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경제 에세이스트기 소르망
  • 파리ㆍ양영란 통신원 ()
  • 승인 2006.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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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는 현실관리자“



 자유주의의 기수로 알려진 기 소르망(48)은 프랑스의 경제 에세이스트이다. 파리 정치학교 및 프랑스국립행정학교를 졸업한 그는 ≪미국 보수주의 혁명≫≪자유주의 해결책≫≪신국부론≫≪사회주의의 퇴장≫≪야만인을 기다리며≫등 다수의 저서를 갖고 있으며, <월 스트리트 저널><아사히 신문>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브라질 폴란드 러시아 등의 주요 언론매체 정규기고 가이기도 하다. 그의 저서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번역 출간되었다. 파리 인접도시인 불로뉴의 자택에서 독서광이며 ‘폴리글로트’(모국어인 불어 외에 영어 독어 스페인어 포르투칼어에 능통하며 일본어 실력도 수준급)인 그와 만났다.

 밝고 넓은 거실로 들어서자 벽 한면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한폭의 커다란 추상화가 눈에 들어온다. 젊은 중국인 화가가 화선지에 먹물로 그린 동양화라고 그가 일러준다. 그는 슬하에 열여덟살부터 여섯살짜리까지 딸만 넷을 두었다. “자식 둔 부모의 입장에서 마약문제의 심각성을 외면할 수 없다”고 그가 저서에서 수차례 강조한 것이 떠오른다 사교 모임에는 일절 나가지 않고 특별히 즐기는 운동도 없으며, 출장중이 아닐 때는 늘 집에 머물며 ‘벌게 되는’ 시간을 자녀에게 할애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7권의저서를 내놓았는데 경제 ? 사회 ? 현대지성사 전반에 걸친 문제 등 취급하는 내용이 매우 다양합니다.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합니까?

 사람을 굳이 일정한 범주에 맞춰 분류하고자 하는 것은 특히 프랑스 사회에 만연한 일종의 편집광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그때 사회의 표면에 떠오르는 중요한 현안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경제학자니 사회학자니 하는 구분은 인위적일 뿐 아니라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학교에서도 경제학을 전공했고, 강의도 경제학 강의를 주로 했습니다. 구태여 나에게 꼬리표를 붙이라면, 글쎄요, 에세이스트 혹은 문필가라고나 할까요. 나에게 있어서 글쓰는 작업은 소설가의 작업과 유사할 터인데 다만 등장인물이 가공인물이 아니라 실제인물이라는 차이점이 있겠지요. 내 직업 때문에 빚어진 재미난 일화를 하나 소개하지요. 취재차 중국에 가게 되어 입국신청서를 제출했는데, 직업 난에 경제학자와 기자 두개를 동시에 쓴 탓에 비자발급이 두어달 늦어진 적이 있어요. 중국 같은 독재권력체제 아래서는 한 사람이 동시에 두가지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쉽게 용납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다양성으로 인한 갈등을 창조의 원동력으로 보는 민주사회와 커다란 차이점이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라고 봅니다.

 

저술 활동 외에 다른 일도 하시지요?

 개인사업으로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지방 선량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정기간행물을 10개 가량 펴내는 데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 됩니다. 사실 문필가는 흔해도 사업가까지 겸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출판사 편집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원하는 글을 자유롭게 쓰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독립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하고 있지요. 모교인 파리정치학교에서 17년 동안 강의를 해오다가 몇해 전에 그만두었고, 요즈음은 세계를 돌며 강연하는 일에 상당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1주일 전에는 모스크바와 예루살렘에 다녀왔습니다.

 

보통사람이 지하철을 타듯이 비행기를 타고 지구촌 곳곳을 숨가쁘게 답사하러 다니시더군요. 책 한권 쓰려면 평균 10개국 정도는 가시지요?

