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함께 여는 두 거인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8.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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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 소로스, 우정 돈독… 민주화운동 분야서 긴밀히 협조

경제난 극복에 골몰하는 김대중 차기 대통령이 새해 첫 행보로 조지 소로스를 만난 것을 두고 말이 많았다.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한 최선의 행보라는 찬사에서부터 개인 차원의국제 투기꾼을 너무 융숭하게 대접했다는 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어떤 시각으로 이들의 만남을 바라보든 사람들이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바로 김대중 차기 대통령과 소로스는 한국의 국가 위기와 상관없이 만날 수 밖에 없는 사이라는 점이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국제 사회에서‘공동 작업’을 해온 사이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차기 대통령과 소로스의 인연은 80년 그가 사형선고를 받은 뒤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시작되었다. 철저한 국제 자본 투자가인 소로스가 일반적인 자본가들에 비해 다소‘색다른’길을 걸은 것은 영국에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저서를 펴낸 철학자 칼 포퍼를 만나고서 부터였다. 포퍼의 영향을 받은 소로스는 이후 벌어들인 돈으로‘열린사회재단’을 창설해 소련과 동유럽에 인권과 자유 시장 경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이념과 체제를 떠나 반인권적인 독재 정권에 대해 비판 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던 소로스가 신군부의 탄압으로 81년 미국에 망명한 김대중씨를 눈여겨 본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미국 망명 시절 김대중씨는 열린사회재단의 각종 회의에 초대받는 등 소로스와 교분을 쌓아왔다.

 이후 그가 귀국하고, 한국정치 역정이 구비치는 상황에서, 소로스의 이념과 유사한 DJ의 국제교류활동으로 두 사람의 만남이 새로워졌다. 92년 대선 실패 후 DJ가 정계를 떠나 설립한 아태재단이 두 사람을 연결하는 고리였다.

 세계평화와 한반도 통일 문제 연구에 전념하던 DJ는 아태재단 산하에 아태민주지도자회의를 결성해 아시아는 물론 동유럽 각국의 민주화를 지원하는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의 활동 영역이 소로스의 활동 영역과 중첩되면서 두 사람이 이끄는 재단은 공동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연대의 폭을 넓혀나갔다. 소로스는 아태민주지도자회의가 국제행사를 열 때마다 적잖은 후원금을 보내곤 했다.

 특히 체코와 미얀마는 DJ와 소로스가 공동으로 민주화 지원활동을 벌인 나라이다. 하벨 대통령과의 우정을 바탕으로 체코 민주화 기념단체인‘77그룹’공동 발기인이 된 DJ와 소로스는 지난해 1월 체코에서 열린 77그룹 창립 20주년 기념행사에 각각 기조 연설자로 초청받기도 했다. 또 미얀마 민주화 지원 기금으로 해마다 수천만 달러를 쓰는 소로스의 열린사회재단은 아태민주지도자회의와 함께 공동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다.

 결국 DJ가 국난에 처한 한국의 통치권자가 됨으로써 두 사람의 우정은 새로운 시험대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丁壹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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