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날’끝나고 빚잔치만 남다
  • 김은남, 이정훈, 송준 기자 ()
  • 승인 1998.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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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중앙일간지 부채 2조3천억 넘어… 광고 감소 · 용지값 상승 겹쳐 존폐 위기

‘그간 우리 신문을 아껴 주셔서 감사  니다’ 머지 안항 한국의 신문 독자들은 신문 1면에서 이런 내용의 사고(社告)를 보게 될지 모른다.

 어떤 독자에게는 이같은  사고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18년전 <신아일보>를 포함한 14개 신문(중앙지 1개, 지방지11개, 경제지2개)이 문을 닫던날 이를 본 기억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80년 언론 통폐합’때 일이다.

 오늘날 언런인들은‘제2의 언론 통폐합’을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 18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한가지 차이는 뚜렷하다. 과거 통폐합을 주도한 것이 군부(권력)였다면 이번에는 시장 논리(자본)라는 점이 그것이다.

 한 중앙 일간지 사주(社主)는 올해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지난해 나는 플러스섬(plus-sum)게임은 끝나고 제로섬(zero-sum)게임이 시작됐다고 말했었다. 이제 나는 그 말을 수정하고자한다. 제로섬 게임은 끝났다. 지금부터는 서바이벌(생존)게임이다.”

 실제로 신문사들이 처한 현실은 급박하다. 우선 신문사 수입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광고비가 절반 넘게 줄어들었다. <조선일보> 마실언 광고국장은 지난12월 하순~1월 초순 광고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50%가까이 줄었다고 밝혔다. 선거 · 입시 특수가 지나자마자 IMF 한파가 본격적으로 닥쳐왔다는 것이다.

 한 광고대행사 관계자는‘<조선일보> 상황이 그 정도라면 나머지 신문은 죽을 쑤고 있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 언론 연구원이 96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조선일보>와 다른 중앙 일간지의 광고 단가(실제요금)에는 10~30% 가까이 차이가 났다. 광고대행사들은 올해 광고 수익을 지난해의 60%수준으로 잡고 예산을 짜라고 신문사들에게 권고해 왔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그보다도 나쁘면 나빴지 좋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광고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문용지 값은 성큼성큼 뛰고 있다. 제지 회사들은 최근 각 신문사에 용지대를 18~20% 인상하겠다고 통고했다. 환율이 등급하면서 펄프 수입 가격이 크게 올랐다는 것이다.

 현재 3대 중앙 일간지의 한 달 용지대는 80억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앞서의 구매 담당자는 또 “IMF 체제 이전까지만 해도 제지업계가 신문사에는 용지대를 15% 가량 깎아 주엇는데, 이제는 그렇게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주요 일간지들은 당분간 매달 27억원 가량 추가 부담을 떠안게 된 셈이다(인상분 15억원+과거 할인분 12억원).

97년말 성과급 · 상여금은 최후의 만찬?
 사태가 이쯤되자 신문사들은 초감량 경영에 돌입했다. 지난 연말 <동아일보>는 전직원에게 기본급의 50%에 해당하는 격려금을 지급했다. 97년 광고 수주액이 96년 수준이면 격려금을 지급하겠다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조선일보>또한 성과급을 전년 대비 70%지급했다. 그러나 이를 받고 환호한 직원은 거의 없었다. 한 기자는 이를‘최후의 만찬’이라고 표현했다.

 그이 표현은 옳았다. 새해 들어 <동아일보>사옥은‘썰렁’해졌다. 난방온도를 낮추고 엘리베이터 운영대수를 줄이는 등 경비 절감 작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사원들의 마음은 더욱 썰렁해졌다. 오 명 사장이 신년사에서‘뼈를 깎는 아픔을 함께 나누며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며 인원 정리가 포함될 것임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사원들은 이 점에서‘당분간’은 마음을 놓고 있다. 회사 최고 경영진이 정년  퇴임 같은 자연 감원 외에 인위적인 감원은 하지 않겠다고 잇달아 공언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력 재배치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조선일보> 사장실의 한 관계자는“감면이 단행됨에 따라 남는 인력은 영업 중심으로 배치할 계획이다. 편집국 또한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남는 기자들을 출판국 · 광고국으로 보내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중앙일보>는 지난 연말 400%로 예정되어 있던 상여금을 150%만 지급했다. 곧 인원 정리를 포함해 대대적인 구조 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편집ㄱ국 기자만도 상당수가 다른 부서로 전직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중앙일보>의 경우 94년 <중앙경제신문>을 통합해 다른 중앙 일간지에 비해 기자수가 많은 편이다.

