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사회와 그 적들
  • 나권일 기자 ()
  • 승인 1999.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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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교육청 교육정보망 구축 사업, 각종 의혹으로 ‘얼룩’

국내 초유의 실험, 혹은 세계 최고 수준기술 어쩌고 하는 관 주도 사업은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용두사미로 끝나기 일쑤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광주시교육청이 추진하고 있는 ‘광주교육정보망 구축 사업’은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정보화 사업의 허와 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남을 만하다.

광주광역시교육청(교육감 김원본)은 지난해부터 ‘광주교육정보망(KETIS Net) 구축 사업’이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수립했다. 교육청과 부속기관, 2백35개 초ㆍ중ㆍ고등 학교를 초고속 통신망으로 연결해, 인터넷으로 교사가 학생들에게 멀티 미디어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2002년까지 4개년에 걸쳐 수백억원을 쏟아붓는 획기적인 사업이었고,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교육정보망이 구축되는 셈이어서 성공 여부를 놓고 교육부와 전국의 시ㆍ도 교육청이 지대한 관심을 가져 왔다.

광주교육청은 정보 통신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한 뒤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 사양을 선정해 시방서를 만들었다. 교육부 정보화교육 담당자들조차 성공 여부를 의심하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초기 설계는 획기적이었다. 당시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장경성 교수(초당대학교ㆍ정보통신공학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망을 구축한다는 사명감에 헌신적으로 참여해 KETIS Net사양을 만들고 제품을 선정한 후, 업체들을 상대로 두 차례 설명회까지 열었다”라고 밝혔다.

한국통신 저가 낙찰…4억5천만원 행방은?
광주교육정보망 사업은 IMF 때문에 불황을 맞고 있던 정보통신업계가 탐을 낼 정도로 대규모 사업이었다. 삼성ㆍLGㆍ대우 등 굴지의 대기업체는 물론 공기업인 한국통신도 입찰에 뛰어들었다. 결국 치열한 입찰 경쟁 끝에 1차 사업은 한국통신(KT)이 주도한 컨소시엄에 78억9천만원으로 낙찰되었다.

그러나 자문위원들이 가격 조사를 통해 95억~백억 원을 예상한 사업이 20억원가량 낮게 결정되자 저가 낙찰에 따른 사업 부실화가 우려된 것은 당연한 일. 올해 2월 말까지 완료하기로 했던 사업은 추가공사와 하자 발생 등으로 2월 들어서야 마무리되었고, 게다가 교육청과 한국통신은 시방서 사양을 만족시킨다는 명분으로 초기 설계를 무시하고 일부 제품을 바꾼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1월26일 광주시의회 교육사회위원회(위원장 이윤자)가 일선 학교 현장을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PC와 통신 회선을 연결하는 부품인 LAN 카드는 인텔사 제품이 아닌 OEM 방식으로 대만에서 생산되는 쌍용정보통신 제품으로 바뀌었고, 프린터 역시 해상도 1200 dpi에 자동 제어 기능을 갖춘 모델로 설계되었으나 해상도 600dpi수준의 삼성전자 제품으로 변경되었다.

심지어 공개 테스트까지 거쳐 결정된 VOD 소프트웨어 제품도 바뀌었다. 한국통신은 동영상 멀티미디어인 VOD 소프트웨어를 초기 설계 때 선정한 국내 벤처 기업인 컨케이터스 사의 ‘Catsream' 'Ezintra' 대신 대장정보통신과 삼성전자의 'Cyber Stream'과 ’ ‘Smart EOD’를 설치했다. 컨케이터스 제품은 세트당 4백만원이지만 대상정보통신 제품은 30여만원. 현재 1백 20개가 일선 학교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1차 사업에서만 무려 4억 5천만원에 가까운 차액을 한국통신이 챙긴 셈이다.

한국통신은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의 ‘회계통첩’을 내밀었다. 회계통첩은 ‘물품통첩’을 내밀었다. 회계통첩은 ‘물품 구매ㆍ입찰시 특정 상표나 특정 규격을 지정해 입찰에 부치지 말고, 시방서와 동등한 물품을 납품한 경우 특정 상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납품을 거부하는 사례가 없도록 하라’는 내용.

한국통신 기업영업단 박윤영 부장은 “교육청이 특정 제품을 명기하는 것 자체가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는 것이다. 한국통신의 저가 낙찰로 광주교육청은 최소 경비로 최대 효과를 거두었다”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한 전문가는 “초기에 특정 제품과 모델을 납품키로 모든 업체가 합의했는데, 한국통신이 이제 와서 회계통첩을 들이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3~4년 뒤에도 부족함이 없는 최적의 사양을 제시했는데, 지금 사용하는 데 불편이 없다고 제품과 모델을 바꾼 것은 교육청이 묵인한 대기업의 횡포일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광주교육청은 이처럼 초기 설계와 다르게 납품제품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6개월 동안 작업을 주도했던 교육청 담당 실무자도 특별한 이유 없이 바꾸었다. 시방서 작성을 주도한 실무자가 물러나고, 대신 사무관급 정보 통신 전문가가 1년 계약직으로 채용된 것.

“설치 내역서 변조했을 가능성 있다”
한국통신과 광주교육청은 또 계약서에 딸린 설치 내역서 원본을 변조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입찰 전에 교육청에 제시한 설치 내역서에는 초기 설계인 시방서에 제시된 품목을 명기해놓고도 정작 낙찰 뒤 제출한 설치 내역서에서는 목록을 바꾸었다는 것. 이와 관련해 초기 시방서 작성에 관여한 한 교수는 “분명히 입찰 전에 한국통신이 제출한 설치 내역서와 다르다. 낙찰된 뒤 변조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주장했다. 교육청은 현재 확인 날인이 있는 설치 내역서 원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초기 시방과 다르게 상당수 품목이 변경된 것은 ‘돈 문제’였다는 것이 사업에 관계했던 사람들의 한결같은 진술이다. 광주교육청은 현재 한국통신 컨소시엄과 1백26억원대로 예상되는 2차사업의 수의 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선 학교를 현장 확인해 가며 부실 의혹을 제기했던 광주시의회 김후진 의원은 “일선 학교 정보화 담당 교사들조차 제대로 기자재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광주교육정보망 구축 사업은 부실투성이로 전락했다”라고 질타했다. 결국 광주교육청의 교육정보망구축사업은 교육청 스스로 공들인 탑을 허무는 결과를 초래했다.

시방서 작성 단계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내아들이 사용하게 될 첨단 교육정보망을 구축한다는 생각에 밤잠을 안 자고 노력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되어 실망스럽다. 점누가로 참여했지만 결국 관료주의 벽에 무너졌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광주시교육청의 정보화 사업 추진 사례는 교육 정보화를 추진하는 다른 시ㆍ도 교육청과 교육부에 반면교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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