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통신
  • 워싱턴ㆍ김승웅 특파원 ()
  • 승인 2006.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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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링’의 죽음 워싱턴 울리다




 중국산 팬더곰 링링(Ling Ling)이 지난 12월31일 병들어 죽은 기사를 <워싱턴 포스트>가 이틀에 걸쳐 1면에 사진까지 곁들여 게재했을 때, 아무리 기사가 궁하다해도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링링이 살던 워싱턴동물원을 직접 찾은 것은 기사내용을 점검해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연말년시 여가를 워싱턴 시민이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놀랐다. 링링의 축사 앞에 장사진을 친 ‘문상객’을 보고 그 기사가 결코 장난 차원이 아닌, 워싱턴 시민생활의 한 구심점을 건드린 큼직한 사건임을 알았다.

 축사 앞에 링링의 영정이 걸려 있고 그 옆에는 비명까지 있다. 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링링, 1969~1992. 중국이 미합중국에게 준 선물. 중국 영토 밖의 팬더곰으로는 최장수. 미국인 모두가 그녀를 애도하노라.”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공 방문과 그로 비롯된 미ㆍ중수교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에 온 링링이 미국생활 20년을 마치고 죽은 것이다.  함께 미국에 온 1년 아래 수곰 싱싱(Hsing Hsing)은 아내의 죽음을 모르는지, 주식인 대나무 이파리를 따먹느라 여념이 없다.

 문상객을 따라 축사 복도로 들어서면 링링의 20년 미국 이민사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파노라마의 주제는 링링의 모성애, 새끼 팬더를 갖기 위해 링링이 보낸 20년의 헌신적인 사랑과 노력이 한편의 동화극처럼 전개되어 있다. 또 여기에, 좀 덜 떨어진 남편 싱싱의 멍청한 행동이 페이소스를 가미해 ‘워싱턴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준다.

 

11년 만에 태어난 2세는 3시간 후 세상 등지고

 링링은 위싱턴동물원으로 이사온 후 3년이 지나면서부터 매년 발정기를 맞았다. 그때마다 사육사는 수놈 싱싱과의 합방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실패 원인은 싱싱의 신랑 구실이 시원찮기 때문이었다. 싱싱은 신부 링링을 다루는 솜씨가 서툰 데다, 특히 앞과 뒤를분간 못해 체위를 혼동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밝혀졌다.

 매년 5~6월, 링링이 발정기를 맞을 때마다 신랑 싱싱의 바보짓은 많은 워싱턴 시민을 애타게 했다. 또 싱싱의 바보짓이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될 때마다 이집저집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언론은 그때마다, 동물원사육사로부터 “이게 앞이고, 이게 뒤야”라는 체위설명 등 성교육을 조금은 맹한 표정으로 듣는 신랑 싱싱과 이를 옆에서 부끄러운 표정으로 훔쳐 듣는 링링을 풍자만화로 실어 시민을 즐겁게 했다.

 싱싱의 바보짓을 더 이상 참지 못한 동물원측은 81년 영국동물원에 있는 챠챠(Chia Chia)를 워싱턴으로 데려와 링링과의 합방을 시도했다. 그러나 링링의 완강한 저항으로 챠챠의 빰에는 상처만 남았다.

 링링과 싱싱의 합방이 성공한 것은 1983년 3월. 두 곰이 미국에 온 지 11년째이자, 링링이 발정을 시작한 지 8년 만의 경사였다. 당시 신문과 텔레비전은 이를 대서특필했고, 뉴스를 접한 워싱턴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터뜨렸다. 그날부터 동물원 사육사들은 24시간 비상체제에 돌입했고, 이런 체제는 그해 7월 이민 팬더 2세의 출생까지 4개월 동안 계속됐다.

 이런 긴장과 기대 속에 태어난 팬더 2세는 생후 3시간 만에 급성 폐렴으로 죽었다. 평소 덜 떨어진 신랑 싱싱도 이때만은 아내 링링과 함께 죽어가는 새끼를 열심히 핥아줘 뭉클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팬더 2세가 죽은 지 1주일 만에 링링의 슬픔과 산후를 걱정하는 위로편지가 3만통이나 동물원에 배달됐다. 링링은 그후 네 번 임신했으나 번번이 사산했다.

 링링은 그해 12월 신장염과 심한 빈혈로 고생하다 싱싱의 수혈 덕택에 되살아났다.

 비틀거리는 링링을 안타깝게 여긴 자원봉사자 7백여명이 연 7천시간 작업한 끝에 마련한 것이 지금의 축사다.

 홀아비가 된 싱싱의 축사 앞에는 시민의 격력 편지와 엽서가 즐비하다. “힘내라 싱싱!” “우린 널 잊지 않을 거야, 링링!”

 우리에게도 동물원은 있다. 그러나 이런 감동은 없다.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는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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