倭禍자초한 국산만화 시장
  • 남문희 기자 ()
  • 승인 2006.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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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수입규제법’ 제정할 때 ??? 저질 일본만화 해적판에 청소년 중독 증세



 일본의 아동만화를 표절 ? 복사한 만화가 국내 만화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만화산업의 미래에 대한 만화 관계자들의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다. 한 유명 만화가는 “일본 만화가 국내에 침투해 국산 만화의 역사에 종지부가 찍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필이면 일본 만화에 뒤를 물려 주고 만화가로서의 삶을 끝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고 비감에 젖은 심경을 토로했다. 지난 10년 동안 “일본 만화의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해 싸워왔다”는 한 만화가는 “우리는 힘이 없다. 당국에서 나서줘야 할 텐데 전혀 그런 의지가 없는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만화 관계자들은 현재처럼 일본 만화 해적판이 범람해 국산 만화산업이 지속적인 타격을 받는다면, 이미 일본 만화에 무릎을 끓은 대만이나 태국 홍콩과 같은 상황이 국내에도 곧 오게 된다고 본다. 그 기간도 앞으로 길어야 2~3년 정도라는 것이다.

 국내에 일본의 아동만화 해적판 붐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90년 5월 한 유력 언론이 경영하는 ≪IQ점프≫라는 잡지에 당시 일본에서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드래곤 볼>이라는 만화가 부록형식으로 연재되면서부터이다.

 이 만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하자 그동안 사회여론을 의식해 지하로만 맴돌던 일본 만화 해적판들이 공공연하게 만화시장에 나돌기 시작했다. <드래곤 볼>의 경우 한때 같은 내용의 만화가 몇 개의 출판사에서 동시에 쏟아져 나와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고, 이밖에 ≪씨티헌터≫≪북두신권≫≪용소야≫ 등 아이들 사이에 필독서로 꼽히고 있는 만화류의 출판이 줄을 이었다.

 한국만화가협회 권영섭 회장은 그동안 해적출판된 일본 만화의 유형을 네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첫째, 해적 출판의 초기 형태로 출판사들이 일본 만화 원본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수정해 국내 창작품으로 위장하는 경우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 버젓이 심의필 마크를 달고 만화시장에 나오기도 했다.

 

국민학생 90%가 “일본만화 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이후 만화가들이 간행물심의위원회에 심의위원으로 들어가 더이상 눈속임이 불가능해지자 출판 양상도 바뀌고 있다고 한다. 그 중의 하나는 간행물 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지 않고 자체에서 만든 유령단체의 심의필 도장을 찍어 마치 공인받은 출판물인 것처럼 위장하는 경우이다. 또 한가지는 일본 만화 원본을 그대로 복사해 출판하는 경우인데 대개 무등록 지하 출판사들이 마구잡이로 찍어내고 있어 노골적인 내용이 전혀 걸러지지 않고 있다.

 이런 출판 양상과는 별도로 최근 1~2년 사이 주로 단행본 출판에 대한 사회단체 등의 고발 조치가 잇따르자, 지난해 초부터는 아예 출판 형식을 잡지 형태로 바꿔 출판하는 경향도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슈퍼점프≫≪만화천국≫≪만화여왕≫≪만화개구장이≫≪만화둥지≫ 따위 만화잡지는 대개 주간이나 격주간을 표방하고 있으나 내용은 일본 만화 단행본을 이곳저곳에서 옮겨 실은 것이다.