 (웃음) 사실 1년 중 반 이상을 비행기에서 보냅니다. 내 집 침대에서 자는 날보다 비행기에서 자는 날이 더 많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독창적인 르포 기법을 정착시켰다고 보는데요.

 내 입을 내 스타일을 독창적이라고 말하기는 좀 쑥스럽군요. 그러나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작업방식을 택할 경우 하나의 문제를 분석하는 데 깊이에 있어서는 다소 미진한 감이 있지만 보다 넓은 범위를 다룰 수 있어서 시야를 넓혀준다는 이점이 있지요.

 

한가지 주제를 놓고 세계 각국에서 그 주제를 대하는 방식을 신속하게 전해주는 ‘소르망 문체’는 한국 출신 비디오예술가 백남준의 멀티비전 방식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백남준도 각기 다른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동시에 우리 눈앞에 펼쳐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그렇습니다. 다원화된 현대사회를 이해하고자 하는 방식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요. 백남준과 가깝게 지내는 사이입니다.

 

또한 내용 면에서도 해박한 경제전문지식을 요하는 책들에 비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에 관해서건 전문가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문가가 될 수 없고 또 될 필요도 없으므로 전문지식을 대중화하는 사람도 필요하지요.

 

저서 모두가 국가의 간섭을 최대한으로 배제하는 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신념을 담고 있습니다. 프랑스 사회당 정부에 대한 비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은 사회당이 집권한 81년보다 훨씬 앞서부터 피력해왔습니다. 반대로≪최소국가≫의 출판은 사회당으로 하여금 그들이 집권 최기 국유화했던 기업체들을 다시금 민영화하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확신합니다.

 

첫 번째 저서인 ≪미국 보수주의 혁명≫이 출판된 지 10년이 됩니다. 레이거노믹스를 찬양한 ‘보수주의 혁명’의 논지는 클린턴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빛을 잃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클린턴은 강력한보수주의자입니다. 따라서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더라도 실제로 정책상 큰 차이는 없으리라고 봅니다. 미국의 민주당을 유럽적 의미에서의 사회당으로 인식해서는 곤란합니다. 또한 ‘보수주의 혁명’의 핵심주제는 레이거노믹스가 아니라 미국 사회 전반의 구조분석입니다. 그러므로 정권의 변동에 관계없이 보수주의 혁명은 아직도 시사성을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농업부문 협상을 놓고 유럽공동체와 미국 간의 마찰이 첨예화하고 있습니다.

 우선 원칙부터 얘기합시다. 자유무역정신의 구현인 가트의 조인은 신속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프랑스 농민이 가장 큰 피해당사자입니다.

 유럽 농임, 그 중에서도 프랑스 농민은 지난 30년간 추진되어온 보조금정책의 가장 큰 희생자입니다. 보조금 때문에 이들의 수입이 향상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이들의 생활수준은 나날이 하락했습니다. 어째서 농업만이 보호정책의 울타리 속에 고립되어 있어야 합니까. 다른 산업처럼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자유경쟁체제 속으로 편입해야 농업도 보다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유주의는 중농주의로부터 싹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자유주의의 요람이던 농업이 국가보호주의의 대표적인 산업으로 바뀌었습니까?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지요. 유럽공동체가 창설될 무렵 독일은 이미 공업국가로 자리를 잡았고 프랑스는 농업에서 강세를 보였기 때문에 당연히 양국이 자기네 강점을 협상카드로 내놓았습니다. 그 이후로 프랑스는 농업을 잘 육성하려면 강력한 보호정책이 주효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는데 이는 완전히 그릇된 생각이었지요.

 

농업문제를 떠나 자유주의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어떻습니까? ≪신국부론≫에서는 유럽통합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의견을 낸 걸로 기억합니다.