 경영이 극도로 악화한 한 신문사는 지난 연말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은 데 이어 올 한 해 △임금동결 △상여금750%전액반납 △시간외 수당50% 삭감 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연봉의 45%가 줄어 그야말로‘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액수로 1년을 살게 될 것이라고, 사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도 부러워할 정도’였던 언론사 고임금 시대가 막을 내고 있는 것이다.

 불행한 것은, 이처럼 초감량 경영을 실천해도 신문사들이 무사히 IMF 파고를 넘을 수 있을지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12월22일~25일 한국기자협회가 신문 · 방송 기자 3백1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자 가운데 절대 다수(96.5%)는‘IMF 시대를 맞아 언론사가 부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 가운데 절반(47.7%)은 중앙 일간지 중에서 3개 사정도가 무너질 것으로 전망했다.

무리한 증면 경쟁이 화근
 일반인들은‘신문사도 망하느냐’고 반문한다. 그 수수께끼를 풀려면 최근 언론사들이 벌이고 있는 구조 조정 작업부터 면밀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지난 1월8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각각 사고를 통해‘고통 분담에 마땅히 앞장서는’자세로‘거품과 낭비를 제거’하기 위해 신문 면수를 줄인다고 알렸다. 주당 평균 3백20면인 신문 면수를 2백4면으로 35% 가까이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문사들은 그간의 증면 경쟁이‘거품과 낭비’였음을 간접 시인한 셈이다. 한국기자협회의 한 관계자는 “거품 경기 때 신문사들이 광고 호황만 믿고 무리하게 증면 경쟁을 벌인 것이 오늘의 경쟁위기를 낳았다”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폭주하는 광고를 수용하기 위해 지면을 늘린 결과, 88년 하루 평균 12면(4월 이전)이던 신문 지면은 불과 10년만에 4배 가까이 늘어났다(왼쪽 도표 참조). 늘어난 지면을 채우기 위해 기자도 충원되었다. 같은 기간(88~97년) 4대 중앙 일간지(동아 · 조선 · 중앙 · 한국)편집국 인원수는 평균1백97명에서 3백44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문제는 왜곡된 경영 구조상 이 같은 경쟁이 불가피했다는 언론계 일각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신문사들은 광고 없이 도저히 존립할 수 없는 경영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 일간지 수익 가운데 광고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육박하고 있다. 70년대만 해도 지대(신문판매+정기구독)수익이 광고 수익을 앞지르던 것이 80년대 들어 뒤바뀌기 시작하더니, 90년대 들어서는 그 비중이 절대적으로 확대된 것이다(43쪽 표 참조).

 더욱이 4대 중앙 일간지의 경우 광고의 대부분은 대기업이 제공해 왔다. 한 일간지 광고 담당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간지 광고 수입의 90%가 30대 재벌에서 나왔다고 추산했다. 따라서 30대 재벌 가운데 9개가 쓰러지고, 사위 5대 재벌마저 광고비 집행을 30~60% 줄이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신문사들이 휘청거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광고에 대한 의존도가 낮았던 몇몇 신문사의 최근 움직임은 그런 의미에서 대조적이다(46쪽 기사 참조).

 광고 의존도가 높은 신문사들은 더 많은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경쟁해왔다. 앞서 지적한 대로 96년까지 판매율 1위를 지킨 <조선일보>와 나머지 신문 사이에 고아고 단가가 10~30%가까이 차이가 났던 만큼 판매율 1위 자리를 빼앗기 위해‘피를 보는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96년 7월에 터진 이른바‘신문전쟁’은 그 결정판이었다.

 처음에 이를 주도한 것은 이른바‘재벌 신문’이었다. 일간지들의 손익계산서를 살펴보면, 재벌 계열 신문은 판촉비 · 광고선전비 · 접대비 따위 항목에서 일반 신문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가지(無價紙)를 대량으로 발행한 것 또한 판매율을 조작해 더 많은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ABC(신문부수 公査)제도가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어 발행 부수를 정확하게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용지 사용량을 놓고 볼 때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하루 평균 2백50만 부 가량을 찍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IMF 시대를 맞아 이들 신문은 10% 가량을 덜 찍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신문사 판매국장은 무가지 발행량과 신문 지면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최근의 용지대 상승분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가지 발행 못지 않은‘거품’이 시설에 대한 과다투자였다. 96년 <중앙일보>가 하루 48면 체제를 처음 선보였을 때 다른 신문사들이 나타낸 반응은‘경악’그 자체였다. 시장 구조상 나머지 신문이 여기에 말려드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동아일보>가 지난해 안산에 분공장을 지으며 들여놓은 윤전기는 한번에 56면까지 인쇄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추고 있다. 정연구 박사(한국 언론 연구원)가 지적한 대로, 다루는 기사 내용이나 논조가 고만고만한 중앙일간지가 물량 경쟁에 휘말리지 않고 자기를 차별화할 방법이란 애당초 제한되어 있었다.

