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골 은행들, 합쳐야 산다
  • 이철현 기자 ()
  • 승인 1997.09.1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융 시장 자유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정부 보호 아래서 도산 걱정을 하지 않았던 국내 은행들도 국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의 자본 규모는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데 필요한 최소 자본에도 미달한다. 영국의 경제신문 <파이낸셜 타임스>가 지난해 7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본금 규모 세계 100대 은행 가운데 국내 은행은 한 곳도 없을 정도다.

재계와 금융계는 국내 은행을 통폐합해 자본금 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내 은행을 대형화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수단은 합병이다. 합병은 은행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금을 쉽게 마련하고 수익 기반을 다변화해 경영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 또 금융기관이 쉽게 시장을 들고나게 해 금융 시장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금융연구원은 올해 초 시장 가치를 따져 시중 은행 9개와 지방 은행 10개를 세 그룹으로 분류했다. 우선 합병 은행의 주인이 될 은행으로는 조흥 · 국민 · 신한 은행이 손꼽혔다. 대등한 합병을 통해 대형화를 추진할 만한 은행으로는 상업 · 한일 · 외환 · 서울 · 제일 은행이 거론되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경영 실적이 극도로 나빠진 제일 · 서울 은행에 대한 평가는 수정될 전망이다. 이 밖의 시중 은행과 지방 은행은 흡수될 가능성이 높은 은행으로 분류되었다.

합병 대상으로 제일 먼저 손꼽히는 곳은 정부 지분이 많은 외환 · 국민 · 동남 · 대동 · 평화 같은 시중 은행 5개와 산업 · 기업 · 수출입 · 주택 같은 특수 은행이다. 소매 금융 부문이 뛰어난 국민은행과 외환 업무에 강한 외환은행이 합병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고, 업무 연관성이 높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합병하자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합병이 원활하게 진행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우선 합병을 추진할 주체가 불명확한 데다, 합병 대상 은행이 서로 화합하지 못할 때는 오히려 경영의 비효율성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70년대 초 정부가 주도해 신탁은행과 서울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서울은행 사례가 대표적이다. 따라서 금융기관을 합병하는 작업은 금융기관의 자율 결정에 따라야 한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 금융연구실은 ‘은행 산업 경쟁력과 OECD 가입’이라는 연구 보고서에서, 은행간 합병 때 정부는 조정 역에 그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