 원칙과 실천방안을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국부론≫에서 내가 유럽에 비판을 가한 것은 브뤼셀 정책위원회의 관료주의적인 관행, 즉 실천방안에 대한 것이지요. 그렇지만 지난 9월의 프랑스 국민투표는 원칙에 대해 묻는 것이었습니다. 통일유럽은 비록 회원국 내에 국한된 것일지라도 본질적으로 자유무역, 자유경쟁체제를 지향한다는 원칙을 표방합니다. 물론 찬성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시장경제의 원칙에 맡겨버리는 자유주의 정책이 성공을 거두려면, 인간이 이윤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존재라는 전제 외에 남 생각도 할 줄 알아야 하는 윤리적 존재라는 전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부작용이 많지 않겠습니까?

 자유주의란 원래 인간이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모순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이러한 인간의 본성은 개조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모순으로 가득찬 인간성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수많은 부작용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개선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입장입니다. 자유주의가 인간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 나머지, 가장 윤리적인 권위자로서의 국가에게 모든 주도권을 넘겨주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논쟁은 단시간에 결판나는 이론논쟁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두고두고 검증되어야 할 성질의 것입니다.

 

‘급진 자유주의의 교황’이라는 별명이 있던데요.

 터무니없는 별명입니다. 표현 자체에 이미 모순이 있지요. 자유주의가 종교적인 교리도 아닌데 교황이라니 어처구니없습니다. 게다가 자유주의란 엄격하게 체계화된 이론이라기보다 오랜 기간 동안 구체적인 사회의 움직임을 관찰해서 나온 결과에 대한 잠정적인 해석일 뿐입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 무력의 개입이 없이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통제경제에 대한 자유경제의 우월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 세계 각국, 특히 구미 여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실업ㆍ이민ㆍ마약ㆍ교육 등의 사회문제에 대해 사회주의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나는 내일이라도 당장 사회주의자가 될 용의가 있습니다. 다만 현재까지의 역사를 살펴볼 때 궁극적으로 자유주의 정책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자유주의를 택하는 것일 따름이지요. 이와 아울러 내가 추구하는 자유주의는 급진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대적인 것일 뿐임을 밝히고 싶습니다. 급진이라는 말은 흔히 혁명이라는 개념을 내포하는데 원래 자유주의자 중에는 혁명투사가 없지요. 완전한 성공으로 끝난 혁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역사의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급진이라는 말은 따라서 인간성 개조라는 도저히 불가능한 작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회주의자하고나 어울린다고나 할까요. 본질적으로 자유주의자는 야심이 작고 겸허하지요. 현실을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만이 그들의 목표이니까요.

 

올해 내놓은 책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는 마약과 이민문제에 대한 자유주의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지구촌시대라고는 하나 각 나라가 같은 사회문제를 같은 형태로 앓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마약의 경우 한국은 비교적 안전지대에 속하지 않습니까?

 내 의견은 좀 다릅니다. 한국에서도 마약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다만 유교전통이 강한 중국 일본 한국과 같은 나라는 앞서도 말했듯이 사회 각 구성요소 간에 마찰이 생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질서와 조화를 으뜸으로 치는 권위주의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직시하기보다는 못본 체 하거나 은폐하려는 경향이 강하지요. 이 지역에서는 그러므로 마약사범ㆍ에이즈환자ㆍ실업가 등에 관한 통계자료를 얻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아예 없는 경우도 더러 있지요. 반면 서구 사회에서는 모든 갈등이 표면으로 돌출하여 실제로는 사회 구성원의 극히 일부에만 해당되는 사실이 마치 보편적인 사실인 것처럼 과장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요컨대 역사적 ? 문화적 상황에 따라 문제제기 방식이나 분석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가 됩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집권층이 상황을 내세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구실을 만들어줄 위험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몇해 전까지만 해도 남북한 대치상황을 구실삼아 군사독재를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로 위장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오래가지 못하지 않습니까. 물론 부패나 부의 편재 등의 문제를 안고 있긴 하나, 86년 6월항쟁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국적’이란 형용사가 실천방안이었다면 ‘민주주의’는 원칙에 해당합니다. 언제나 원칙이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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