<한국일보> <경향신문> 매각설에 시달려
 그러나 한 중견 기자의 표현대로 경제가 거덜나면서 언론의 잔치는 끝났다. 대신‘빚잔치’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96년 현재 중앙 10대 일간지의 부채총액은 2조3천5백억여 원에 이른다(왼쪽 표 참조). 이 중 3개 신문은 부채 총액이 3천억원을 넘어섰다. 특히 <경향신문>은 96년 한 해 (95년 4월~96년 3월)동안만도 매출액(천억여 원)의 2.8배(2천8백억여 원)에 이르는 차입금을 끌어 쓴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일보>가 96년 1~12월에 끌어들인 차입금(2천1백억여 원)또한 매출액(2천8백억여 원)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금융시장이 경색되면서 이들 신문에 언론계의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경영이 악화 일로를 걷기는 나머지 신문사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최근 2~3년간 리스로 윤전기를 수입해 들여놓았다가 환차손 때문에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는 것도 이들의 공통점이다(그나마 지면을 줄이는 바람에 윤전기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지난해부터 나돌던 ㅎ그룹의 <한국일보> 인수설, ㅅ그룹의 <경향신문>인수설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한국일보>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 같은 소문에 대해“현재 <한국일보> 본사(서울 종로구 중학동)옆에 짓고 있는 신사옥 부지를 ㅎ그룹에 팔려 했던 것이 인수설로 와전된 듯하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일보>의 부채 총액 3천6백억여 원 가운데 1천5백여 원이 단기 부채여서 ㅎ그룹에 신사옥 부지를 팔아 메우려 했는데, 때마침 IMF 사태가 터지면서 협상이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단기 부채를 갚는 것이 시급한 만큼 사실상 <한국일보>의 존망은 ㅎ그룹 손에 달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국일보> 박정삼 홍보실장은“ㅎ그룹 매각설은 사실무근이며, 현재 총부채가 2천6백억여 원으로 줄어든 상태이다. 이 중 악성 부채는 한푼도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을 모두 팔고, 초압축 비상 경영을 병행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매각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모그룹인 한화의 관계자에 따르면, ㅅ그룹 등 몇몇 기업이 지난해 <경향신문>을 인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조건이 맞지 않아 협상이 결렬되고 말았다. 한화는 또 현 단계에서는 어떤 기업과도 매각 협상을 벌이지 않고 있으며, 다각도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경향신문> 구성원 사이에는‘망하는 신문사 1호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정서가 팽배해 있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 것은, 재벌 계열사라면 어김없이 얽혀 잇는 지급 보증 때문에 모기업이 <경향신문>을 부도나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실제로 이 신문사 기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특정 날짜 부도설’분사(분사)뒤일부 매각설‘ 따위에 이골이 나 있다.

기자 해고는‘언 발에 오줌 누기’
 지난 7일 이 신문사 기자들은 데스크로부터‘닷새 안에 조를 짜라’는 지시를 받았다.‘3개월 무급 휴직제’를 도입할 계획이니, 부서원끼리 알아서 교대 조를 구성하라는 지시였다. 부서별로 구성원을 4개조로 나눈 뒤, 3개월씩 돌아가며 무급 휴직하는 방식으로 인건비의 4분의 1을 줄이는 이 제도는 <한국일보> <중앙일보>에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기자들은 이 같은 처방에 대해‘언 발에 오줌 누기’라며 냉소하고 있다. 남영진 한국기자협회장은 지금 신문사들이 처한 위기는 인건비 몇 십억원 건져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는‘언론 권력’을 무기 삼아 매출 규모가 비슷한 다른 일반 기업이라면 꿈도 못꿀 액수의 대출금을 끌어다 쓰며 방만하게 경영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김종서 교수(배제대 · 법학)는 신문사의 최대목표가 맹목적인 이윤추구에 맞추어져 있고, 이를 제재할 법적 · 제도적 장치가 전무하다시피 한 구도에서 이 같은 위기는 필연적으로 닥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현재 언론 산업에 닥친 경영 위기로 재벌 · 족벌 · 종교 단체 등 소유형태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언론사가‘언제 문 닫을지 모를’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에게서는 더 이상 막강한 정보력을 무기 삼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자신의 생존에 급급해야 하는 초라한 기업, 이것이 거품 걷힌 한국 언론의 현주소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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