다”고 군대사회의 변화를 잘라 말한다.

 제대를 코앞에 둔 김 훈 병장(24)은 고참이 졸병을 함부로 할 수 없다면서 “잘못이 있으면 말로 충분히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고 했다. 상명하복의 규율 대신 합리주의가 일상화되자 일부 간부는 “이게 군대냐”고 거부감과 우려를 나타내지만 ‘신바람 나는 인간다운 군대’의 장점은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 부대의 각종 영내 외 사고가 줄어든 것이다.

 최근 자신의 군대생활 체험을 단상 형식으로 묶은 ≪멋≫을 펴낸 군사평론가 지만원씨(사회발전연구소 소장)는 사병의 신바람은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현재 장교 문화에서는 신바람이 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보기에 요즘 일부 장교는 사병보다 철학이 없다. 여기에다 장교의 자율성을 반감시키는 군의 구조나 승진 문제 등이 군의 전문화와 과학화를 저해한다고 지씨는 지적한다.

 W이론과 같은 신바람 문화 이론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가진 지씨는 자신의 월남전 체험을 예로 들면서 ‘시스템이론’을 강조한다. 신바람은 어쨌든 바람일 뿐이다. 이 동기 부여 이론을 지속시키는 시스템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시스템이론은 군뿐만 아니라 기업과 정부에도 적용된다. 지씨에 따르면 직장과 자신을 일치시키며 다른 직장과의 차별화(기업문화)를 이루고 동기부여를 통해 목표를 일치시키고 생산성을 향상시킨다 해도, 아직 시스템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구성원 누구나가 이해하고 동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설정’과 이의 실현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시스템은 가동된다.

 지만원씨의 시스템이론은 이어령씨가 염려하는 신바람의 약점과 일맥상통한다. 이어령씨는 ≪그래도 바람개비는 돈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싸늘한 이성 합리주의가 결여되었을 때 사람의 힘은 광란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지속성ㆍ방향성, 그리고 질서의식을 가질 때 신바람은 참된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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