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 손짓하는 ‘해병대 캠프’
  • 이정훈 기자 ()
  • 승인 1997.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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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서 4박5일간 실시 … 점프 · 보트 훈련 통해 극기심 고취

지난 8월 26일 경북 영일만에 자리 잡은 해병대 1시간의 전투 수영장. 빨간 모자에 빨간 티셔츠 · 빨간 반바지 차림에 눈매가 무서운 조교들이 일반인 수십 명을 ‘굴리고’ 있었다.

일반인들은 남녀 공학인 서인천 고교 1학년생과 현대전자의 피닉스 아마 야구단, 효성기계서비스 소속 직원, 그리고 재인 자격으로 참가한 시민들이었다. 30도를 웃도는 날씨로 땀이 비오듯한데, ‘앞으로 취침’과 ‘뒤로 취침’을 반복하니 전부 모래범벅이 되었다.

갑자기 바닷가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서인천고 여학생을 주축으로 한 여자 중대원들이 바닷물에 들어가 뒤로 취침을 한 것이었다. 잠시 후 현대전자 야구 선수들은 체력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따로 불려나가, 수십 차례 선착순 달리기를 반복했다. 선수들은 해병대 조교와 그들을 해병대 캠프로 보낸 김시진 코치를 원망하면서도 열심히 뛰어다녔다.

비명과 고함이 환호로 바뀐 것은 침투모와 구명조끼를 입고 ‘폼 나게’ 침투용 고무보트(IBS)를 탔을 때였다. 이 날 따라 영일만의 파도는 높았다. 한쪽에서는 고무보트가 뒤집혀 짠물을 먹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즐거워했다. 모두를 흥분케 했던 고무보트 침투훈련은 아쉽게도 큰 파도로 인한 사고 위험 때문에 맛보기로 끝나고 말았다.

이 훈련은 해병대가 올 여름부터 참가비 3만여 원을 받고 4박5일간 실시하는 해병대 캠프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해병대 훈련소와 비슷하게(물론 강도는 훨씬 약하다) 진행되는 이 캠프는, 번지 점프보다 더 짜릿한 공수 점프 훈련, 뻘밭을 모방한 습지에서의 각개 전투 훈련 등으로 이어진다. 도중에 참가자들은 상륙장갑차를 타고 바다로 나가보는 흔치 않은 특전도 누릴 수 있다.

“해병대가 무서운 부대인지 와서 보세요”
해병대 캠프에 참여한 사연은 다양했다. 개인 자격으로 참가한 윤세진양(의정부 경민전문대 1학년)은 대학 졸업 후 여군이나 여경이 되고 싶어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부산 동일섬유에서 일하는 이재명씨(31)는 삶의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휴가를 내 캠프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서인천 고등학교(교장 홍성한)는 여름방학 기간에 의무로 참가케 하는 단체 수련 프로그램으로 해병대 캠프를 선택했다. 이 학교 조인형 교감은 “지난 7월부터 단계적으로 학생들을 보내고 있는데, 사설 캠프를 이용했을 때보다 학생들이 더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안보 교육과 극기 훈련도 함께 할 수가 있어 일거삼득 효과를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요란한 손동작과 매서운 눈매, 그리고 “군대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군대입니다”라는 말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훈련소의 박봉식 중사는 “어쩌다 인천에 가면 서인천고 학생들이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학생들로부터 편지도 꽤 많이 받았다”라고 말했다.

해병대 1사단 김상윤 중령(해사 33기)은 가장 인상적인 참가자는, 군대에 갈 수 없는 한국장애인연합선교회의 장애자들과 대구 아동수용소 고아들이었다고 말했다. 김 중령은 장애인ㄷㄹ이 입소했을 때는 해병대원들이 휠체어를 밀며 봉사 활동을 해, 역을 해병대원들이 사회를 배우는 기회를 가졌다며 고마워했다. 김 중령은 “요즘같이 경쟁이 치열하고 경기가 나쁜 시기엔 극기심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해병대 캠프에 들어오라고 권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해병대 캠프 프로그램을 착안한 전도봉 해병대 사령관은, 해병대 마케팅 차원에서 캠프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육군은 징집 체제이므로 한순간에 수만 명을 보충할 수 있지만, 해병대는 지원 체제여서 국민에게 사랑받지 않으면 명맥을 유지할 수가 없다. 과연 해병대가 무섭고 피해야 할 군대인지 국민들이 직접 와서 보라고 개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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