 각각의 출판 형태에 따라 내용의 농도에는 부분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이런 만화는 대체로 성과 폭력을 노골적으로 묘사해 어린이들이 보기에는 부적당한 내용 투성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라 불리는 <드래곤 볼>의 경우, 만화로서의 작품성은 뛰어나다고 인정받고 있으나 작품 전체에 목욕하는 여자 아이의 전라 장면 증 노골적인 성묘사, 괴물의 머리에 칼이 관통하는 장면 등 잔인한 폭력장면, “죽이는 일은 즐거운 일이야”등 끔찍한 대사 등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만화전문가들은 이러한 내용상의 문제점을 성과 폭력에 대한 일본사외 특유의 관용적 분위기, 외부의 규제가 없이 오직 상업적인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해 만화를 제작하는 일본 만화업자들의 출판 관행등이 어우러져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는데, “청소년 및 아동물의 경우에도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난잡한” 경우가 보편적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들 만화를 처음 접하면서 성과 폭력의 세계에 눈을 뜬 아이들의 경우 점점 더 노골적인 묘사가 실린 책들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국산만화는 내용이 싱거워 볼게 없다는 아이들의 반응이나, 같은 표절 만화에서도 원본의 내용을 삭제하지 않은 완전복사본을 선호하는 경향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일부 부유층 아이들은 그것도 답답해 일본어판 원본을 비싼 값에 사서 돌려보거나 만화내용을 비디오로 제작한 테이프를 사서 반복학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만화가 국내에 확산되고 있는 정도는 지난 91년 8월 서울 YWCA에서 서울 시내 국민학교 5,6학년생 4백2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이 조사에서 조사대상의 90.2%가 일본 만화를 보고 있다고 대답했고, 그 중 68.7%는 일본 만화임을 알면서 본다고 대답했다.

 만화가협회 권영섭 회장은 해적판 일본 만화가 급속히 확산되는 데는 내용상의 상업적인 요인 외에 해적판 출판업자들의 대대적인 덤핑공세에도 원인이 있다고 한다. 현재 이런 해적판 출판업자는 약 30여개의 등록 출판업자와 실제 파악이 거의 어려운 무등록 지하 출판업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은 제작원가가 거의 들지 않는 점을 이용해 한권에 5백원에서 1천원 정도의 정가를 붙여 주로 학교앞 문방구나 서점 등을 통해 대량 배포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처럼 값이 싸기 때문에 웬만한 인기 만화의 경우는 30만권 이상이 팔려나가고 있어 출판업자가 몇억원씩 챙겨 횡재하기도 한다.

 

감독권 ? 단속 주체 불분명

 반면 국산 만화 출판사들은 주독자층을 일본 만화에 빼앗긴 상태에서 이미 많은 출판사가 운영난으로 문을 닫았고, 만화가들도 몇몇 인기작가를 제외하고는 작품 수요가 없어 전직하거나 본의 아니게 해적물 출판에 뛰어드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국산 만화는 앞으로 유통에서도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현재 국산 만화의 주요 판매처인 만화방들이 내무부의 풍속 관련 유해업소로 지정돼 95년까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 만화 해적판의 범람이 이미 심각할 정도로 아이들의 동심을 오염시키고 있고, 국산 만화 산업의 기반을 구조적으로 무너뜨리고 있는데도 이를 단속할 법적 ? 제도적 장치가 미약해 만화 관계자들의 안타까움은 늘어만 가고 있다.

 우선 법적 측면에서 보면, 일본 영화와는 달리 만화는 근본적으로 규제할 법적 장치가 없는 상태다 기껏 동원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저작권법과 미성년자 보호법, 아동복지법의 음란퇴폐만화 단속 조항 등인데, 친고죄 형태로 돼 있는 저작권법은 일본 출판사들의 고발이 있기 전에는 적용이 불가능한 형편이고, 미성년자보호법이나 아동복지법의 법조항은 이미 이정도의 불이익은 감수할 태세가 되어 있는 해적출판업자들의 두둑한 배짱 앞에 실효성을 상실한 형편이다.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만화 내용을 심의하는 기관인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민간자율 단체이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고, 문화부나 공보처 등 관련 부처에는 일본 만화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심의기관이 없을뿐더러 감독권의 소재 및 단속주체도 불분명한 상태다.

 그나마 최근 간행물윤리위원회와 YWCA 등 몇몇 사회단체가 올해 9월 정기국회 상정을 목표로 외국 만화 수입규제법을 제정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실낱 같은 회망을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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